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영화정책이 남긴 유산
-동유럽의 거장들 배출한 명문 폴란드 우쯔 국립영화학교

폴란드는 18세기 말 1백20년간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분할되어 나라를 잃었고, 2차대전의 시발점이었으며, 나치 점령중에 오시비엥칭(아우슈비츠)학살로 6백만명의 생명을 잃었고, 1968년 레흐 바웬사의 연대노조가 동유럽 공산주의를 자본주의로 돌아서게 한 계기를 만들었던 나라다. 역사적인 아픔과 격동을 통해 그들의 예술적인 힘은 우리나라의 '한'의 개념으로 나온다. 폴란드어로 살아남다(Przezy)라는 동사는 세 가지의 뜻을 갖고 있는데 그중 한 가지가 우리나라의 '한'이라는 명사와 일치한다. 문학과 연극과 음악의 거장들이 즐비한 폴란드에 우쯔 국립영화학교가 세워진 것은 1948년의 일이다. 전후에 완벽하게 파괴된 수도인 바르샤바와 옛 수도인 크라크프에 국립영화학교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파괴되지 않고 수도와 가장 가까웠던 우쯔라는 공장도시에 그들은 영화학교와 영화 스튜디오를 세웠다.

폴란드 유일의 영화학교로서 흔히 우쯔영화학교로 불리는, '폴란드 국립영화연극 방송학교'는 타르고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캠퍼스는 섬유공장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어떤 공장들은 붉은 색 벽돌의 거대한 건물로 전쟁 직후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타르고바란 '장터'란 뜻이다. 일주일마다 새로운 외국상표의 가게와 젊은이를 위한 술집이 문을 열고 오래된 식당과 낡고 지저분하고 불친전한 가게(우리는 그건 곳을 공산주의 가게라 부른다)는 문을 닫는다. 모든 것이 빠르게 탄생하고 있고 역사는 그만큼 빠르게 잊혀지고 있다.

우쯔만은 끈끈한 삶이 아직도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만약 화려한 파리나 모든 것이 정돈된 미국의 영화학교들과 비교하라면 나는 우쯔의 영화학교를 사랑한다고 말하겠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방인을 위한 곳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이 치장없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전통과 뛰어난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들이 치열하게 공부했던 영화학교이기 때문이다.

우쯔 국립영화학교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초기의 폴란드 영화학파들 때문이다. 그 집단을 형성했던 감독으로는 안제이 바이다, 안제이 뭉크, 로만 폴란스키,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그리고 크쥐시토프 자누시 등을 들 수 있다. 그들은 2차대전이라는 아픈 역사,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 혹은 사회적인 심리상태를 다루었거나 권력에 저항하는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뒷세대로는 케에슬로프스키라는 걸출한 감독이 있다. 그리고 예쥐 부이칙이나 비롤드 소보친스키, 예지 소보친스키, 미예치스와프 야흐다와 같은 유럽 최고의 촬영감독들을 배출해 낸 전통들 때문에 폴란드인에게 아직까지 최고의 학교라는 명성을 잃지 않고 있다.

첫세대의 폴란드 영화감독들을 우쯔학파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폴란드엔 영화감독을 위한 교육기관이 이곳 한곳이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 되려면 이 영화학교를 나와야 했다. 문화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에는 프로파간다적인 목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영화학교에 많은 투자를 했다. 학생들은 35mm 필름으로 영화수업을 할 수 있었다. 학교의 귀찮은 업부들은 모두 학교에 고용된 인력이 했다. 학생들은 전공과목과 영화에만 몰두하면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당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같은 훌륭한 여건을 십분 활용해 그들이 하고 싶은 소재들을 이야기했다. 공산주의 정권의 그러한 지원이 없었다면 현재의 이러한 학교 환경은 형성 될 수 없었을 것이다.

1학년 때는 10분 내외의 극영화를 유매틱(카메라의 일종)이라는 비디오매체로 만들고, 10분 내의 다큐멘터리영화를 35mm 필름으로 만든다. 이곳의 TV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데 그곳엔 프로듀서와 촬영보조, 사운드맨, 조명기사, 소품담당, 차량운송기사, 분장사, 의상 디자이너들이 소속되어 일하고 있다. 학생들은 각자의 촬영일정을 정하여 전문인력들과 영화를 만든다. 1학년을 마치면 그야말로 영화 전반의 많은 것들 즉 영화제작, 카메라맨과의 작업, 배우와의 작업 등을 배운다.

