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행복한 결혼
- 독일 3대 영화학교 중의 하나인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

통일되기 이전에 동서독은 각각 냉전의 영향 아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대립하고 경쟁했다. 군사와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스포츠를 비롯, 문화와 예술에서도 경쟁은 치열했고, 물론 영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독일의 영화학교 HFF 콘라드 볼프(Konrad Wolf)는 과거 UFA스튜디오가 있던 베를린 근교의 바벨스베르크라는 지역에 있는 동독의 영화 학교로 1954년에 문을 열었다. 보통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라고 칭하기도 하고 또는 동독영화의 최고로 공인되는 영화감독의 이름을 따서 콘라드 볼프(Konrad Wolf)학교라고도 부르는 이 학교는 통독과 더불어 베를린영화학교, 뮌헨영화학교와 함께 독일영화전문인 양성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매년 50여 국내외 영화제에 출품되어 뛰어난 결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세계의 영화학교 속에서 이 학교가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동구권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창립된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는 다른 동구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역시 모스크바영화학교를 모델로 하여 설립되었다. 그래서 영상사업 분야에 필요한 일꾼을 조달한다는 사회적 명분에 맞게 학생들에게 전공분야 기술의 완벽한 터득과 함께 졸업과 동시에 배치될 현장에서 마찰없는 적응을 위해 풍부한 팀작업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의 교육방침이었다. 이런 성격은 아직도 상당 부분 계속되고 있고 이 학교 졸업생들의 전문성이 높이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는 영화제작에 필요한 모든 부분이 전공으로 세분되어 있다. 이들을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드라마투르기(Dramatrugie), 촬영, 연출, 영화미술, 연기, 제작, 매체학, 애니메이션, 편집, 음향이다. 일종의 대학원 과정인 영화미술과와 매체학과 각각 3년과 2년 반의 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과는 4년제 과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수업은 교수들의 강의와 전문강사들의 지도 아래서 이루어지는 실습으로 진행되는데 강의와 실습이 본과와 예과과정으로 분리되어 있고 미술사나 영화미학과 같이, 과의 구분없이 개최되는 강좌와 병행해서 소수의 전공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세미나와 실습도 있다. 학점을 따고 졸업논문을 준비하는 학사과정 외에 졸업 뒤 현장에서 전문가로서 필요한 영화제작경험을 넓힐 수 있는 기회는 학기중에 충분히 보장되어 있다. 서로 전공을 달리하는 학생들이 다음 작품을 제작할 팀을 짜기 위해 만날 수 있는 제작 설명회가 그 한 예이다.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으 이런 긍정적 구조는 통독 이후에도 변함없는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동구권 영화학교들이 한때 명성을 날릴 수 있었던 비결 즉, 영화를 국가기간사업으로 책정하고 영화학교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던 사회주의체제의 붕괴와 함께 재정난에 빠지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가치관의 상실로 지난날의 명성은 그늘의 그림자로 전락한 것과 대조적으로,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는 통독후원금의 엄청난 투자를 통해 기자재를 현대화함으로써 세계 어느 영화학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교육조건을 이룬 동시에 동구영화학교의 진수를 계승, 보전하고 있다.

장비의 현대화는 전통적으로 핵심을 이루었던 35mm와 16mm 영화부문뿐만 아니라 비디오와 컴퓨터를 이용한 영상제작부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애비트(Avid)편집실의 설치와 컴퓨터를 이용한 애니메이션제작, 돌비 음향스튜디오 등 트랜드 영상제작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재와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다.

영화제작실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제작비의 조달인데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도 다른 독일의 영화학교와 같이 이 문제를 학교가 제작사가 되어 제작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즉 모든 재학생들은 영화제작을 위한 일정한 금액을 입학과 동시에 학교로부터 받게 되는데 이 자금으로 학점의 이수에 필요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

베를린에서 포츠담쪽으로 전철을 타면 한 시간 반 정도 거리 떨어진 곳에 아름다운 호수와 숲으로 둘러싸인 환상의 주택지가 있다. 이곳이 과거 화려했던 UFA시절 스타들의 저택이 모여있는 독일의 '베벌리 힐스'이다. 이들 저택 사이에 전후 몇 개의 주인이 없는 적산가옥들이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의 캠퍼스다. 지금까지 보는 이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이 캠퍼스가 통독 뒤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이 저택들의 주인들이 통독 뒤 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확실한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이지만 학교쪽은 바벨스베르크영화스튜디오 내로 옮겨 캠퍼스를 짓기로 장기적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 내 최대인 바벨스베르크영화스튜디오는 전쟁 전에는 우파(UFA)스튜디오로 알려졌고 과거 동독시절 데파(DEFA)스튜디오 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던 곳이다.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는 동독영화산업의 심장부였던 이 데파(DEFA)스튜디오에 인재를 조달하는 구실을 담당하였고 지금도 바벨스베르크영화스튜디오는 재학중에는 영화제작의 현장을 익힐 수 있는 실습의 장이고 또 이 스튜디오는 졸업과 함께 이들의 일터가 되고 있다.

