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이다. 수능시험을 마치고 겨우 한숨을 돌리나 싶었던 전국의 수험생들은 대학입시라는 대장정의 마지막 고비, 그것도 가장 험하고 고통스런 ‘선택’의 단계에 돌입했다. 앞으로 100일. 12월12일에 수능성적이 발표되면서, 12월 중순에 곧바로 특차전형이 있고, 12월 말부터 1월 말에 걸쳐 정시전형이 실시된다. 2년제 중에는 2월 중에 전형을 실시하는 대학도 상당수다. 각 대학은 새로운 대입제도가 실시되는 내년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혼란스러워진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쉽사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건 수험생 자신이 ‘원하는 길’을 잘 알고 있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이지만, 천차만별로 다양해진 대학별 입시 전형을 세심하게 체크해, 자신과 맞는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특차모집 확대, 일반전형은 수능비율 높아 "

먼저 올해의 입시 경향을 살펴보자. 올해 각 대학은 수능 위주의 학생 선발 관행에서 벗어나 독자 기준에 따라 특별전형을 확대하는 동시에, 수능성적으로 선발하는 특차모집을 늘리고 있다. 특차모집을 전면 폐지하는 내년 입시제도에 대한 대비책인 셈이다. 내년도 입시제도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미리 특별전형을 확대한 것이고, 수능성적이 우수한 학생, 이탈하는 학생을 잡아두기 위한 마지막 기회로 특차모집을 확대한 것이다. 영상관련학과의 특차모집 경우도, 인원이 늘고 지원자격이 다양해졌지만, 대개 최저 수능점수를 지정해 지원조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수상자 특기자에 해당하는 특별전형도 늘어났다. 경성대, 국민대, 대진대, 상명대, 세종대, 우석대, 전주대, 호남대 등이 연기 경험이 있는 특기자 특별전형을 실시할 예정. 특차모집과 특별전형 비중이 늘어나면서, 정시모집 비율은 줄어든 상황이라, 이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경향. 일반전형의 경우, 수능 반영 비율은 높아진 반면, 학생부와 실기 반영 비율은 줄어들었다. 연극영화학과를 비롯한 영상관련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모집 정원의 수십배를 넘어서는 반면, 학과에 어울리는 학생을 가려낼 만한 변별성 있는 기준은 약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경기대가 실기를 처음 도입한 것을 제외하면, 실기 비중을 줄이거나 폐지한 예가 많다. 경상전문대는 특별전형도 학생부 성적만으로 실시하기로 했고, 공주영상정보대와 대구과학대는 지난해처럼 비실기전형을 고수한다. 이 밖에도 지방대나 신설대, 2년제 대학의 경우, 실기 비중이 없거나 적은 편인데, 이는 고득점자를 유치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실기의 일환으로 실시하는 논술의 비중도 줄어든 편이다. 한양대는 논술의 비중을 지난해 10%에서 올해는 2%로 줄였다. 동국대는 논술 성적을 3% 반영하며, 중앙대는 논술 대신 면접 성적을 4% 반영하기로 했다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문하라"

하고 싶은 일도 확실하고, 가고 싶은 학과도 정했는데, 학교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학교마다 영화와 영상을 생각하고 다루는 방법, 학생에게 제공하는 정보와 교육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의 주된 경향은 공연예술학부, 연극영상학부, 디지털미디어학부 등으로 통합한 뒤 그 속에서 단일전공을 유도하는 학부제로의 전환이다. 우선 학부에선 실기와 기초 이론에 충실히 하는 대신 본격적이고 전문화된 교육은 대학원에서 실시한다는 취지다. 영상에 대한 관심은 있으되, 구체적인 적성과 취향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영화 접경 지역의 전공까지 포괄하는 너른 의미의 영상을 접하고 싶다면, 학부제를 실시하는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좋다. 공주영상정보대나 동아방송대처럼 영상관련학과가 10개 안팎으로 세분화돼 있는 학교는, 일찍부터 특정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키워온 학생들에게 어울린다. 영상 제작쪽에 관심이 많다면 관련 기자재 확보 상황이나 재학생들의 작품 활동도 체크해봐야 한다. 이론에 관심이 많다면 전공 커리큘럼과 교수진을 살펴두는 게 좋다. 학교의 평판이나 인지도, 졸업생들의 활동상도 미리 알아봐야 한다.

