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종일 무풍지대를 헤맸다"
한 시나리오 작가의 일기-육상효

01년0월0일

1주일 남았다. 감독은 내가 가져갈 시나리오가 완벽하길 기대하며 헌팅을 떠났단다. 조금 전 헌팅 차 속에서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었다. 잘 돼가냐고 물어서 그럭저럭이라고 얼버무렸다. 세트를 어떻게 할 건지, 조연급 중에서 누굴 캐스팅할 건지가 전적으로 이번 시나리오에 달려 있다고 했다. 조감독은 조감독대로 소품 준비를 체크해야 되는데 확정 시나리오가 없어서 일하기가 고민스럽단다. 헌팅다니는 사람들이 차 속에서 음악은 왜 틀어놓나. 헌팅이니 당연히 경치는 좋을거고, 동행한 제작부장의 평소 눈썰미로 보면 점심식사는 틀림없이 생선회에 소주가 곁들여질 거다.

나만 하루종일 무풍지대에서 헤매고 있다. 앞으로도 뒤로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무풍지대. 하루종일 내 재능을 비웃으며 커서를 껌벅거리는 노트북 모니터만 바라봤다.
끌수도 없고, 놓고 나갈 용기도 없다. 차라리 진짜 무풍지대라면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결말은 아는데, 중간에서 결말로 넘어가는 브릿지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취재가 제대로 되지 않았나? 아니면 애초부터 나와 맞지 않는 이야기를 억지로 꾸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정말로 시나리오 쓰기란 내 재능엔 가당치도 않은 일인가?

담배개비 수는 평상시의 두배가 넘었다. 냉장고에 남은 맥주를 꺼내고 싶은 강렬한 유혹 참는다. 그것은 아예 생각해 보지도 않겠다는. 그래서 오늘치의 노동을 종결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본다. 감독을 충무로의 한 다방에서 만난 적이 몇달 전이고, 같이 술을 마시며 서로 관심있는 소재를 얘기하던 어디쯤에서 감독이 시놉시스 한편을 주탁위에 올려 놓았고, 그러다가...마지막은... 서로가 엉망으로 취해서 한번 잘해보자...어쩌구, 하면서 헤어졌다. 다음날부터 내 결정을 후회하다가 영화사에서 전화가 왔고, 나가서 별다른 항변도 못하고 주는 계약금을, 아주 솔직히 얘기해서는 가뭄의 단비처럼 고맙게 받아 집으로 왔고, 오는 길에 계약금 받은 표시로 아이 자전거와 책 몇권을 샀고, 다음날부터 후회와 부채감과 재능에 대한 절망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안 했어야 되는 거 아닌가?

초등학교 때부터 싸움이라면 무조건 맞는 것인 줄 알고 살아온 내가 세상에 액션이라니. 대부분이 액션인데도 여자주인공의 독특한 인물설정의 가능성과 필름 누아르의 색채를 가미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끌렸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던가.

그래도 이번 감독은 여러모로 일하기 좋은 감독이다. 시나리오 작가가 가장 괴로울때는 감독과 자신이 작품에 대해 생각하는 방향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일을 시작하고, 그것도 한참 늦게 발견할 때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설득이 안되면 결국 감독의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일이고, 그때부터 시나리오 작가는 아무런 확신없이 써가야 된다. 그것은 마치 답을 아는 문제를 틀리기 위해 사지선다형에서 오답들을 찾아 써내려갈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고통을 줄이는 유일한 길은 내 스스로가 내 스스로에게 감독의 생각을 주입하고 설득시키는 것이다.

안 될 것 같지만 고통을 줄이려는 사람의 본능은 위대한 것이라 성공할 때도 많다. 감독과 처음부터 같이 작업하는 경우, 단언하건대 시나리오 작가의 존재는 감독과의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감독과의 치열한 싸움과 설득과 공감과 불편함과 희열과 실망, 그 모든 것을 겪었을 때,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이 경우도 객관적으로 그것이 좋다고 단언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여전히 좋은 생각은 나오지 않는다. 직장을 그만둘때 결사적으로 만류하던 어머니의 지혜를 나는 왜 그때 갖지 못했을까. 오늘은 일단 자자. 가장 불편한 자세로 맨 방바닥에 이불도 없이. 수십명의 스텝들이 내 시나리오만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02년 0월 0일

아침 일곱시에 00우체국 정문앞에 도착했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들어가고 있다. 그들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본다. 아니나 다를까, 수위가 나만 불러세운다. 용건을 묻는다. "아르바이트..."라고 얼버무리면, 한참 나를 아래위로 훑는다. "아르바이트를 상당히 늦게 시작하셨네요."

안내표찰을 달고 연말 대목에 바쁜 우체국 창구에 서다.

