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연출부 24시
<고양이를 부탁해> 연출부 이사무엘의 고군분투 영화만들기

충무로에서 연출부로 산다는 것은


2000년 12월23일 토요일

오늘 슬레이트가 들어온다. 바로 내가 할 일! 슬레이트치는 사람이 현장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는다고 한다. 슬레이트를 칠 때 “씬 원에 하나, 하나”가 좋을까? 아니면 “일 다시 일, 일”이 좋을까? “하나 다시 하나 다시 하나”?, 그것도 아니면 “하나 다시 하나, 하나”라고 해야 하나?

대한민국, 서울, 강남, 삼성동, 세련된 증권사의 미로 같은 복도. 바닥 가득히 꼬이고 얽혀 있는 라인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는다. 미술팀과 촬영팀의 분주한 발놀림이 지나간 자리에, 눈부신 조명을 받으며 배우가 서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촘촘히 모니터 앞으로 모여들면 “슛 갈게요” 하는 조감독의 사전통고가 이어진다. “액션”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신과 테이크를 알리는 슬레이트판을 카메라 렌즈 앞으로 들이미는 한 청년은 육중한 35mm카메라가 운동을 시작하자 프레임 바깥으로 잽싸게 몸을 숙인다. 그리고 애매하게 고정된 자세를 유지한 채 다리가 후들거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하던 ‘얼음, 땡’놀이의 명령어를 ‘액션, 컷’으로 치환시킨 듯.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아득히 먼 것 같은 ‘컷’소리만을 기다린다. 까까머리에 자그마한 몸집, 귀기울이지 않으면 놓쳐버리기 쉬운 목소리, 말과 말 사이의 긴 간극. 예민한 사춘기 소년 같은 느낌을 풍기는 이 청년은 여자감독, 여자조연출, 여자연출부에 여자스크립터로 구성된 충무로 희대의 연출팀에 유일한 남자로 존재하는 <고양이를 부탁해>의 연출부 이사무엘(28)이다.


2000년 11월26일 일요일

오기민 PD의 마술피리에서 <고양이를 부탁해> 연출부일을 시작한 지 두달이 다 되었다. 제작일지를 쓴다쓴다 하면서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네. 촬영을 앞두고 현재 중점적으로 집중하는 부분은 캐스팅. 어젠 두팀의 쌍둥이 오디션이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감독님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열어놓고 편안하게, 애정을 가지고…. 비단 배우뿐 아니라 그게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란 생각도 들고…. 여유, 자신감…. 많이 배우고 있다.

지난해 <공포택시>의 촬영부로 일한 것이 충무로 유일의 필모그래피였던 사무엘은 단편작업의 인연으로 친구가 된 조감독 박지성씨를 통해 지난해 10월 <고양이…>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초반에 그에게 던져진 미션은 캐스팅. 감독 대신 100명 가까이 되는 조연, 단역을 고르기 위해 연극인을 비롯해 뮤지컬배우들을 일일이 연락해 간단한 인터뷰를 하고 그렇게 고른 몇명의 후보를 감독과 다시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내용 상관 없이 오로지 조, 단역을 찾기 위해” 근래 나왔다는 한국영화란 한국영화는 비디오로 죄다 빌려 FF로 돌려가며 며칠 밤을 보기도 했고, 2천여명의 배우 혹은 배우 지망생들의 프로필을 체크했고, 어떤 때는 며칠 사이 스무명이 넘는 배우를 만나기도 했다.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 위치해 있다면 엑스트라조차도 공간의 분위기를 깰 수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건 그나마 쉬운 편. 이 영화의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고양이 캐스팅은 그보다 몇배는 힘들었다. “배우 캐스팅이랑 똑같아요. 감독님이 정확히 원하는 고양이 얼굴이 있었거든요. 크기는 적당한데 얼굴이 아닌 애들도 있고, 무늬에 얼굴은 맞아도 크기가 안 맞은 적도 많았고…, 이거다 하는 고양이를 만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때마침 사무실 베란다에서는 “살 때 아줌마가 ‘박카스’통에 담아줘서” 이름이 ‘박카스’라는 몇달 안 된 새끼고양이부터 근엄한 자태로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툭툭 치고 지나가는 거대고양이 ‘전구’까지 4마리의 고양이들이 아기울음소리 같은 교성을 허공을 향해 질러대고 있었다.


