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어떤 죽음, 깊은 슬픔
시나리오작가 최고은의 안타까운 죽음… 창작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현실을 돌아보다

한 시나리오작가가 세상을 떴다. 설을 앞둔 지난 1월29일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그는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8기, 시나리오 전공)를 졸업한 최고은 작가다. 2006년 직접 쓰고 연출한 단편영화 <격정 소나타>는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완성한 시나리오들이 영화 제작까지 이어지지 못하면서 침체의 시간을 보냈고, 더욱이 유서에 가깝게 ‘남는 밥과 김치를 달라’는 쪽지를 통해 극단적인 생활고가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일련의 일들을 되짚으면서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979년생 최고은 작가는 이제 막 자신의 능력을 뽐낼 나이에 안타까운 변을 당했다. 지난 1월29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의 한 다가구주택 단칸방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있던 그를 발견한 사람은 또 다른 세입자였다. 사망 전 그 세입자의 집 문 앞에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라고 쓴 쪽지를 붙여놓은 상태였다. 쪽지를 보고 사정을 딱하게 여겨 음식을 챙겨왔을 때 시신을 발견한 것.

이후 영상원 재학 시절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기 몇명이 장례식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여의고 하나뿐인 오빠와도 연락이 끊긴 채 혼자 살아왔기에, 먼 친척이 중심이 된 유가족도 딱히 장례를 치를 비용이 없었다. 영상원에서 그를 직접 가르쳤던 이창동 감독은 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듣고는 영상원 동문회에 연락을 취했고, 얼마간의 금액이 모이면서 동문들 사이에 소식이 알려지게 됐다. 동문회에서 모은 비용은 유가족에 전달됐고 그 비용으로 화장을 치렀다. 영상원 김홍준 교수도 “충남 연기군에 있는 은하수공원에서 화장을 한 것으로 안다”며 “학교쪽이 유가족에게 학교장으로 장례를 치를 것을 건의했으나 유가족이 너무나 비참한 죽음이라 학교장이 부담스럽다고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녀의 작품들은 영화화되지 못했다

최 작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건 지난 2월8일 <한겨레> 기사(“‘남는 밥 좀 주오’ 글 남기고 무명 영화작가 쓸쓸한 죽음”)를 통해서였다. 이때부터 영화인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고 그 내용은 포털 사이트의 온라인 뉴스는 물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내가 영화(<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흥행 소식에 기뻐하고 있을 때 후배 감독이 ‘남는 밥 좀 달라’는 쪽지를 남긴 채 싸늘하게 숨을 거두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고, 인디플러그 고영재 대표 또한 “마치 피라미드 구조처럼 메이저의 투자만을 목놓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제작 풍토에서 ‘투자’라는 조건은 만기가 없는 어음과 같다. 휴짓조각 어음을 들고 어떻게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젊은 시나리오작가의 죽음에 마음이 무겁다”고 글을 남겼다. 하지만 ‘굶어 죽었다’고 하는 엄청난 사실 앞에 인터넷을 채운 댓글들은 좀더 극단적이었다. ‘알바라도 하지 그랬냐’는 인면수심의 악의적 댓글부터 ‘죽음을 방관하는 한국영화는 무조건 불법 다운로드로 보겠다’는 요지의 초점을 빗나간 분노의 댓글까지 사건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비슷한 시기 다음 ‘아고라’에 최 작가의 ‘같은 과 후배’라고 밝힌 한 네티즌의 ‘그동안 정말 말하고 싶었다. 영화 제작사의 횡포’라는 글 또한 공분을 일으켰다.

이후 영상원은 교수진과 학교쪽이 긴급회의를 열어 ‘앞으로 이와 관련해 어떤 언론과도 접촉하지 않을 것’을 공식적인 입장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지난 12일에는 영상원 시나리오 실습실에서 최 작가를 기억하는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다.

과거 모 영화사에서 그와 함께 일한 적 있는 인디스토리 조계영 홍보팀장은 최 작가가 졸업반이던 2006년 조창인 원작의 <등대지기>를 각색하고 있었다고 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셨는지 한분만 계셨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등대지기> 자체가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라 그때 자신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작업하는 사무실 안의 모든 벽에 포스트잇과 메모지를 쫙 붙여서 이야기 구조를 아주 잘게 분석했던 게 인상적이었다”며 “작업 방식이 굉장히 꼼꼼하고 치밀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눈이 크고 얼굴이 늘 웃는 얼굴이어서 보는 사람들마다 호감을 가지는 사람”이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결국 <등대지기>는 영화화되지 못했다. 그리고 최 작가의 지난 5, 6년의 시간은 계속 그런 과정의 반복이었다.

