박하사탕
이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과거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틀 전, 한달 전, 또 이년 전, 오년 전…….
그리하여 마침내 20년이라는 시간을 역류해서
마지막엔 20년 전의 어느 순간.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했던 때의 모습에서
멈추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마치 사진첩의 맨 뒷장에서부터 거꾸로
펼쳐보듯 한 남자의 20년 동안에 걸친 삶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점점 젊어지고,
세월이 만든 오염과 타락의 때를 벗으며 젊음의 순수함을
되찾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마치 두터운 녹을 벗겨낸 은식기가 조금씩 조금씩
그 영롱하고 맑은 광택을 드러내듯이.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아름다움과 순수한 사랑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chapter #1.
야유회 1999년 봄

주인공 김영호가 '가리봉 봉우회'의 야유회 장소에 느닷없이 나타난다.
20년 전 첫사랑의 여인 순임과 함께 소풍을 왔던 곳.
그러나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 후다.
기찻길 철로 위-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의 절규는 기적소리를 뚫고,
영화는 1999년 오늘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chapter #2.
사진기 사흘전,1999년 봄

영호는 마흔살, 직업은 없다.
젊은 시절 꿈, 야망, 사랑, 모든 것을 잃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중년.
어렵사리 구한 권총 한정으로 죽어버리려 하는데
뜬금없이 나타난 사내- 광남의 손에 이끌려
이제는 죽음을 앞둔 첫사랑 순임을 만나게 된다.
스러져가는 그녀 곁에서 박하사탕을 든 채 울음을 토하는 영호.
그리고, 그녀가 남긴 추억의 카메라를 단돈 4만원에 팔아버리는 이 사내.
알 수 없다.

chapter #3.
삶은 아름답다 1994년 여름

서른 다섯의 가구점 사장 영호.
마누라 홍자는 운전교습강사와 바람피우고
그는 가구점 직원 미스리와 바람피운다.
어느 고기집에서, 과거 형사시절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과 마주치는 영호.
"삶은 아름답다"라고 중얼거려본다.
집들이를 하던 날 아내 홍자의 기도가 장황하게 이어질 때
그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 안의 모든 것으로부터 1994년 어느 여름의 일.

chapter #4.
고백 1987년 4월

영호는 닳고 닳은 형사.
아내 홍자는 예정일을 얼마 남기지 않은 만삭의 몸이다.
사랑도 열정도 점점 식어만 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삶에 대한 권태로움으로 지쳐버린 김영호.
그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잠복근무차 출장갔던 군산의 허름한 옥탑방.
카페 여종업원의 품에 안긴 그는 첫사랑 순임을 목놓아 부르며
울음을 터뜨린다. 1987년 4월.

chapter #5.
기도 1984년 가을

아직은 서투른 신참내기 형사, 영호.
그는 선배 형사들의 과격한 모습과 자신의 내면에 내재된
폭력성에 의해 점점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순수함을 부인하듯이 순임을 거부한다.
마침내 그의 광기가 폭발해버리던 어느날,
그는 자신을 짝사랑해오던 홍자를 그냥 택한다.
1984년의 어느 가을, 순임을 만난지 정확히 5년째 해였다.

chapter #6.
면회 1980년 5월

영호는 전방부대의 신병.
긴급출동하는 영호는 트럭에서 면회왔다가 헛걸음치고
돌아가는 순임의 작은 모습을 보게된다.
또다른 비오는 날의 텅빈 위병소 앞 순임은 오늘도 영호를 기다린다.
영호는 그날 밤 광주 역 주변 어둠 속에서 귀가하던 여고생을
순임인 듯 마주한다.
급박한 상황에서 영호의 M16에서 발사되는 총성.
우리 모두에게 잔인했던 1980년 5월 어느 날이었다.

chapter #7.
소풍 1979년 가을

이야기의 시작, 영화의 끝.
구로공단 야학에 다니는 10여명이 소풍을 나왔다.
그 무리 속에 갓 스무 살의 영호와 순임도 보인다.
둘은 서로 좋아하기 시작한 듯 하다.
젊음과 아픔다운 사랑.
순수한 행복감에 잔뜩 젖어있는 두 사람.
눈부신 햇살 아래서 영호는 순임이 건네준 박하사탕 하나가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979년 어느날.
이렇게 영화는 마지막에 와서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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