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나리오 없이 좋은 영화 없다"
시나리오에 관해 알고싶은 것들 20문20답-박계옥

1.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게 있나?

오랫동안 시나리오는 개인별로 영화를 보며 공부하는 주먹구구식 학습방법이 전부였다. 그러나 최근 방송작가나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몇몇 교육기관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각 대학 영화과에서도 시나리오에 대한 강의를 하지만 뒤늦게 시나리오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에겐 사설 교육기관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안다. 필자는 시나리오 작가협회 부설 영상작가 교육원을 나왔는데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도움이 된다. 교육기관을 선택할 때 어떤 선생님이 강의를 하는지 주의깊게 살펴보고 선택하는 게 좋다. 교육원에서 좋았던 것은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작가수업이라는 게 궁극적으로 자기 혼자 하는 것이지만 같은 입장의 사람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

국내에서 시나리오가 책으로 나온 것은 영화진흥공사에서 발행하는 <한국시나리오선집> 정도. 간헐적으로 김상수씨의 <학생부군신위> 시나리오처럼 책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상업성이 없어 많지 않다. 관련서적 중엔 사이버 필드가 쓰고 유지나씨가 번역한 <시나리오란 무엇인가>가 괜찮은 책이다. 요즘 할리우드영화 시나리오의 구조와 관습을 익힐 수 있다. 교육원에서 가르치는 방법 중엔 이런 것도 있다. 비디오를 틀어놓고 그 영화를 시나리오로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각 장면을 번호붙여 나누고 장면마다 대사와 지문을 써보는 방법.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모르지만 영화의 문법인 신과 시퀀스 등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 시나리오가 영화가 되는 과정은 어떤 것인가?

시나리오가 영화가 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영화사나 감독이 작품기획을 해서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의뢰하는 경우거나 작가가 그냥 쓴 시나리오를 영화사가 채택, 영화화하는 것이다. 일단 영화화가 결정되면 영화사의 감독이 함께 작업하게 된다. 상업영화는 감독의 의지보다는 영화의 컨셉에 맞춰서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고, 삼고, 길게는 사고 정도 선에서 끝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십고까지도 쓴다. 이렇게 오래 작업하는 이유는 감독 혼자 모든 것을 통제하는 작가영화가 아니라 대부분 흥행을 목표로 한 상업영화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관여하면서 흥행요소를 첨가하거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수정 혹은 삭제한다. 시나리오 완고가 나오면 캐스팅이 되고 촬영이 시작된다.

3. 신인은 어떤 통로로 자신의 시나리오를 영화화 시킬 수 있는가?

신인인 경우 대부분 공모에 염두를 둘 것이다. 그러지 않길 바란다. 공모는 공모일 뿐이고 그저 글 재주가 있다는 것만 확인하는 수준이다. 나도 공모 출신이지만 공모에만 매달리지 말고 직접 영화사를 찾아가는 게 좋다. 실제 영화사에서도 늘 좋은 시나리오가 없다는 게 불만이다. 영화사에 직접 시나리오를 던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모든 영화사가 좋은 시나리오 찾기에 혈안이 돼 있으니까. 설령 그 작품이 당장 영화가 되지 않더라도 당신에게서 능력이 보이면 다른 작품 준비할 때 연락이 갈 것이다. 어차피 창작작업은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것 아닌가.

4. 신인인 경우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는 없는가?

한번 시켜놓고 "아니면 접으면 되지" 하는 얄팍한 제작자들이 있다. 영화가 되든 안되든, 일단 일을 시작하기로 했으면 진행비와 계약금을 받아야 한다. 작업을 진행하다 영화가 되지 않으면 글쓰던 사람은 졸지에 손가락 빠는 신세가 되고 만다. 물론 신인에게 돈 얘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같이 작업하는 제작자가 프로의식이 있다면 돈을 줄 것이다. 안 주면? 줄 때까지 쓰지마라. 연락 안오면? 연락하지 마라. 영화사에서 전화 안 온다고 조바심내지 말고 자기 시나리오를 써라.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닌가.

