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일정한 방식 없이 주거니받거니 하며 글을 썼다는 두 사람은 1년 넘게 온갖 쓴잔을 마시며 무수한 제작사들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어렵게 영화사봄과 작가 계약을 하고 <신라의 달밤> 원안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캐스팅이 안 되자 이 시나리오는 시네마서비스를 거쳐 좋은영화와 김상진 감독에게 넘어가게 됐다. 두 사람 모두 "상처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배운 게 많았다"며 당시를 회상한다. 확인받지 못한 그들의 재기 발랄함은 디지털 단편영화 <커밍 아웃>에서 조금씩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생고생이 결실을 이룬 것은 바로 80년대 고교 주먹 중필의 무용담을 그린 장편 데뷔작 <품행제로>. 캐릭터를 빚어내는 그들의 재능은 충무로 제작사들에게 확실히 찍혀버렸다. <품행제로>는 그들에게 영화를 보는 시야를 넓혀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해준 작가는 "시나리오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준비했냐? 너무 그럴듯하잖아"라며 거드는 이해영 작가도 "<품행제로>로 인해 시나리오가 만들어내는 화학 반응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품행제로> 이후 그들의 행보가 제법 부지런하다. 이미 UFO를 기다리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안녕, UFO>의 시나리오 작업을 끝냈고, 시도 때도 없이 귀신이 나오는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청년필름에서 제작하는 김용균 감독의 <백조와 백수> 시나리오도 한창 각색중이다. 그들이 간직해온 프로젝트 '사지절단 단편 삼부작' 가운데 1편을 공동 연출한다는 계획도 있다.

이해준 작가가 설명하는 그들만의 색깔은 '시시한 코미디'. 이른바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을 직시하게 만들어 가치 있는 웃음을 발견해내는 코미디다. 이들의 색깔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줄 차기작이 바로 '빈둥대는 코미디'를 표방한다는 <백조와 백수>다. "무릎 나온 '추리닝' 입고 슬리퍼 질질 끌고 담배 사러가는 모습에 7백만이 열광하게 만들겠다"니 목표 한번 대단하다. "편협한 세계관을 가진 영화의 시나리오는 돈이 돼도 안 쓴다"는 이해영 작가와 "시나리오를 머리와 가슴이 아닌 잔머리로 쓴다"는 이해준 작가의 콤비 플레이. 또 한번 기대해도 좋겠다.

베스트 시나리오 : 봉준호 <살인의 추억>(2003)

하도 얘기를 많이 하고 돌아다녀 민망할 지경이다. 심지어 이 시나리오 단행본 뒤 표지에 우리가 했던 말이 실려 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오지랖 넓다고 욕먹을 것 같은데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는 정말 교과서 같은 시나리오다. 끔찍한 현실을 직시해서 나온 코미디가 바로 이런 거다. 양극단이 충돌하며 묘한 기운을 뿜어낸다. 도저히 질투하지 않고는 못 배길 시나리오다.

필모그래피 <신라의 달밤>(원안), <커밍 아웃> <품행제로> <안녕 UFO>

FILM 2.0 글-김혜선 / 사진-한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