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영화전문교육의 요람
-중국의 '제5세대' 키워낸 북경영화학교

북경 영화학교는 중국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된 바로 이듬해인 1950년, 마치 공산주의 중국정부의 영화정책을 상징하는 구조물과도 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올해 개교 46년. 하지만 북경영화학교는 격동하는 중국현대사와 맞물려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고, 문화혁명기 10년 동안 폐교당하기도 했었다. 50년 중화영화국예술처가 연기예술연구소를 내고 제1기 수강생을 모집한 것이 그 전신. 지금과 같은 종합적 영화학교의 꼴을 갖춘 것은 1956년이었다.

북경영화학교의 역사는 중국영화의 역사, 더 나아가 중국의 정치사와 똑같은 궤도 위에서 진행돼왔다. 중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계기는 세 가지, 첫째 혁명의 성공 (1945~), 둘째 문화혁명(1966~), 셋째 개방개혁(1976~) 이다. 개방개혁과 더불어 중국영화의 '신영화운동' 이 시작된 70년대 말 80년대 초에 이 운동을 주도한 그룹이 바로 문화혁명 이전 북경영화학교를 졸업한 일군의 감독들이다. 홍 지엔쯩, 우이 꿍, 이양 엔찐 등이 그들로, 이들은 이른바 '제4세대'의 주요 감독들로 불리기도 한다. 중국인들이 '10년 대동란'이란 부르는 문화혁명이 마침내 끝났을때, 많은 전 시대의 감독들은 우파로 몰려 핍박을 당하는 와중에 죽거나 이미 늙어 있었다. 바로 이 시기를 타고 이미 중년의 나이에 이른 제4세대가 영화계로 나섰고, 이 무렵 다시 문연 북경영화학교에 입학한 이들이 80년대 영화계로 등장하면서 이른바 '제5세대' 감독군을 형성했다. 중국영화를 세계 무대에 알린 첸 카이거, 장이모, 티엔 쭈앙쭈앙 등이 그들.

제4세대는 이전 시대의 중국영화에 팽배한 문학적, 연극적 경향을 비판하면서 영화의 본질에 입각한 영상언어의 개발을 촉구했고 이러한 4세대의 이론적, 실험적 성과들은 5세대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세대의 훌륭한 영화작가 들이 탄생하기 위해서 필요한 전 단계의 조건들... 풍부한 개인적 경험, 사회/정치적 여건, 경제적 원조, 전문교육 등등. 제5세대는 능력도 있었지만 어쩌면 매우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북경영화아카데미 때문에 제5세대가 있었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지만, 이곳에서 전문적인 영화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제5세대가 그렇게 빨리 등장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동안 북경영화학교를 거쳐간 전체 학생의 수는 5천명이 조금 넘는다. 이들은 이미 중국영화계에서 하나의 뿌리 깊은 계보를 형성한다.

중국 유일의 영화대학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이곳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지만, 작년의 경우 감독과는 4백여명의 지원자 중 8명을 합격시켰고 연기과는 2천여명 중에 15명을 입학시켰다. (계획경제에 따른 인력수습의 차원에서 매년 입학 정원이 달라진다). 시험은 대략 세 단계다.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치른 지원자들은 영화아카데미에서 새로운 방식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1차는 영화이론등에 대한 시험으로 여기서 반수 이상이 걸러지고 1차 관문을 통과한 학생들은 대상으로 전공시험을 치른다.

감독과의 경우, 영화 한편을 보여 주고 이를 분석하게 한다거나 '제목'을 주고 짧은 시나리오를 쓰게 하는 식이다. 여기서 이미 2/3 이상의 인원은 탈락하지만 최종 면접에서도 역시 경쟁률은 치열하다. 최소한 10여명 교수진 앞에서 각 과별로 이루어지는 이 시험의 관건 역시 창작능력에 대한 평가다. 개인별로 제목을 주고 5분의 여유를 둔 뒤 20분간 구술하게 한다든가(때로는 음악을 들려주거나 그림 한장을 보여준 뒤, 영화스토리를 구성하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조별로 영화를 보여준 뒤 토론을 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선발방식에 교수들은 긍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재능있는 인재를 탈락시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에 학과장들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45년의 교학 역사를 통해 우리는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을 갖췄다"고 (94년 10월 이강숙 한국종합예술대학 총장과 북경영화학교 교수진들과의 대담중).

어쨌든 중국영화교육의 전문가들이 인정한 영상예술분야의 인재들은 다음의 학과목들을 이수해야 한다. 감독과의 경우 촬영예술, 극장, 영상언어, 세계영화사, 중국영화사 등등 얼핏 교과목 명칭은 같은 듯하지만 사실 한국과 내용면에서는 다르다. 북경영화학교의 주요 교수진은 대개 교수이면서 영화감독이고, 시나리오 작가이며, 배우이다. 특징 하나. 한결같이 "책 보고 공부해서 영화 못 만든다. 기회를 만들어서 찍어라. 그래야 안다"라고 말한다. 특징 둘. 중국영화의 역작들에 대한 애정이 지극하다. 특징 셋. "누구는 이렇게 말했는데 내가 보기에는..."라고 결론을 낸다. 스스로의 연구와 경험을 통해 일정 부분에 관한 자기식의 결론이 나와 있고, 이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중국 학생 한명이 불만을 터트린다. "실습작품을 찍을 때 교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소재와 형식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거든. 우리가 원하는 건 다른 거란말야." 습득과 극복을 통해 새로운 물결은 형성된다. 누구를 극복하는가? 자신의 교사와 앞세대다.