5. 영화의 소재는 어떻게 찾고 어떤 게 영화가 될만한 소재인가?

충무로에선 "야마가 있어야 흥행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야기가 중언부언하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소재라면 영화가 될 수 있다. 물론 충무로에서 금기시하는 소재도 있다. 정치문제를 다루거나 스릴러, 공포 같은 장르. 한국엔 아직까지 코미디, 액션 이외의 장르영화가 거의 어렵다. 헐리우드에선 1백년 동안 만들어진 장르 컨벤션이지만 한국영화가 받아들이는 부분은 극히 적다. 제작비 문제도 고려사항이다. 요즘은 컴퓨터 그래픽을 쓴 영화가 많지만 그래도 SF영화나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는 스펙터클한 영화는 영화화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심의 문제도 있다. 다들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서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묘사의 수위를 조절하고 상상력의 확장을 막는다. 하지만 영화가 될 만한 소재는 무궁무진한 셈이다.

6. 작품 취재는 어떻게 하나?

필자의 경우 최소한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고 한다.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나머지 이야기는 상상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어떤 영화냐에 따라 최재방식이나 내용이 달라진다. <미스터 콘돔> 같은 영화는 "아이를 갖기 위해 벌이는 불임부부의 해프닝"이라는 아이디어만 갖고 작업했다. 필요한 최소부분을 취재하고 나머지는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반대로 철저한 취재로만 만들 때도 있다.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는 상상이 아니라 취재를 통한 실제상황만으로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스카이 닥터>의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흑산도에 가서 취재를 많이 했다. 혼자 상상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게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취재가 됐다고 느껴질 때 취재를 그만두는데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다보면 이야기 방향을 잡지 못해 헤매게 되기 때문이다.

7. 등장인물은 어떻게 만드나?

필자의 예를 들면 <깡패수업>에서 박중훈이 맡은 깡패역은 동네 목욕탕에서 만난 인물이다. 우리 동네 목욕탕 중 한곳은 유난히 깡패들이 많이 오는 곳인데 어떤 때 가보면 절반 정도가 몸에 문신을 새긴 사람들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목욕탕에서 보는 깡패들은 무섭기보다 우습다는 사실이다. 특히 벌거벗은 모습이 그렇다. 인물을 만드는 방식은 그런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널린 게 인물이다. 꼼꼼히 보면 "저 놈 참 신기하네" "이상한 친구군" 싶은 사람들이 많다. 물론 주변에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닐거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난 여자에 대해 모른다. 내 소설에 나오는 여자는 그저 예전에 내가 읽었던 소설 속 인물이 뒤섞인 것뿐"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있다.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 따온 인물도 충분히 등장할 수 있다.

8.인물의 캐릭터 구축은 어떻게 하는가?

가령 '착하고 원만하고 대인관계에 능한 사람' 이런 건 캐릭터가 아니다. 욕은 어떤 욕을 즐기는가, 걸을 땐 어떻게 걷는가, 여자를 보면 어떻게 반응하는가 등 아주 세밀한 부분이 정해져야 인물의 캐릭터가 나온다. 나도 아직 캐릭터를 만드는 방식을 자신있게 말할 만큼 성숙하지는 않았다. 아마 관찰의 힘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9. 시나리오 구성은 어떻게 하나?

