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로 재무장한 영화교육의 발상지
-타르코프스키 감독 등 키워낸 러시아국립영화대학

1919년 혁명의 와중에 세계 최초로 탄생한 소련 모스크바 영화학교의 공식명칭은 이제 러시아국립영화대학이다. 영화의 역사만큼 긴 역사를 가진 이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가려졌던 인류의 또다른 정신사를 읽는 것이다.

에이젠슈테인, 쿨리쇼프, 푸도프킨, 지가 베르도프, 도브젠코, 미하일 키라토조프, M 후치예프 등의 이름은 단지 그 흐름 속에서 돌출하는 일부일 뿐이다. 이데올로기라는 색안경을 벗어버린 뒤에 다시 보는 러시아(소비에트) 영화는 나름의 미학과 색깔이 분명한, 세계영화 속에 당당히 그 위치를 갖고 있는 그 무엇이다(타르코프스키의 <거울>, 파나자노프의 <우리들 잊혀진 조상들의 그림자>, 카라토조프의 <학들을 날아가고>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전통은 보수적 색채를 띠는 고집을 낳는다. 스타니슬라프스키의 연기론이 여전히 중요하고(물론 그의 후기 이론의 계승자라 칭해지는 러시아계 유대인인 영국의 피터 브룩 같은 이의 현대 연기론도 무시되진 않는다). 도브젠코에서 타르코프스키로 이어지는 시적인 '경향'을 하나의 중요한 흐름으로 파악하는 것, 열정을 가진 작가와 함께가 아니라면 작업할 수 없다는 고집스런 장인 정신 등이 그렇다.

영화도 문화현상의 하나라면 현재와 같은 변혁기에 러시아영화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영화산업에 대한 국가지원의 대폭적인 감소, 할리우드영화에 무분별하게 경도되는 젊은이들을 가진 나라의 영화. 이것이 러시아영화가 처한 어려움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은 역으로 러시아(소비에트)영화의 장점을 끌어안고 다시 출발하는 마지막 세대라는 자각을 갖는지도 모른다. 출발점으로서의 VGIK은 전혀 나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갈 길이 얼마나 먼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촉매이다. 결국 이곳 '장인'들의 말처럼 영화는 배울 수 없는 것이고, 단지 스스로 찾아나갈 뿐인 것이니까.

VGIK은 학술공간이다. 그리고 작업공간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는 그의 책 <봉인된 시간>에서 VGIK에서 보낸 시간은 지루하고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그가 만났던 촬영가는 VGIK의 동기였고, 지금도 그의 동료들은 타르코프스키를 별종 학생으로 기억한다. 별종이 살아남는 풍토가 바로 작업 공간으로서의 VGIK의 다른 면모이다. 교수들과의 작업에 관한 토의가 짧아지는 경우는 흔히 충분한 준비가 없이 만나는 경우라기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경우이다. 미완성이거나 전혀 뜻밖의 형식의 시나리오, 촬영콘티일지라도 주장이 분명하다면 설득의 여지가 있고 시간을 벌 수가 있다. 그때 교수는 이미 학생을 작가로 대하기 때문이다.

활기찬 학교의 이미지는 뛰어다니는 배우들, 필름 특성 실험으로 바쁜 촬영가들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늦은 시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스튜디오를 빠져나오는 작업조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준비가 철저해도 찍어내지 않고는 영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뤼미에르 필름으로부터 소비에트판 대한뉴스 모음까지 빠짐없이 체크하고야마는 진지함, 아무리 좋은 필름과 기재라도 정확히 테스트하고야 촬영에 임하는 철저함, 분명한 주장으로 동료를 설득하지 않고는 공동작업에 임할 수 없다는 확신이야말로 VGIK가 가진 미덕이다.

VGIK에는 7개의 학과가 있다(연출과, 촬영과, 배우과, 시나리오-영화학과, 경제(프로듀서)과, 예술학과, 애니메이션학과). 학기는 9월1일부터 다음해 7월1일까지고 각각의 학과는 5년의 과정을 마치면 석사학위가 주어지며(배우과 4년-학사, 예술학사-6년) 2.5년간의 과정을 마칠 경우 학사학위가 수여된다. 강의는 공통인문 교양과 전공으로 나뉘는데, 공통인문 교양강의는 소비에트영화사, 세계영화사, 미술사, 문화사, 철학, 역사, 미학, 윤리학, 러시아문학, 세계문학 등이다(외국인은 러시아어가 4년간 필수). 각각의 전공 과목은 '마스쩨르스트바'라는 지도교수 강의로 종합된다. 몇몇 주요 학과는 매년 실기작품을 반드시 35mm로 제작하며(연출과 1년은 비디오 제작 가능), 촬영과의 경우 국립영화제작소 실습이 필수다. VGIK는 연구생제도(2개월~2년)와 방송국-스튜디오의 위탁생 교육 제도를 운영한다. 외국인을 위한 예비학부는 1년 과정으로 러시아어와 전공과목을 강의한다(러시아어 습득이 필수). 입학시험은 7월 중순에 있고 면접/전공이 시험과목이다. 현재 외국인 학생수는 1백명 가량이다. 국제부(70-95-181-2680)에서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글:모스크바-김영중 : 대전출생. 홍대 산업공학과 3년 수학 뒤 91년 헝가리에서 정치경제학 공부. 96년 현재 러시아국립영화대학 촬영과 2학년>

한국학생 인터뷰 : -박기웅(32. 촬영과)
(96년도 당시 인터뷰 내용입니다!)

본인 약력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64년생. 서울대 국사학과 83학번이고 졸업 뒤 <뿌리깊은 나무>에 3년간 기자로 근무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입학하게 되었나?

<뿌리깊은 나무>에서 근무중, 영화를 공부하고자 92년 6월 말 '예술의 도시'라 알려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오게 되었다. 4개월간 그곳에 체류하며 영화 관련 학교에 대해 알아본 결과, 촬영이라면 모스크바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뒤 VGIK에서 예비과정을 마치고 93년 9월(9월이 신학기)에 촬영과에 입학했다.

VGIK에서 과정을 마치려는 이유는?

촬영과의 경우, 소비에트 시절의 긍정적 산물인, 영화 촬영 관련 산학연계의 결과로, 수준 높은 연구성과가 축적되어 있다. 이 성과들을 체계적인 이론강의와 실기를 겸하는 수업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또한 전문적인 사진교육, 방송, 비디오제작 실기, 영화 실기를 두루 섭렵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사회주의 교육 시스템이 아직 남아 있어 5년 과정을 마치고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기는 하나 아직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도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정서적으로 잘 받아들여지는 영화언어의 창시자인 타르코프스키 감독과 작업했던 바짐 유소프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좋다.

장래 계획은?

촬영가라면 당연히 현장작업을 꿈꾼다. 한편은, 한국의 촬영교육이 경험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판단에서 계속적으로 전문적인 연구의 길을 걷는 것도 배제하지 않느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