실업부조제도가 현실화되었다면

현재 최 작가가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사건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물을 수 있는 계약이 있었는지 밝혀진 것은 없다. 하지만 생계의 사각지대에 몰려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2005년 영화산업노조가 출범하면서 산업 시스템과 함께 정책 당국에 대한 비판은 줄곧 반복돼왔다. 영화산업노조는 지난 8일 성명서를 통해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반복되는 실업기간 동안 실업 부조금을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요구를 수없이 했지만 지금까지 집행된 영화발전기금의 몇 %나 이런 목적에 쓰였는지 답답하기만 할 뿐”이라며 “만약 실업부조제도가 현실화돼 고인이 수혜를 받았더라면 작금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명백한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논의’가 촉발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중요한 것은 늘 시한폭탄처럼 안고 있던 가시적인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영화 생태계의 안정적인 순환이랄까, 영화산업노조 출범 이후의 합리적 변화에 대한 모색 등 어딘가 정체돼 있던 의문들에 대한 무관심을 깨운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사건에 대한 접근과 분석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서울 구로구 동우애니메이션 사옥에서 열린 ‘콘텐츠정책 대국민 업무보고’에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에 대해 “장관에 취임하면서 약속한 것 중 하나가 ‘문화 안전망’ 구축이다. 예술인 처우 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8, 9년차까지 생활고에 시달리는 직업의 생리”
- 노혜영/ 시나리오작가·<싱글즈> <미녀는 괴로워>

얼마나 고립돼 있었기에 그런 지경까지 가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났다. 그런 쪽지를 남겨놓을 정도면 어쨌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다. 사실 신인 작가의 경우 계약 조건을 꼼꼼히 따지고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챙기기 힘들다. 계약을 하고도 캐스팅이 안되면 무한정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지고, 투자가 확정될 때까지 기약없는 시간들이 흘러가기도 한다. 다른 일을 하려 해도 ‘네 임무는 다하고 가야지’라는 암묵적인 압박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정작 시나리오를 ‘털고’ 나면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다. 현장을 방문해도 ‘저 사람은 누구지?’라는 시선으로 볼 때 외롭고 딱히 불러주는 사람도 없다. 졸지에 외부인이 된다고나 할까. 촬영, 조명 등 다른 스탭들은 어떤 ‘라인’이라도 있지만 작가들은 철저히 고립돼 있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시나리오작가’라는 타이틀로 무난하게 생활해온 것 같지만 8, 9년차가 될 때까지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게 엎어지는 작품들 포함해서 평범하게 살아와도 그랬다는 얘기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서나 ‘받은 돈’보다 ‘받을 돈’이 더 많은 게 시나리오작가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개인적 사정은 차치하고라도 그녀가 끔찍한 생활고에도 영화인으로 남은 것이 자발적 선택인지, 불공정 계약에 묶인 것인지 궁금하다. 뒤늦게 이 얘기를 접하고는 혼자서 작업하는 후배 여자 시나리오작가들에게 좍 문자를 돌렸다. 언제든지 힘들면 언니한테 얘기하라고. 나 역시 무력감을 떨칠 수 없었고 정말 마음이 아프다.

“집단으로 일반화시키지는 말길”
- 원동연/ 리얼라이즈 픽쳐스 대표·한국영화제작가협회 부회장

며칠 전 후배 감독을 통해 고 최 작가의 비보를 전해 들었다. 진심으로 명복을 빈다. 영화계에서 특히 작가들의 처우가 더욱 어려운 거 통감한다. 많은 분들이 공분하고 원통해하고 슬퍼하는 마음 다 동감한다. 나 자신이 피고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지만 이런 비극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린 영화를 해야 한다. 그렇게 공분하고 원통하고 슬픈 마음 가눌 길 없지만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실제로 누군가로부터 부당한 사기를 당했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게 있다면 엄격하게 밝혀야겠지만, 팩트 확인 없이 영화계 전체를 매도하고, 부당하고 불합리한 집단으로 일반화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번 일로 한국영화 다 불법으로 볼 거다, 제작사, 투자사는 악의 축이라는 식의 글들은 정말 가슴이 아프다. 물론 부당한 계약을 한 제작사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작가, 스탭분들도 있겠지만 영화계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다시 한번 고인의 죽음에 머리 숙여 애도를 표하고 명복을 빈다.

“스탭들을 위한 실업급여 필요”
- 최진욱/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알까봐 망설였다. 하지만 영화산업구조가 이대로 가면 어차피 또 다른 죽음이 터질 수 있으니, 공식적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현재 산업 시스템은 투자사에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제작사도, 배우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슬퍼하지만 말고 현장 영화인들의 인권, 노동시간, 임금 지급 등을 모두 지켜야 한다. 현재 한국영화 산업시스템에 무엇이 절실한지 현장 영화인과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 투자사나 제작사가 수익이 안 난다, 우리도 힘들다는 얘기만 하지 말고 ‘스탭들에게 돈을 주지 못해 힘들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최 작가의 안타까운 사건 이전부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담판을 지을 계획이었다. 내용은 아직 계속 협의 중인데 크게 현장 영화 스탭 최저임금 지급, 노동시간 준수 등 노동자 인권과 관련한 여러 법 조항을 논의할 생각이다. 또 하나, 역시 제협과 함께 논의하고 있는 부분인데 ‘영화 스탭 고용복지위원회’ 형태로 법인을 설립하려고 한다. 민간 법인 방식이다. 한마디로 민간에서 자금을 조달해 스탭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내용이다. 왜 공적 법인을 설립 안 하냐고? 그 역할을 영화진흥위원회가 해야 하는데 현재 영진위가 그걸 할 만한 역량이 되나. 그런 역할을 못하니까 우리와 제협이 하겠다는 거다. 일단 다음주에 최종 합의에 들어가고,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착실하고 꼼꼼하게 추진할 것이다.

글: 씨네21 주성철/김성훈 ㅣ 사진: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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