외국 유학생들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이곳 환경에 당혹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현재 19개 국가 및 홍콩, 타이완 등지의 학생 1백30여명이 이곳에서 어학연수를 받거나 진수반, 대학원 등에 재학중인데 그중에서 한국 학생들은 감독과 석사과정에 2명이 있다.(이 자료는 96년 5월에 작성된 자료임. 따라서 현재는 상황이 틀림) 북경영화학교에서 많은 외국인학생들을 대거 받아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학생들은 학비를 면제 받고 한달에 1백40원(당시 중국돈을 말함) 정도의 용돈까지 받는 데 반해, 외국인은 1년에 3천달러 정도의 학비를 내는 데다, 진수반 입학생의 경우 작품실습시 추가비용을 지불해야 한다.(촬영과 진수반의 한 한국인 학생은 16mm 작품실습시 3일 기자재 대여 및 필름 5백자를 제공받는 데 20만원 상당의 금액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로부터 중국영화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이곳에 모여들고 있다. 중국영화도 선전하고 돈도 벌면서 그들의 장래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졸업시 외국인들은 중국영화제작소에서 직업 분배를 받길 원치 않을 테니까). 어찌 보면 일석이조다.

<글:북경-도성희>

학원장 인터뷰 - 류 꾸어띠엔 (96년도 당시 인터뷰 내용입니다!)

작년 기준 전체 학생은 8백49명이고 그중 감독, 촬영, 연기, 문학, 미술, 녹음, 관리 등 7개과 14개 전공의 학부 재학생이 2백여명, 기타 야간대학, 전문대학, 진수반(전문인 재교육 코스), 대학원을 두고 있다. 전체 교직원 5백33명 중 1백99명이 교수진인데 이들 중 45%는 정,부교수이다.

주요한 학교 교육목표는 무엇인가?

학생들이 단기간 내에 독립적으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 배양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촬영과의 졸업생이 현장에 투입됐을 경우 곧 수석 조수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교육시킨다.

교과 과정에 어떤 원칙이 있다면?

영화 이론도 중시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직접 해보라'를 강조하고 있으며 학생들로 하여금 우리의 현실 생활을 주시하도록 권한다. 생활과 문화적 전통에 대한 관찰과 이해는 창작자의 자산이다.

'현실적 문화적 전통'에 대해 강조했는데 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있나?

예를 들어 교양과목으로 중국미술사와 국악을 배우도록 하고 있으며, 2~3학년 학생들은 여름방학에 지도교수의 배치에 따라 공장과 농장을 방문, 그곳에서 생활한다.

초창기의 아카데미가 소련 모스크바영화학교의 커리큘럼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중국 영화교육은 과거 소련으로부터 많은 유용한 것을 배웠다. 소련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중국 영화인재를 양성하였고 교육부문에서 그 영향은 광범위하다. 지금은 서구의 여러 영화이론들을 다양하게 접하도록 하고 있으며, 중국영화의 연구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현재 우리는 중국 영화교육의 전공분야가 너무 세밀하게 구분돼 있어 혹 교육효과가 낮은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고민에 봉착해 있다. 아직도 연구해야 될 과제이지만 현 상황에서나마 학생들이 여러 전공 영역을 두루 접하게 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 촬영 전공의 학생을 예로 들면 촬영기술 및 조명뿐만 아니라 무대미술이나 감독창작과목도 수강하게 하고 있다.

국제적 교류의 현황은?

우리는 84년 국제영화TV교육기구센터(CILECT)의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으며 국제적 교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한국 학생들도 많이 유학와 있고... 한국과의 많은 교류를 바란다고 써달라(웃음).

한국학생 인터뷰 : 감독과 석사과정-김진우/이치윤 (96년도 당시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인연이라고 해야할지... 중국은 꼭 블랙홀 같다. 빨려들어가는 것, 그런 거다.

배우는 게 많나?

김:중국영화의 제작환경은 열악하다. 이런 조건에서 왜 세계적인 것이 나오는가를 배운다면 좋은 것을 배우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제5세대는 세계영화계의 선두에 와 있고, 좋은 시기에 이곳에 와 있는 것 같다. 다만 너무 규격화되지 않아서...

교과과정에 체계가 없다는 의미인가?

김:행정상의 불합리를 말한다. 이곳의 행정체계는 학생과 교수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쉽게 운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도서관의 경우 학생들의 수업시간에 문을 열고 점심시간은 폐관, 종강 시간인 오후 4시 30분에 ��춰 도서관 직원들도 모두 퇴근한다. 언제 책을 보겠는가.

다른 불만들이 있다면?

김:교수들이 가르치는 내용이 너무 낡았다. 또한 정식 입학자들도 외국인의 경우 어학연수생과 같이 외국인 숙소에 묶게 되는데, 이게 영화대학인가, 언어대학인가 싶을 때가 있다.

이:그래도 이곳의 장점은 동양 유일의 영화 전문대학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고 서구영화 관계자들도 이곳을 주목한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세계화의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동감이다. 정책적으로 영화문화를 냉동시킬 수도 있는 중국이지만 97년 중국에 합병되고 대륙의 시장도 크다. 물론 낙관하기는 이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