학교와 학과를 정한 뒤에는 구체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연기 선택자는 연기와 화술, 특기발표 등을 준비해야 하는데, 창의력과 표현력이 중요하다. 대개 주어진 주제에 관한 연기와 자유 연기 두 가지 테스트를 거치는데, 음악성과 연기력(단국대), 즉흥연기(중앙대), 전통성을 갖춘 연기(동국대), 독백연기(한양대) 등으로 학교마다 눈여겨보는 대목이 다르다는 걸 알아둬야 한다. 적성테스트(전주대)를 실시하거나, '만약에 내가'라는 주제 표현 시험(동덕여대)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서울예대 영화과는 대학별로 독자적이고 다양한 전형방법을 도입하게 되는 내년도 입시에 대비해, 올해부터 수험생에게 학업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연출 및 스탭 선택자는 전공 상식 구두시험에 대비해야 한다. 전공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한데, 핵심을 짚어 간단하고 명료하게 대답하는 게 유리하다. 동국대와 한양대 지원자는 논술에도 대비해야 하며, 적성과 전공지식 등을 평가하는 면접시험에 대비해서는, 평소 다양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며, 고전 희곡과 영화에도 관심을 기울여 두는 것이 좋다.

타전공 재학생들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다. 두개 이상의 전공학과 또는 학부가 연계해 새로운 분야를 전공을 인정해주는 '연계전공제'가 그것이다. 특정 단과대나 학과에 속하지 않고도 여러 개의 전공을 연계시켜 새로운 전공을 개설한 것인데, 이는 최근 영상관련 전공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 는 추세다. 지난해 서강대가 미디어공학 전공과정을, 한양대가 영상산업을, 연세대가 영상예술학을 연계전공 학과로 인정한 바 있다. 숙명여대는 지난해 1학기부터 디자인, 멀티미디어, 방송영화 홍보 및 광고 제작, 애니메이션 워크숍 등을 필수 과목로 구성한 영상 애니메이션 과정을 개설했는데, 전공학생이 9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동국대는 올 1학기부터 연극영상, 전자공학 등을 아우르는 특성화 프로그램을 대학원에 연계전공 과목으로 개설했다. 이런 연계전공제의 경우, 타학문과 어우러진 새로운 연구가 가능하고, 여러 개의 학위를 취득할 수도 있지만, 전문화한 교육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평균 경쟁률 15:1, 후회없는 선택을!"

올초 몇몇 일간지에선 영상관련학과 지원자가 학교 전체 또는 계열 전체 수석을 차지한 것을 계기로, “우수한 인재들이 영상산업에 대한 비전과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열정으로 지원서를 내고 있다”고 보도하며, 새삼 놀라움을 내비쳤다. 또 한 학원이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희망학과 조사에 따르면, 예체능 계열에선 연극영화 등의 영상학과가 평균 15 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등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문 계열에서도 신문방송, 광고홍보 계열이 최상위학과로 랭크됐다.

새로운 가치관과 직업관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 영상에 대한 이들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운지는, 최근 몇년 동안 각 대학에서 영상관련학과를 경쟁적으로 신설한 대목을 통해서도 짐작 가능하다. 전국 41개 대학 46개 학과에서 영화영상을 가르치겠다고 나섰다는 건, 세계 어떤 영화강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이며 ‘이상’ 열기다. 영화학과뿐이랴.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도 급증하고 있다. 최근 매해 적게는 10여개에서 많게는 20여개까지 늘어가더니, 현재 관련학과가 60여개로 추정된다. 이는 순수예술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는 최근의 경향, 사회 전반의 고용불안 심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영화, 영상 분야의 인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으니, 공급 창구가 늘어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불안정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산업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에 관련학과들이 그야말로 대책없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수진과 기자재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판'으로만 수험생들을 유혹해 전문 인력 배출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학과가 일부 존재하는 현실인 것이다. 물론 경쟁력 있는 영상학과로 바로 서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학교, 학과도 있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얼마간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더라도, 철저한 사전 조사를 통해 입시 전략 세우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후회없는 선택을 위해서.

<글:씨네21-박은영/최수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