12월1일 금요일

어제는 ‘왜 스무살 여자아이들인가?’에 대한, 감독님이 내준 숙제를 세 번째 체크받았다. 종미 누나에게는 ‘인천’, 현희에게는 ‘고양이’에 대한 숙제가 있었다. 이런 숙제들은 영화를 만드는 데 밑그림이 된다. 또한 영화에 리얼리티를 부여할 수 있다. 방대한 자료조사….


12월2일 토요일

사무실, 삼선교 2층 양옥집으로 이전하다. 분주하다. 자리를 잡으려면 2∼3일 정도 더 있어야겠지. 반쪽짜리 내 책상이 생겼다.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는지도, 감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엄두도 안 났던 영화라는 작업. 그 동경하여 마지않던 공간 속에 어느 순간 들어왔다는 생각은 사무엘에게 “웬만한 일은 힘들지도 않았다”고 회상할 만큼 신나는 것이었다. 사무엘에게 처음 영화라는 매혹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준 사람은 UBF(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도 영화를 좋아하셔서 <외팔이> 시리즈 같은 걸 보러가실 때면 항상 절 데리고 가셨어요.” 하지만 ‘한참 공부해야 될 나이’에 교과서 대신 영화책만 읽고 있는 아들 앞에 부모님은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는 일. “<로드쇼>(당시 정성일씨가 있던)를 사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일일이 찢어서 파일에 꽂는 거였어요. 책으로 있는 걸 보면 금방 뺏기니까요.” 그 다음 “영화를 하려면 내 철학이 필요하다”는 일념으로 92년 전북대 철학과를 들어갔고 ‘FILM’이라는 영화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국제영화제가 열리기 전 당시 전주는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도, 변변한 시네마테크도 하나 없었다. 오죽하면 사무엘이 단지 ‘영화동아리’란 이유 하나만으로 전주 MBC에 불려나가 일주일에 4번씩이나 “누벨이마주는…” 하는 장광설을 늘어놓기까지 했을까.

군대 제대 뒤엔 문화학교 서울에서 강의당 1만원하는 ‘장르영화’ 강의를 10만원어치 들으면서 사무엘은 건국대 철학과로 편입했고 문화학교 서울의 ‘시나리오연구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영상원 교재로 쓰이기도 했던 앤드루 호튼의 <캐릭터 중심의 시나리오 쓰기>와 윌리엄 필립스의 <단편영화 시나리오 이렇게 쓴다>를 큰 축으로 삼은 스터디. “영화에 대한 책은 많아도 단편영화만들기에 대한 책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번역하는 김에 책으로 만들자”는 뜻을 모았고, 팀 해체 뒤에 일원 중 한명인 주영상씨가 개인적인 보충작업을 한 뒤 올해 초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그 시간들이 저에겐 큰 의미였어요. 집단생활에 익숙하지도 않고 적응도 잘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겐 특히나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이 모여 스터디를 한다는 건 모험이었죠.” 한계도 많이 느꼈지만 집중해서 뭔가를 한다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 이사무엘에게는 늘 많은 사람들과 접하게 되는 연출부일을 스스럼없이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2월14일 수요일

어제 6회 촬영이 있었다. #22동인천역과 #46,47-1 동인천역, #33 핸드폰 대리점…. 아침 6시에 집합해서 오늘 새벽 5시에 들어오다. 또다시 한소리 듣는다. 최 기사님한테. 현장에서는 조감독이 소리지르는 게 아니라 연출부가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겠지. 현장에서는 자의식을 버리고 나서서 현장 분위기를 잡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필요한 일이든 불필요한 일이든…. 날씨가 춥고 피곤하니까 작업에 집중을 못한다. 그저 내가 할 일만 딱딱 하게 되고. 슬레이트치기, 인원통제, 모니터관리, 소품체크 등등.

촬영이 끝나면 사람들은 예수가 세번 불렀다는 그 이름, ‘사무엘!’을 예수보다 더 애타게 불러댄다. 촬영 때문에 창문을 가렸던 검은 천을 떼어내고, 카메라에서 연결된 모니터라인을 챙겨서 감고, 책상을 제자리에 놓고, 의자를 옮기고…. 촬영 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놓았던 원래의 세팅으로 바꾸기 위해서 사무엘은 촬영이 끝난 다음 더 바쁘게 몸을 놀린다. 지난주에 이어 2주째 주말을 내어준, 극중 혜주(이요원)가 근무하는 증권사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길. 뒷정리를 다 끝내고 식당으로 가려는데 누군가 또 “사무엘!” 하고 부른다. “예? 지금 유리창을 닦는다고요?” “어, 닦아주고 가기로 했어.”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 탓에 “쓰러질 것같이” 배가 고프지만 결국 고깃집에서의 저녁식사는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삼성동 대로에 위풍당당히 세워진 17층 증권사의 창문은 덕분에 저녁노을 아래 반질반질 윤을 내고 있었다.


