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시나리오 거절하는 네마디는?
헐리우드 이면을 풍자하고 조롱한 로버트 알트만의 '플레이어' 주인공은 야심차지만 비열한 영화 제작자다. 그에게 매달리는 수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검토해보고 연락하겠다"고 하지만 그건 말뿐, 결코 다시 연락하는 법이 없다.

꽤 오래 전 이 영화를 보면서 하루에도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와 한달에 1만여권 가까이 도착하는 시나리오 더미에 파묻혀 사는 헐리우드 제작자를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나도 제작자가 되었다. 그만큼은 턱없지만, 우리 영화사에도 시나리오가 꽤 날아온다. 일주일에 서너편, 한달이면 30편이 넘는다. 기획실 시나리오 담당자의 '검토'를 거치지만, 생면부지의 작가지망생들이 쏘아 올린 시나리오에서 '물건'을 건진 적은 거의 없다.

개인적 친분이 있거나, 정말 적극적인 이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마음에 없는 빈소리를 해야 될 상황이 난감해지곤 한다. 대부분의 제작자들 태도가 비슷하리라고 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표준치'답변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 별 토를 달지 않고 담담한 목소리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건, 별 재미없다는 뜻이다. 이하 괄호 안은 진짜 속마음) 두번째, "보긴 보았는데 다시 검토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세번째, "다음에 연락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다시 연락하지마) 마지막으로,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을 기다리다간 시간만 버릴걸)....

나도 한때 대충 위의 답변들을 상황에 맞춰 써먹었는데, 이젠 방법을 바꾸었다. 솔직하게, "영화화할 의사가 없습니다"로. 너무 매정해보일까? 그것이, 오히려 그들의 약을 덜 올리면서, 가장 정확한 진심이 될 것 같아서.

시나리오는 어느 곳, 어느 누구에게서나 똑같이 객관적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제작자, 어느 감독과 그 이야기가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그 무엇이다. 한 영화 주간지 시나리오 공모 당시 예심에서 보기좋게 떨어졌다가, 또다른 공모전 심사위원들에게 새삼 발견되어 멋지게 영화화된 게 '미술관 옆 동물원'이다. 10년 가까이 이 영화사 저 영화사를 떠돌다가 어느 여성 프로듀서 눈에 띄어 세계적 히트작이 된 게 '사랑과 영혼'이다. 누구의 눈에 띄고, 누구의 손에 의해 선택되느냐에 따라 그 시나리오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수도 있고, 영화사에 빛나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제작자 말 절대로 액면 그대로 믿지 마세요. 그렇지만, 지망생 여러분! 기본기는 최소한 갖추고 꿈을 키우세요.

(심재명ㆍ명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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