현재 4백명 이상이 재학함으로써 학생수로도 독일최대인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에는 매년 천여명이 지원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 백여명이 지원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 백여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과별로 따로 집행되는 입학시험은 2월 말에 원서를 마감하는 영화미술과와 6월 말이 마감인 매체학과를 제외하곤 1월말까지 집에서 준비한 과제를 제출하는 것으로 1차시험을 치르고 그중 소수가 추려져 6월 경에 2차시험을 보게 된다. 학교교정에서 치러지는 2차시험은 과마다 서로 다른 여러 형태의 과제를 통해 수험생의 자질을 테스트한다. 시험은 보통 3일에서 1주일에 걸쳐 치러진다. 수험생의 자질과 함께 중요한 입학조건으로는 대학입학허가서와, 경우에 따라 직업경험증명서가 필요하고 외국인의 경우 어학증명서가 첨가되어야 한다.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 주소

HFF 'Konrad Wolf' Karl-Marx-Str. 33/34 14482 Potsdam
Tel:0331/7469-0
Fax;0331/7469-202

<글:베를린-황철민 : 60년생, 중대 독문과 중퇴, 동서영화연구회 동인, 10편의 중단편 극다큐멘터리 제작, 베를린자유대학 영화학 박사과정 수료, 1990년 독일베를린 영화아카데미 입학, 96년 현재 졸업영화 제작중>

한국학생 인터뷰 : -배윤호(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 영화미술과 재학생)
(96년도 당시 인터뷰 내용입니다!)

보통 영화를 공부한다고 하면 연출이나 촬영을 생각하게 되는데 영화미술이라는 것은 영화의 어떤 분야를 말하는가?

연극의 경우에는 무대미술이라는 것이 있다. 무대미술이란 연출자의 연출의도에 맞게 시각적인 매체를 이용해 극적 공간을 구성하는 작업이다. 영화도 연극 못지 않게 이런 환상의 공간을 기본적으로 필요로 한다. 007영화나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같은 장르영화의 영화미술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영화라는 것이 분위기를 통해 이야기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영화미술을 떼어 놓고 영화를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배윤호씨는 베를린예술대학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하다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 영화미술과로 옮긴 걸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영화학교에서 무엇을 더 배울 수 있었나? 커리큘럼에 대해 우선 이야기 한다면?

바벨스베르크영화학교 영화미술과의 입학조건은 일단 무대미술이나 건축학 등 일반 미술대학을 이수한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커리큘럼은 영화와 TV와 같은 영상 전문부문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영화미술과는 3년 과정인데 처음 일년간은 영화매체를 강의와 실습을 통해 배우고, 다음 일년간은 집중적으로 영화제작에 참여하여 팀작업 속에서 영화미술과 영화전반의 관계를 인식하고 실제 경험의 폭을 넓힌다. 마지막 일년은 졸업작품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특히 재학중에 수십 편의 장/단편영화를 통한 실전 경험을 쌓은 많은 졸업생들이 독일과 유럽의 영화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입학할 수 있나?

입학시험은 두번에 걸쳐 치러진다. 서류전형인 첫번째 시험은 2월에 있는데 지금까지 작업한 포트폴리오를 이때 제출한다. 1차 시험의 합격자는 4월에 통지를 받고 2차 시험은 5월에 3일간에 걸쳐 보게 된다. 첫날은 영화비평을 쓰고 이튿날은 주어진 주제에 대해 공간표현을 하는 과제를 받게 된다. 표현의 방법은 자유인데 내 경우에는 스토리보드를 그렸다. 과제작성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면접시험이 있다. 이때 자기의 작품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합격은 물론 본인의 자질에 달려있다. 그러나 비결이 있다면 교수들이 수험생 개개인의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높이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보고 배운 것보다는 자기가 확실히 경험하고 잘 아는 것을 자부심을 가지고 표현하는 자세가 중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