오늘은 소포담당 창구직원인 아가씨와 꼭 차를 한잔해야 된다. 될 수 있으면 친절한 얼굴로 그쪽을 자주 보지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는 이 늙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오늘 못하면 큰일이다. 아르바이트가 오늘로 끝나지 않는가. 동남 아시아계 노동자로 보이는 청년이 와서 발신국의 우편번호를 찾는 방법을 서툰 영어로 묻는다. 가르쳐주고 나서 아무도 못보게 수첩에 적는다. "동남 아시아 노동자, 연말 선물을 집에 보낸다."

취재는 어떤 경우에도 직접 한다. 누구에데 부탁도 시키지 않는다. 취재를 교섭하는 것부터 이미 취재고, 취재하러 가는 길에서 대부분의 좋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가장 좋은 취재는 취재현장에서 취재의 대상과 목적이 바뀌는 것이다. 그만큼 세상 구석구석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하게 살아 있다.

03년 0월 0일

9시에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책상으로 가, 꿈의 내용을 되살리려 애쓴다. 간밤 꿈에서 명서과 혜영이 만나는 장면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러나 되지 않는다. 하기야 꾸었던 꿈의 내용을 아침에 기억해내 쓸 수 있는데도 20년의 내공이 필요하다는데 아직 10년도 되지 않은 내게 가당한 일이겠는가.

모든 장면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다. 전체 내러티브가 요구하는 그 장면의 역활을 수행해야 하고, 그 장면 자체가 하나의 세계로서 그 세계의 가치를 가져야 한다. 내러티브 상의 역활은 분명히 명석과 혜영이 만나야 하는데, 장면이 영 아름답지 않다. 대사를 줄여보기도 하고, 소품을 부여해 보기도 하지만 영 독특한 맛이 없다. 드러냄과 가림, 내가 생각하는 한 모든 예술은 이 갈등이다. 너무 드러내면 얄팍해지고, 너무 가리면 관객과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다.

담배를 들고 베란다로 나간다. 봄이 흐드러지는 스키장에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하기야 화창한 봄날 그것도 평일에 스키장을 찾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충무로에서 시나리오를 쓴다는 일은 전국에 산재한 모든 숙박업소와 관계를 맺는 일이다. 서울 변두리의 여관, 호텔에서부터, 강원도 산골의 콘도, 남쪽 산사 앞의 민박집까지. 이상하게도 숙박업소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신뢰를 영화에 관계된 모든 사람에게 주는 모양이다. 어느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대로 영화가 기본적으로 떠돌이 예술이라 그런가. 하기야 어디서 쓴 들 무슨 상관인가. 자동차 속에서도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관과 상복이 놓여있는 현장 소품 창고에서도 대사들을 정리하지 않았던가.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문득 부럽다. 언제나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곧 혼자가 되는 것이다. 분명히 얘기로는 다 됐던 시나리오가 혼자 모니터를 마주 대하면 도통 진행되지 않는다. 삶이 기본적으로 혼자의 삶이라는 것은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은 사람들이 속 좋게 하는 말이다.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지, 관계가 부여하는 시간, 공간에서 이렇게 혼자 떨어져 나와 있다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04년 0월 0일

연출부를 불렀다. 시나리오를 돌린다. 나는 슬그머니 사무실 밖으로 나와 사무실 근처 카페로 간다. 누군가가 내가 쓴 시나리오를 읽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쓰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읽는 그들이 작은 표정 변화에서도 난 쉽게 상처받는다. 10년씩 나이가 어린 연출부들이라도 그건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항상 무엇인가를 써서 남에게 보여줘야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은 영원히 약자이다.

들어가면 나는 불편해하지 말고 느낀 점을 얘기하라고 할 것이고, 그러면 조금씩은 쭈뼛거리다가 그 중 말깨나 하는 친구가 말을 시작할 것이고, 그것을 기점으로 내 석달의 작업 결과물은 사정없이 난도질당할 것이다. 이번엔 화내지 말아야지. 어쩌면 그렇게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냐는 듯한 기막혀 하는 표정도 짓지 말아야지. 끝까지 침착하게, 논리적으로 얘기해야지. 그런데도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은 한번 읽은 그들이 하는 말에서도 가끔씩 석달씩이나 씨름한 나보다 더 예리하고, 신선한 통찰을 얻는다는 것이다.

기필코 다짐하지만 몇달간은 아무 생각없이 놀아야지, 지난번 모친상에 못갔던 친구를 만나 술 한잔해야지. 또 지나번 술마시다가 갑자기 무슨 아이디어가 생각나 혼자 생각에 빠지다가 끝내 허둥지둥 집으로 화서 술판을 망쳤던 술자리의 친구들도 다시 만나 흐드러지게 한잔해야지. 가만가만 그런데 중반에 그 대사는 바꾸기로 했었잖아. 가만가만 연출부 친구들이 벌써 거기까지 읽었을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빨리 가서 볼펜으로라도 고쳐줘야지.
벌써 읽었으면 어떡하지. 야단이다.

<글 : 육상효 / 시나리오 작가 - 전 일간스포츠 기자.
<장미빛 인생> <태백산맥> 시나리오 작가.
단편영화 <슬픈 열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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