2월19일 월요일

번갈아가며 한소리 듣는다. 정재은 감독님은 촬영장에서 내 표정이 웃기다고 하신다. ‘무슨 일이지? 이게 무슨 일일까?’ 하는 표정이라고. 일주일 전엔 최 기사님이 그렇게 카메라 옆에만 꼭 붙어 있지 말고 뛰어다니면서 인원, 차량 통제해야 하는 거라고 말씀하시고, 어젠 조감독이 소품연결 보고 있는 데 조명하시는 박 기사님이 날 부르더니, “이런 건 네가 보는 거야. 슬레이트치고 놀고만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물론 그렇게까지 놀고 있단 생각은 안 들지만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촬영부 할 때보다 훨씬. 여전히 내 자리를 못 찾고 있어. 종미 누나는 엑스트라를 관리하고, 현희는 스크립, 지연은 미술세팅, 난 슬레이트와 소품체크…, 그외 잡일…. 조감독이 없을 때 진행도 해야 하고 소리도 질러야 되고 그러는데 그게 잘 안 돼. 어쨌든 사람들이 날 노는 애로, 열심히 일하지 않는 애로 본다는 건 심각한 일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고. 생각하자! 계산하지는 말고!

<공포택시>촬영부에 이은 <고양이…> 연출부 생활은 사무엘에게 적응에 이르는 더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짧긴 했지만 촬영부 습관이 몸에 밴 나머지 자꾸 카메라 근처에 몸을 두었고, 슬레이트치는 것을 제외하고는 도대체 현장에서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들 모니터를 보고 소품도 다시 놓고 동선도 다시 정하는데, 사무엘은 모니터를 아무리 봐도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정신없이 바쁠 때가 차라리 좋아요.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니까. 하지만 가끔은 이 현장에서 내가 필요한 존재인가, 뭘 해야 할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뭔가 잘못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 순간이 제일 힘들어요. 의지도 많이 약해지고요.” 모든 일에 서툴다보니 크고 작은 사고가 왜 없었으랴. “3회차 촬영을 나갔을 때였는데요. 모니터를 연결하는데 220V에 그냥 꽂았다가 ‘퍽’ 하고 모니터가 나갔어요. 옛날에 쓰던 건 그냥 꽂아도 상관없는 거였는데…. 다행히 스탭 중에 인천에 집이 있는 사람들이 비디오 들고 오고, TV 들고 오고 해서 그날은 어떻게 해결했지만 등에 식은땀이 다 나더라고요. 오 PD님도 감독님도 주변사람들도 다 괜찮다고 하는데 너무 미안하고, 너무 죄송하고….”


3월13일 화요일

소외당하는 느낌, 하는 일 없이 존재감 없이 있는 느낌. 크랭크인지 한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는데, 작품에서 많이 멀어져 있다. …아무도 나와 상의하지 않는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난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을 떠나서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감에서 멀어져 있다는 게 문제다. 회복되는 데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중심으로 들어간다는 것…. 누가 일을 주기를, 일이 나누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것, 그 자체가 바보 같은 일이었다. ‘…해야 돼’, ‘…해야 돼요’라고 말하자!. ‘해야 되지 않아?’, ‘해야 되지 않아요?’라고 묻지 말고…. 영화가 끝나고 ‘난 여기서 무얼 했지?’란 생각은 적어도 들지 않게…, 지금도 ‘난 지금 여기서 무얼 하고 있지?’라고 생각하고 있잖아. 너무나 늦게 깨닫는다. 기분나쁜 것들, 창피함, 소심함 다 버리고 이 영화가 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물어볼 게 있으면 물어봐야지. 기분 나쁘더라도 일에 관련된 것이라면 누구에게든…. 나는 어느샌가 어중간한 위치에 와 있다. 더이상 소품을 체크할 수도 없다. 위축, 의기소침, 의욕상실. 현장에서 존재감을 못 느끼는 상황에서… 사무실에서도 이러면 정말… 죽어야지, 그만둬야지. …어떻게 할 거야? 사무엘아!