내가 처음 이 학교에 와서 놀란 것은 이 다큐멘터리영화에 관한 그들의 인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는 '단편' 다큐멘터리영화의 전통은 폴란드 영화를 지탱시켜주는 정신이다. 폴란드 다큐멘터리영화의 아버지 격인 카라바스(그는 아직도 학교의 3학년을 가르치는 교수이다)를 위시해서 키에슬로프스키나 마르친 워지인스키와 같이 뛰어난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많은 이유는 학교의 교육적 환경 때문이다. 1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상의 핵심을 찍어야 하고 다분히 시적으로 짧은 호흐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폴란드의 뛰어난 다큐멘터리들은 형식적 틀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하며 새로우며 때론 진보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서 1학년들은 수없이 많은 잠언을 얻는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사람에 대한 관찰과 영화라는 매체로 대상에 접근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영화제작에 관해서라면 이 학교엔 프로듀서과가 따로 있다. 박사과정 학생이 열명 가량 있고, 학교에 소속된 프로듀서가 있다. 우리나라 영화과 학생들이 겪어야 하는 프로듀서의 부담과 고초를 그들이 해결해 준다. 감독과 학생들이 영화를 만들려면 먼저 교수의 시나리오 승인이 있어야 하고 시나리오가 받아들여지면 프로듀서를 정하게 된다. 누구와 일하느냐는 것은 감독의 재량이다.

촬영과가 따로 있는데 유럽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전체 학년을 통틀어 40여명 정도가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연극학교가 따로 있다. 감독과 학생들은 촬영과 학생들과 공동작업해야 하며(예를 들어 학교 기자재과에선 촬영과 학생의 사인이 없인 기재를 주지 않는다) 배우들과의 수업이 두 과목이 있다. 하나는 연극연출이고 하나는 영화연출이다. 학기말인 7월엔 시험이 있는데 교수위원회가 학생들이 만든 영화로 평가를 한다.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거나 수준이 낮으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학기말 시험은 보통 적게는 한명에서 많게는 네명까지 학생들을 낙제시킨다. 감독과의 학생수는 현재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폴란드인 외국인 합쳐 40여명 정도다.

2학년 때부턴 그나마 시간여유가 나는 편이지만 그래도 두편의 영화를 완성해야 한다. 10분 내외의 극영화를 35mm 필름으로 만들어야 하고 20분 정도 길이의 다큐멘터리영화를 베타(BETA)캠이나 16mm 필름으로 만들어야 한다. 2학년 때부터는 예산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스폰서를 구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체제 이후로 정부지원이 줄어들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3학년 때 역시 최대 20분 길이의 극영화를 35mm 필름으로 만들고, 비디오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3학년 때부턴 이론수업이 없다. 몇몇으 교수가 학생들을 선정하거나 학생들이 교수에게 의뢰하여 작품의 지도를 받는다. 작년엔 키에슬로프스키가 3명의 학생을 선택하여 지도했다. 촬영 기간은 9일에서 10일이 주어지고,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학교에 고용된 인원들로는 두명의 프로듀서, 카메라 보조, 세명의 조명기사, 두대의 운송 버스, 트랙 미는 사람... 녹음기사, 의상, 분장, 미술담당이 함께 일을 한다. 조연출과 카메라 보조는 학생들이 한다. 4학년 때는 30분이 넘는 영화를 감독 재량껏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4학년생들은 프로듀서와 스폰서를 구해 영화를 만든다.

졸업영화를 완성하면 논문을 써야 한다. 졸업논문과 영화가 교수위원회에 의해 통과가 되면 학교에선 석사학위를 준다. 이렇게 4년 동안을 이 도시에서 견뎌내면 우쯔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글:우쯔-송일곤 : 71년 서울출생, 서울예전에서 영화전공 96년 현재 우쯔대학 1학년>

입시요강 (96년도 당시 내용입니다!)

둘째날의 과목이 가장 힘든 시험. 응시자들은 두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연극연출과 영화연출을 해야 한다. 영화연출 시험은 주어진 주제, 상황으로 일곱 쇼트짜리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뽑은 소재에 맞게 대사 없는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도하고 카메라맨과 촬영 뒤엔 편집기사와 삼십분 동안 편집해야 한다. 그 뒤엔 열명의 노교수들의 질문이 시작된다(끔찍했던 순간...). 둘째날의 시험이 끝나면 밤 한시가 된다.

셋째날은 노교수들과의 인터뷰가 있다. 이때 교수들은 어제 만든 일곱 쇼트짜리 영화를 신랄하게 분석하여 질문을 한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 지원한 이유와 응시자 개인에 관한 질문을 한다. 이로써 긴 시험이 끝난다.

시험에 합격하면 일년동안 폴란드말을 배우고, 10월부터 시작하는 수업을 듣는다. 일학년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 중의 하나인 극영화 몽타주 첫 수업시간에 안제이 멜린과 마리우스 제고젝이라는 유럽에서 꽤 이름을 날리고 있는 교수 두분이 푹신한 안락의자와 책상 위에 앉아서 두 시간 동안 영화의 정신에 관한 열변을 토한 뒤에, 미소를 지으며 비디오 카메라를 준다. 그리고 밖에 나가사 한 쇼트짜리 대사 없는 영화를 만들어 오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 당신은 당황하며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50여년 전부터 그 교실에서 바이다와 키에슬로프스키가 고민했었고, 영화의 스승들이 맨 처음 했었을 '영화란 무엇일까?'라는 화두에 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