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업 - 감동을 위한 처절한 혈투
오래전 자료라 현재의 상황하고는 부합되지 않는 점들이 있습니다. 읽으면서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기획에서 영화의 방향이 결정되면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이 진행된다. 감독과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는동안 제작자는 제작비를 책정하고 사전 제작비 확보를 위한 물밑 작업 (지방 판권, 비디오 판권)을 한다"

기획회의를 거쳐 방향이 정해지면 곧바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기까지는 한달에서 일 년을 넘기는 등 천차만별의 기간이 걸리지만 이 과정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연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줄 것인가?'라는 명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영화인들은 머리를 쥐어짜며 날밤을 세우기가 일쑤이다.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과정은 개인작업과 공동작업으로 나뉜다. 공동작업은 각자의 의견을 모아 공통분모를 찾는다거나 아니면 1차, 2차, 3차의 보완단계를 거치는 식이다. 공동작업 중에는 각자 구성과 대사, 에피소드 등으로 나누어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각자의 강점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여러 사람이 다단계 과정을 거쳐 고치고 또 고치는 방법을 많이 쓴다. 원작이 있는 경우에는 감독과 각색자가 함께 작업하기도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방대한 사건과 구성을 60분 내외이 영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원작에 치우치다 보면 영화의 구성이 산만해지고 흐름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은 원작의 방대함 때문에 나열식의 플롯을 벗어나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이다. 또 정진우 감독이 연출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조악한 구성에서 헤어나지 못한 케이스이다. 따라서 이런 악몽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감독은 불필요한 잔가지를 치는 역할을 하고, 각색자는 가지가 쳐진 줄기에 드라마틱한 감동을 덧씌우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반면 오리지날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데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시나리오 공모를 통한 접촉이고, 다른 하나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거나 감독이 일정 주제를 기성 작가에게 부탁하는 경우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신인작가의 등용문이 그리 넓지 않다. 지금 행해지고 있는 공모전 중에는 영진공과 스포츠서울에서 1년에 한 번 뽑는 공모전이 신뢰를 받고 있다.(99년 현재 좀 더 많은 공모전이 생겼음) 여기서는 비록 당선이 안된 작품이라도 영화사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이점이 있다.

한편 감독의 입장에서 가장 속 편한 작업과정은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다. 적합한 소재만 떠오른다면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담긴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는 자신의 벽에 부딪혀 보완적 측면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대부분 글쓰기에 훈련된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는 장선우 감독을 들 수 있다. 그는 아무리 난해한 소설이라도 그것을 영화적인 내러티브로 읽어내는 능력을 가졌고 자신의 창작 시나리오집 '붉은 방'을 발간할 정도로 풍부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가 만들었던 <경마장 가는 길>은 깔끔하게 구성을 살리면서도 소설이 주는 묘미를 100% 소화시켰다는 평가를 얻었다.

감독 중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거나 각색한 사람이 많다. 우선 자신의 시나리오로 데뷔한 <세상 밖으로>의 여균동 감독은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 시절을 거치면서 <베를린 리포트>를 각색했다. 공동으로 작업한 김성수도 지금 감독데뷔 준비중인데 그는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의 시나리오를 썼고,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를 각색하고 <구미호>로 참신한 감각을 보여주었던 박헌수 감독도 작가 출신이다. 그가 집필한 <결혼 이야기>는 톡톡 튀는 감각이 호평받았는데 완성된 대본이 나오기까지 12번이나 다시 써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장현수 감독은 곽지균 감독의 조감독을 거치면서 <젊은날의 초상>을 각색했고, <게임의 법칙>의 시나리오를 쓴 강제규 감독은 <은행나무 침대>로 데뷔했다. 강제규 감독은 이미 시나리오 작가로 탄탄한 명성을 얻었는데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등으로 백상예술대상, 한국시나리오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손톱>의 김성홍 감독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투캅스>등의 작가로도 유명한 감독이다.

한편 순수한 시나리오 작가들도 그들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데 <길소뜸> <명자 아끼꼬 쏘냐>의 송길한, 이문웅, 윤삼육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또한 <태백산맥>을 각색한 송능한 역시 작가인 송길한의 동생이어서 작가가족이란 말을 듣고 있다.(송능한 감독은 <넘버3>로 데뷔했다)


<글 : 김미선 - [영화세상 훔쳐보기]에서 발췌
1964년 서울 출생, 86년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87년 영화잡지 로드쇼의 창간멤버로 편집장까지 활동
한국영화 현장을 포함해 홍콩, 중국, 프랑스등에서 활발히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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