결국 사무엘에게 어려웠던 건, 휴일없이 추위와 졸음을 이겨가며 찍어야하는 밤샘작업이 아니고, 10개월에 300만원밖에 못 받는 충무로 연출부 기본박봉도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 자신의 위치를 심는 것과 그들과의 관계를 윤활히 하는 것, 아교처럼 끈끈한 애정과 너그러운 용서가 통하던 가족이나 학교생활과 다르게 이곳은 엄연한 일터이고 사회였다. 능력있는 사람이 대우받고 존중받는 냉정한 사회. 이해할 수 없는 알력 같은 것도 보았고, 대화로 풀 수 없는 것 같은 대립도 보았다. “결국 세상에는 내가 틀려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인정하지만 닮아가진 않으려고요. 버려야하는 것, 얻어야하는 것, 경계해야하는 것, 굳어져버리는 것, 안이해지는 것에 대한 경계를 잃지 않는다면 버틸 수 있을 거다, 그런 결론을 냈죠.”


3월20일 화요일

지난해부터 생각하고 있는 시나리오. 잠시 신비롭게 등장하는 소년을 하나의 구도로 잡고, 셋이 맞물리는…. 언뜻 다시 생각해봤는데 유치하단 생각이 들었다. 한 페이지밖에 안 된 상태인데… 어쨌거나 이 작품 끝나고 나면 완성해봐야지. 생각처럼 3부작이 될지 어떨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어쩌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직 못 찾은 건지도….

일본에서 ‘노가다’를 열흘 뛰고 번 150만원에 아버지 찬조금을 보태 장만한 디지털카메라. 그 카메라로 사무엘은 첫 번째 단편영화 <터널>을 찍었다. “미숙하고 아마추어냄새 물씬 풍기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라고 말하는 <터널>은 99년 12월 제대로 된 장비나 인력도 없이 손을 호호 불어가며 찍은 작품. 촬영을 할 줄 아는 유일한 친구를 불러다 카메라를 잡게 했다. 운전면허도 없는데 자동차신도 많았다. “<쉬리>를 찍었던 양수리 가는 터널에서 4일간 찍었어요.” 후배들에게 시장에서 산 조잡한 가짜 경찰복을 입힌 다음 터널 앞을 통제시키고, 울어야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안 나는 연기자를 두고 “연기지도랄 게 없어서 옆에서 울어버렸다”는 힘든 촬영. “촬영 중반엔 과연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지만 이게 하나의 산이구나, 이걸 못 넘으면 끝이구나 생각을 다졌어요. 결국 완성했죠. 물론 각종영화제에서 죄다 떨어졌지만….” 그러나 이 짧은 작업을 통해 사무엘은 두 번째 작품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얻었다. “이제 단편작업도 해봤고 <공포택시> <고양이…>까지 얼추 끝냈으니까 다음 영화를 찍으면 훨씬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정재은 감독과 미팅하던 날, 그는 <터널>을 보여드렸다. “직접 들은 건 아닌데요. 누군가에게, 처음 찍은 것치고 장난도 많이 안 치고 여유가 많은 것 같다. 잘 작업하면 좋은 감독 되겠구나,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요? 당연히 좋았죠.”


4월2일 월요일

21회차까지 촬영이 끝났다. 40%가량…. 다시금 스케줄이 막힌다. 증권사가 픽스 안 됐고, 아이들 집, 양수리 세팅 등 큰 ‘구다리’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됐다. 힘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개인적으로 예전보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한다. 감독님은 4월까지 촬영을 끝낼 생각이지만 내 생각엔 5월 말까지는 갈 것 같다. 무료하다면 웃기는 얘기지. 하지만 다들 느끼는 부분이기도 해…. 의욕이 초반과 달리 많이 다운되었어. 누구의 문제일까? 무엇이…. 그만큼 힘든 작업이었다는 생각은 들어. 개인의 의사 문제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이 정체는 정말….

사무엘의 일기는 4월 말, ‘31회 촬영이 끝났다’에 이르자 뚝 끊겨 있다. 대신 그의 일기장의 빈 면을 채운 것은 빡빡한 스케줄과 체크해야할 여러 사항들, 집구조를 그린 간단한 도면과 한 공간에서 나는 소리를 체크한 낙서들뿐이다. 물론 그 행간 가득 메우고 있을 끊임없는 고민들은 읽지 못해도 읽은 듯하다. 그리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가”도 잊을 만큼 바빴을 그 시간 동안, 그도 알지 못하는 사이 훌쩍 커버렸을 마음의 키를 가늠할 수 있다.사무엘의 일기는 6월1일 금요일 다시 이어진다.