정답은 없다. 필자는 컨셉이 잡히면 주로 비디오를 많이 본다. 특히 같은 장르의 영화를. 가령 로맨틱 코미디를 써야 할 때는 비슷한 헐리우드영화를 모델로 본다. 그러면 버려야할 이야기와 버리지 않을 이야기가 구분이 된다. 헐리우드는 1백년동안 어떤 이야기 구조가 관객을 끄는지를 만들어왔다. 그걸 잘 분석하면 구성에 대한 감이 잡힐 것이다. 영화개론서 몇권보다 그게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물론 초보자는 내러티브, 플롯, 신, 시퀀스 등 기본적인 영화문법은 공부해야 한다. 그러고나서 영화를 보면 영화의 구조가 보이고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조금 더 나가면 장르의 문법이란 게 있다. <스카페이스>라는 영화를 예로 들면 후반부에 알 파치노가 어린아이를 보고 암살시도를 포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상황이라면 그런 바보짓을 할 사람이 없겟지만 오래 지속된 장르의 관습이 그 장면을 그냥 지나치게 만든다. 아주 사소한 문제가 발단이 돼서 스카페이스는 최후를 맞고 마는 것이다.

10. 시나리오 한편의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

일반적인 상업영화는 1백분 정도 된다. 이것을 신 별로 계산하면 1백10~1백30신 정도. 나를 가르쳤던 나한봉 선생은 "A4용지 65매를 넘으면 시나리오가 아니다"하고 말했는데 요즘 영화의 기준으로 보면 A4용지 70~80매 정도 분량이 아닐까 싶다. 시퀀스로 따지면 보통 영화 한편은 10~12개 시퀀스로 구성된다.

11. 시나리오 고료는 어느 정도인가?

많지 않다. 시나리오는 방송드라마처럼 저작권이 형성되지 않아서 고료받는 게 전부일 때가 많다. 터무니 없이 낮은 시나리오 고료를 책정하면서 "영화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하고 말하는 제작자들이 있다. 그럴 땐 분연히 시나리오를 들고 일어서라. 그리고 말하라. "당신도 이 시나리오 없으면 영화 못 만들잖아. 신인이라고 얕보면 시나리오 안 줘!" 그러면 제작자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고료를 터무니 없이 깎지는 못할 것이다. 신인일 때는 1천만원에서 1천5백만원 사이. 아마 국내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시나리오 작가는 <투캅스>시리즈의 김성홍, <게임의 법칙><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결혼 이야기><구미호>의 박헌수 정도로 4천만원~5천만원선. 대부분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전편의 흥행성적에 따라 다음영화 시나리오의 가격이 달라진다. 나는 중간급인 3천만원선이다.

12. 시나리오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흥행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적용해서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면 가능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투캅스2>를 쓴 김성홍은 흥행지분으로 몇억원을 벌었다고 알고 있다. 현재로선 전업작가가 버티기 힘든 구조다. 창작시대, 작가시대 등 몇몇 시나리오 창작집단이 전업작가를 양성하긴 하지만 돈을 많이 벌기는 어렵다. 결국 밥벌이가 되려면 저작권 싸움에 동참해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헐리우드는 감독과 작가가 각각 5%선에서 저작권을 인정해 주고 있다. 시나리오에 자신이 있으면 당당히 인센티브를 주장하는 게 좋다. 제작자가 뜨뜨미지근하게 굴면? 단호하게 시나리오를 들고 일어서라! 그리고 말하라! "너랑 안해!"

13. 감독과 작가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공생관계다. 누구 하나가 월등하게 잘났다고 영화가 잘 되는 게 아니다. 감독에게 창조적인 이야기를 제공해주는 것이 작가의 몫이고 좋은 이야기를 좋은 그림으로 바꾸는 게 감독의 몫이지 다른 게 아니다. 음악, 소품, 의상 모든 것이 시나리오의 느낌에서 출발한다. 평론가들이 작가주의 운운하며 감독에게 몽땅 박수를 쳐준다 해도 억울해 할 거 없다. 상업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라서 그런거다. 물론 감독마다 차이가 있다. 좋은 시나리오를 버려놓는 사람도 있고 시나리오보다 훨씬 나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있다. 그러나 결코 좋은 시나리오 없이 좋은 영화는 없다.

14. 그러면 무엇이 좋은 시나리오인가?

