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소재들이 탄탄한 드라마로 완성되려면 서사 전략을 잘 짜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경성기담>의 저자인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전봉관 교수는 지난 6월 25일~26일 열린 디지털스토리텔링학회에서 ‘경성의 매혹과 질곡: 1920~30년대 경성 모티브의 영상화 전략’을 통해 이 당시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극복해야 할 한계를 지적했다. 영화기획자들에게 자문역할도 하는 전 교수는 “1930년대가 가진 선구자적 모티브를 강조하고 싶다면, 총독부나 독립운동 같은 정치적인 담론을 끌어들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흔히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 기대할 법한 민족주의적 구호를 버리고, “신분, 학력, 성별, 민족 등 다양한 갈등 요인을 극대화한 스토리를 개발”하라고 덧붙인다. 이제 한국영화의 ‘이야기’는 관습과 구태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학회에서는 ㈜ 바른손필름 최재원 대표가 ‘차세대 스토리텔링 전략’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기도 했다. 최 대표는 ‘영화에서의 디지털스토리텔링’이라는 제목아래 <청연> <달콤한 인생> 등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시각적 표현이 일반적인 대사나 지문 이상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음에 주목했다. 영화에서의 ‘스토리텔링’이란 단순히 언어적인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인 차원으로 확장되면서 동시에 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최 대표는 “결국 스토리텔링에서 중요한 건 관객들과 어떤 교감을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영화 제작 편수가 늘어나고 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좋은 이야기’에 대한 갈증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자작 시나리오로 큰 히트작을 만들어낸 충무로의 한 감독은 새 작품을 준비하면서 “누가 대신 써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좋은 작가를 찾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각종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이 탄생하고는 있지만, 작가 풀(pool)이 충분하지 않으며 스토리텔링 능력이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도 드물다는 얘기다. 그러나 과연 관객들과 교감하는 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인가? 카이스트의 전봉관 교수는 “서사와 캐릭터는 함께 가는 것인데, 관객들이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될 정도가 되어야 한다”면서, “실은 모든 작가들이 인물에 대한 연구를 더 충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지금 시나리오 작가들은 과연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을까?

[Film2.0 글 한선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