6월1일 금요일

크랭크인할 때 예상했던 촬영기간보다 두달이 더 늘어났다. 15%가량 남았다. 6월15일 크랭크업 예정. 모두들 다음에 들어갈 작품이 가다리고 있는 듯하다. 난 촬영장에서 이젠 편한 편이다. 딴 사람의 눈치를 덜 보게 된 것도 있고, 약간은 내 자리를 찾은 면도 있고…. 서서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정체하지 않기. 항상 깨어서 내가 부족한 부분들을 느끼고 채워나가기, 항상 웃는 얼굴, 여유있는 모습, 하지만 빈틈없이 철저한 준비, 내 작품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기. 총체적인 사고. 스탭들과 원활히 지내기. 각 숏과 각 신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기, 다르게 생각하기, 자신감, 나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지 않기. 그리고 이야기하기….

사무엘이 느끼는 불안감이나 기쁨은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이라면, 혹은 그 절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것이리라. 더욱이 멀리서 경외하던 대상의 내부로 들어와 어느 부분 실망하고, 어느 부분 자신의 존재를 직시하는 과정을 거친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많이 다치고 많이 앓으며 이제 수줍음 많던 한 청년은 영화라는 확성기를 통해 세상과 이야기를 하려 하고 있다. 새벽부터 시작해 밤을 꼴딱 새우는 촬영장 24시를, <고양이…>와 함께 살았던 지난 10개월을, 끊임없이 존재를 반문하며 살았던 지난 28년을 다 담을 순 없겠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써내려간 삶의 낙서들을 조심스럽게 들추는 것으로 충무로에서 연출부로 살아간다는 것과 사회의 첫발을 딛는 초년생의 신산한 마음을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을까?

“왜 걱정이 없겠어요. 걱정을 하자면 끝이 없죠. 조바심날 때도 있어요. 이렇게 현장 몇번 더하면 서른, 혹시 유학을 가게 되면 삼십대 중반, 그럼 마흔이나 돼야 감독이 된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럴 땐 나한테 물어봐요. ‘사무엘, 감독이 되는 게 중요한 거야?’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감독으로 부끄럽지 않은 자질을 갖추는 게 중요하죠. 영화를 많이 찍기 위한 것도 목적이 아니에요. 단 한편을 찍게 되더라도 담고 싶은 사람들과 이야기들, 공간들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러니까 나이는, 물론 무시할 순 없겠지만 매달릴 만큼 중요한 건 아니에요.” 그의 말대로 몇년 뒤 그가 ‘감독’이 되어 있을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겨울에서 여름까지 3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 사무엘이 통과해온 ‘터널’은 끝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다른 터널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야, 사무엘을 부탁해. 그 아이가 네 안에서 지치지 않도록, 널 사랑했던 첫 마음을 잊지 않도록….


충무로 입성기 - 백 갈래 길, 목표는 하나

충무로로 가는 길? ‘3번 버스나 지하철 3, 4호선을 타라’ 같은 명쾌한 답이 어디 있으면 좋으련만, 수많은 감독지망생에게 그곳을 향한 길은, 시작도 끝도 안 보이는 미로처럼 복잡하고 뚜렷한 정답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무턱대고 영화이론서만 잡고 있다고 될 일도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이 아니라서 영화판에 아는 사람도 없고, 훌쩍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게 방법일까? 즐비한 학원을 다니는 게 길일까? 아니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단편을 찍을까? 이도저도 아니면 영화사에 찾아가서 ‘무슨 일이든 시켜주십쇼’ 하는 게 방법일까?

