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시청률? 스타 작가에게 물어보라

방송사 선택·캐스팅 등 드라마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 상위 10~20명 A급 작가는 집필료 회당 2000만원 넘어

작가 파워가 그렇게 대단한지 몰랐어요.” 정상급 연기자 A의 매니저는 지금도 지난 2005년 드라마 촬영 때 일을 생각하면 언성이 높아진다. A는 대본을 읽고 자신의 배역에 나름대로 색깔을 입히려 했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A를 나무랐다. 그저 자신이 시키는 대로 연기를 하라고 했다. 그렇게 사소한 갈등이 빚어지길 수차례. 어느 틈엔가 남자 주인공이었던 A의 배역은 눈에 띄게 비중이 작아졌다. ‘이번엔 제대로 뜨나’ 싶었지만, 극 중 비중이 줄면서 대중들의 관심도 슬그머니 줄고 말았다.

바야흐로 ‘작가 전성시대’다. 검증된 작가의 이름은 그야말로 안정된 시청률을 보장하는 ‘절대반지’다.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들은 이제 스타 연기자 외에 스타 작가 모시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작가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청률. ‘스타 작가’의 개념이 어제오늘 생겨난 건 아니지만, 최근 주요 드라마의 시청률 성적표는 ‘스타 배우 무용론’과 함께 ‘스타 작가의 필요성’을 역설하기에 충분했다.

고소영, 김하늘의 브라운관 복귀로 관심이 쏠렸던 ‘푸른 물고기’와 ‘90일, 사랑할 시간’은 한자릿수 시청률에 머무르다 종영했고, ‘왕년의 톱 배우’ 이미연, ‘돌아온 아이들 스타’ 윤계상이 호흡을 맞췄던 ‘사랑에 미치다’ 역시 조용히 막을 내렸다. 이정재, 최지우 투톱을 내세웠던 대작 ‘에어시티’에 대한 반응 역시 신통찮기는 마찬가지. 에릭(‘무적의 낙하산 요원’), 현빈(‘눈의 여왕’) 등도 줄줄이 실패의 쓴맛을 봤다.

이에 반해 인기 작가들의 작품들은 톱스타 없이도 승승장구했다. 최근 종영한 ‘내 남자의 여자’(김수현 작가), 지난해 장안의 화제였던 ‘하늘이시여’(임성한 작가)가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임성한 작가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장서희, 윤정희 등 작품마다 새로운 스타를 발굴해내고 있다.

최완규 작가는 지난해 ‘주몽’이 방영되기 전부터 제작사의 주가를 띄워놓더니 iMBC의 매출액을 전년 대비 42%나 신장시켰다. 공동 제작사 초록뱀과 올리브나인은 해외 수출 등으로 수십억원의 순수입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성적표가 모든 걸 말해주고 있으니 답은 뻔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작가 지망생들 역시 날로 늘고 있다. 다양한 교육기관도 생겨나고 있고, 각 방송사가 주관하는 극본 공모전에도 수많은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 매 공모전 때마다 1000대 1 이상의 경쟁률은 기본이라는 후문. 작가가 되는 데는 다양한 경로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극본 공모전 당선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후 작가 매니지먼트사나 외주 제작사 등과 계약해 작품 개발에 나서는 게 기본 코스다.

국내 최초의 작가 매니지먼트 회사인 드라마뱅크 전윤지 실장은 “아무래도 검증되지 않은 신인작가들의 경우 제작사들이 기용을 꺼리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렵다”며 “프로젝트별로 작가들을 공모해 개발에 나서기도 하고, 기획안이 나오면 그에 맞는 작가들을 영입해 팀을 꾸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코스에 진입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방송작가협회에 등록된 작가 수는 1957명. 협회 등록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드라마의 경우 미니시리즈나 연속극 한 편 이상 집필자, 단막극의 겨우 60분짜리 세 편 이상 집필자 이상에 한해 등록이 가능하다. 이런 조건 때문에 협회에 등록하지 못한 채, 실제 작가로 활동하는 인원은 훨씬 더 많은 셈이다.

이들 중 다수를 차지하는 무명-신인 작가들은 대개 적은 기본급에 개발비 등만 지급받고, 극본이 개발되면 정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집필료는 제작사와 계약을 한 작가들의 미니시리즈 데뷔작일 경우 회당 600만원 선. 하지만 편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름값이 떨어지는 작가의 작품은 방송사가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편성을 꺼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름값만으로도 ‘먹고 들어가는’ 거물급 작가들은 사정이 다르다. 전체 작가들 중 상위 10~20명에 포함되는 이들 A급 작가들은 집필료만 회당 2000만원 이상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김수현 작가는 올 초 삼화네트웍스와 50회 분량의 드라마 2편 집필료로 35억 7500만원을 받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A급 작가들은 방송사 선택은 물론 캐스팅 등 드라마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작가들의 입지가 높아지는 데 대해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고,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는 말을 들어 지금의 흐름이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특히 작가들은 이같은 작가 득세 흐름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아직 멀었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 한국방송작가협회의 한 관계자는 “내가 전체 작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작가들의 힘이라는 건 일부 A급 작가한테만 해당하는 말이고, 나머지 작가들에 대한 처우는 아직도 열악하다”고 말했다.

반면, 중견 매니저 B씨는 “막말로 예전에는 방송사와 제작사 관계자들에게만 신경 쓰면 될 것을 이제는 작가 눈치까지 봐야 하니 힘든 점이 이만저만 아니다”며 “작가들의 눈 밖에 나면 시쳇말로 국물도 없다”고 말했다.

일선 방송사 PD들 역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상황. 한 방송사 PD는 “검증되지 않은 작가와 작업을 하려면 결과에 대한 ‘총대’를 매야 하기 때문에 면피 차원에서라도 유명 작가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A급 작가가 작품 내·외적으로 행사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연기자들의 대본 연습 현장에 꼬박 참석하는 김수현 작가는 그나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편이다. 깐깐함 때문에 이따금 마찰을 빚기도 하지만, ‘김수현 표 드라마’의 성공 요인을 바로 여기서 찾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지나친 간섭과 실력 행사로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작가한테 한번 ‘찍힌’ 연기자는 엄청난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비중이 줄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건 예사고 심지어 중도 하차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반면 ‘간택’을 받은 연기자는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르는 행운을 거머쥐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MBC 새 일일연속극 ‘아현동 마님’의 제작발표회가 작가의 거부로 취소돼 높아진 작가 파워를 실감케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볼멘소리를 하는 쪽은 외주 제작사. 방송사와 배우, 작가 사이에서 골고루(?) 눈치를 봐야 하니 ‘미칠 노릇’이라는 것이다. A사의 작품을 하기로 하고 향응을 받았다가 느닷없이 B사와 계약하는가 하면, 집필 계약이 완료돼 준비 작업을 마친 상태에서 ‘먼저 계약한 회사의 작품부터 마저 다 하고 집필하겠다’는 등의 제안을 해 넋을 빼놓기도 한다. 새터데이미디어(SDM) 구성목 제작총괄팀장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일면 타당한 일이지만, 어느 한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며 “제작사로서는 연기자와 작가 개런티 등을 빼고 나면 남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김천홍 스포츠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