사실 좋은 시나리오란 사후적으로만 확인되는 게 사실이다. 좋은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좋은 시나리오라고 우겨봐야 소용없는 거니까. 근거가 불분명하다.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 자체는 시나리오 작가가 만드는 거고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는지, 흥행성이 있는지는 판단할 수 있을거다. 사이버 필드가 쓴 <시나리오란 무엇인가>를 보면 로버트 다우니가 쓴 <차이나타운> 시나리오를 좋은 시나리오의 예로 드는데 정말 그런지는 아직 모르겠다. 물론 이야기의 짜임새, 완성도, 일관성, 독창성 등 여러가지 평가기준이 있긴 할 것이다.

15. 촬영에 들어간 뒤 작가는 무엇을 하나?

당연히 다른 소재를 찾아 시나리오를 써야한다. 때에 따라 현장에 붙어있는 작가도 있고 인사차 한 두번 들르는 작가도 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콘티하면서 감독이 시나리오를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이유없는 바꾸기라면 싸워야 한다. 대부분 망하는 길로 가는 일이 많다.

16. 각색은 무엇인가? 왜 하는가?

원래 시나리오로 원활하게 진행이 되지 않을 때, 예를 들어 시나리오가 투자자의 구미를 당기지 않을때나 배우 캐스팅이 어려울 때, 또는 흥행에 자신이 없을 때 각색작업을 하게 된다. 각색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야기 틀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때는 인물의 내적 동기, 자잘한 에피소드, 대사 같은 것을 주로 손보지만 원안의 구성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느낌만 남기고 전체를 다 바꾸는 때도 있다. 새로운 시나리오가 생기는 셈이다. 이럴 때 영화사쪽과 마찰이 생길 수 있다. 각색료와 각본료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보통 각색료가 각본료보다 적지만 헐리우드에선 각색료가 더 많을 때도 많다.

17. 시나리오 작업은 주로 어디서 하게 되는가?

영화사와 계약이 되면 보통 영화사에서 마련해주는 호텔이나 콘도, 여관 등에서 하게 된다. 당연히 좋은 여건에서 작업하면 좋은 글이 나올 확률이 커진다. 바퀴벌레 나오는 여관에서 작업하라면 못하겠다고 해라. 머리 속에서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데 어디 글이 써지겠는가.

18. 시나리오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시나리오는 제작비 계산서이기도 하고 모든 스텝이 일을 시작하게 하는 근본이다. 물론 감독의 생각이나 느낌이 영화의 색깔을 바꾸기도 하지만 좋은 시나리오가 아니면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 시나리오는 영화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글쓰는 이들이여! 자신감을 가져라! 당신이 영화의 신이다!

19. 여타의 이야기 구조를 가진 글쓰기와 시나리오 쓰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말 그대로 활자매체와 영상매체의 차이다. 결국 시나리오는 영화의 문법에 맞게 이야기를 배열하는 것. 활자의 문법처럼 영화도 문법이 있다. 커트, 신, 시퀀스, 플롯, 내러티브 등,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은 소설쓰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림이나 이미지로 만들려면 아주 구체적인 설정을 해야 하고 적절한 비약, 암시, 복선 따위를 준비해야 한다. 영화문법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이고 한 영화를 여러번 보면서 그 구조를 완전히 익히는 것이다.

20. 끝으로 신인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우선 영화하시는 선배들께 미안하다. 쥐뿔도 모르는 놈이 함부로 말한다는 소리 듣겠다. 하지만 나 역시 어렵고 힘든 시기가 있어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미력하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 날 가르치던 윤삼육 선생이 한신 말씀이 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라." 번번이 잊고 살지만 모범답안인 거 같다.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법이다. 준비하는 이들의 건투를 빈다.

<글 : 박계옥 / 시나리오 작가
<돈을 갖고 튀어라> 각색, <깡패수업> 각본, <미스터 콘돔> 각본,
<박대박> 각색, <스카이 닥터> 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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