물론 최근엔 각종 단편영화제를 통해 이름을 알리거나 외국유학 이후 데뷔하는 감독의 숫자가 전보다 늘어가는 추세다. 흥행신기록을 달성한 <친구>의 곽경택 감독은 뉴욕대(NYU)를 졸업하고 제2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영창이야기>로 우수작품상을 타면서 연출부 생활 없이 데뷔작 <억수탕>을 찍었고, 임순례 감독 역시 제1회 서울단편영화제로 이름을 알린 뒤 <세친구>로 데뷔했다. 단편 <호모 비디오쿠스>의 변혁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파리8대학 영화학과 석사과정과 프랑스국립영화학교(FEMIS)를 마친 뒤 <인터뷰>로 장편 데뷔했고, 변혁 감독과 <호모 비디오쿠스>를 함께 만들었던 이재용 감독은 유학길에 오르는 대신 다큐멘터리 <한도시 이야기>의 작업에 들어갔고 이후 <정사>를 통해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충무로 입성의 정석=도제시스템’이라는 이해가 지배적인 것이 사실이다. 현재 <무사>의 개봉을 앞둔 김성수 감독은 <런어웨이>로 데뷔하기 전 몇편의 단편작업을 통해 “생각은 높은데 수가 낮은”, 즉 “영화의 기술적 측면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단편작업에서 탈피해 좀더 구체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충무로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의 조감독으로 일했다. 이처럼 현장에서 기본기를 익히면서 커나간 연출부 출신 중엔 김성수 감독을 포함,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를 거친 굵직굵직한 젊은 감독들이 많다. <박하사탕>의 이창동 감독을 비롯, <8월의 크리스마스>에 이어 <봄날은 간다>를 준비중인 허진호 감독은 영화아카데미를 나와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 현장수업을 받은 경우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박흥식 감독 역시 영화아카데미 8기생으로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8월의 크리스마스> 연출부와 조감독을 거쳤다. 이외에도 <눈물>의 임상수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5기 출신으로 <구로아리랑> <장군의 아들> <개벽> <장군의 아들2> <김의 전쟁> 등에서 연출부 수업을 받았고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4기 출신으로 <오늘 여자> <비처럼 음악처럼> <천재선언> 등의 연출부를 거쳤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김대승 감독은 <태백산맥>부터 <춘향전>까지 10여년간 임권택 감독의 연출부와 조감독을 지내면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았다.

앞선 사람들에게 ‘연출부’는 과거지사지만 현재 직함이 ‘연출부’인 사람들의 이력 또한 다양하다. 현재 촬영을 시작한 김기덕 감독의 신작 <나쁜남자> 연출부 고우철(27)씨는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했고 방송사 FD를 거쳐 몇편의 단편작업에 참여했던 사람이고, 스크립터 한혜영(25)씨는 상명대 영화과 출신으로 처음 영화작업에 임하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의 연출부 박중희(31)씨는 방송아카데미에서 카메라를 배웠지만 영화일을 시작하며 연출부로 전환한 경우. 청년필름의 <와니와 준하>에서는 <백야 3.98> 등 TV쪽 세트일을 하다 들어온 권경업(31)씨, 연출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력서를 들고 직접 제작사로 찾아와 일하게 되었다는 권현정(29)씨가 착실히 연출부 수업을 받고 있다.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박준오(26)씨나 <정글쥬스>의 전승철(29)은 다른 연출부의 소개를 통해 작업에 참여한 경우. <고양이를 부탁해>는 실력파들이 뭉친 고급스런(?) 연출부를 구성하고 있는데 유종미(30)씨는 <심청>이란 단편으로 제2회 대한민국영상대전에서 수상했고 스크립터 손현희(26)씨는 6월1일 방송된 KBS <단편영화展>에 <야유회>라는 16mm 단편을 선보이기도 했다.

연극영화과 출신은 선배를 통해 연출부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무작정 존경하는 감독을 찾아가 ‘읍소’하는 경우도 있고, 감독에 따라서는 연출부를 자청한 사람이 만든 단편을 보고 자신의 연출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박광수 감독은 응시자들에게 글을 쓰게 함으로써 자질을 테스트한다고 하며,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 감독은 연출부들에게 대학원생 같은 학구열을 요구해서 매번 리포트를 제출하게 하는 등 ‘공부하는 연출부’를 표방하기도 했다. 또한 요즘에는 <씨네21>을 비롯한 각종 매체 구인광고란에 나는 연출부 구인공고를 통해 충무로에 첫발을 들이는 젊은이들도 많다.

감독으로 가는 길, 물론 어떤 길을 통하는 것이 더욱 의미있는 데뷔작을 탄생시키는 디딤돌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혹, 너무 늦었다거나 길을 모른다고 투덜거릴 필요는 없을 듯싶다. 93년, 이창동 감독이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으로 <그 섬에 가고 싶다>에 처음 뛰어들었던 때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글 : 백은하 기자 사진 : 정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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