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영화 전통 위에 세워진 학풍
- 미국 대학 영화학과의 효시, 컬럼비아대학

영화학과라면 남가주대학(USC)이 미국 최초라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미국 대학 최초로 영화학과를 설립한 곳은 컬럼비아대학이다. 뉴욕이 미국 언론의 중심이라는 이점이 작용한 덕분이다. 1916년에 영화학과가 생겼으니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매체를 발명한 지 20년만의 일이다. 할리우드와 가까운 USC와 UCLA가 극영화 위주의 교육을 지향한다면, NBC, ABC, CBS와 같은 미국 3대 방송 네트워크의 본산지인 뉴욕에서 컬럼비아대학은 한때 기록영화 위주의 교육으로 유명했다. 특히 초창기 학과장을 맡았던 CBS방송 프로듀서 출신의 에릭 바누와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의 저자로 알려진 지그프리드 크라카우어 교수의 주도하에 컬러미아 대학은 기록영화 감독을 주로 양성했다.

그러나 컬럼비아가 여타 유명 대학 영화학과와 경쟁을 하기 시작한 것은 평론가 겸 영화이론가로 유명한 아네트 인스돌프가 학장으로 부임한 87년부터. 인스돌프 학장은 현행의 네 가지 전공제도(연출,극작,제작,이론)를 확립했으며 학부과정에도 영화이론과정을 신설했다. LA와 뉴욕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과감히 교수로 채용했는데 그 결과 학장 취임 첫해인 87년에 있었던 학생작품발표회에서 발표된 작품이 불과 12편이었던 것이 올해 4월에 있었던 발표회에서는 60여편에 이르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뒀다. 질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서 현재 이곳 미국의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영화인들 중 상당수가 컬럼비아대학 출신이다. 지난 91년부터 선댄스영화제의 상을 컬럼비아 출신 감독들이 휩쓸고 있는 게 좋은 예다. 94년부터 인스돌프 학장의 뒤를 이어 행정능력이 있는 극작가 출신의 루이스 콜 교수가 부임했다.

컬럼비아대학 영화학과에는 '영화연출', '극작, '제작', '이론' 등 4개 과정이 있다. 개인의 희망에 따라서 촬영이 다섯번째 전공으로 추가된다. 매년 9월 50명 가량의 신입생을 받아들이는데 1년간 각 전공의 기초과정을 수강한 뒤에, 본인의 희망과 지도교수와의 협의를 통하여 2학년 진학시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거의 80~90%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입학 당시에는 연출가를 꿈꾸며 학업을 시작하지만 1년이 지난 뒤에는 연출을 전공으로 택하는 학생 40%, 극작 40%, 제작 20% 정도의 비율로 나뉜다. 컬럼비아는 전통적으로 극작부분의 교수진이 강하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극작가로 진로를 택하는 편. 극작 교육의 경우, 5분짜리 단편을 다루는 기법에서부터 두 시간 이상의 장편 극영화 시나리오를 다루는 기법까지 매우 체계적으로 교과가 짜여 있다.

제작 전공의 경우도 제작의 각 분야를 담당하는 경험이 풍부한 제작자들이 교수진으로 포진하고 있어서 제작을 전공하는 학생의 수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 마이켈 하우스만, 리처드 브릭, 토머스 마운트와 같은 교수들이 제작비 마련, 사전작업, 제작, 후반작업, 마케팅, 배급 등으로 이어지는 영화산업의 각 단계를, 그 시점에 진행되고 있는 여러 프로젝트를 사례로 들어 강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상당히 현실감 있고 재미있는 강의로 정펴이 나 있다. 연출의 경우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교과가 진행되는데, 영상언어와 문법, 장면구성, 촬영각도, 편집, 음악선택 등과 같은 영상미학적인 내용을 가르치는 '영화워크숍' 과정과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며 그들로부터 연기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연습하는 '배우 연출' 과정이 그것이다. '배우연출' 과정은 이 과정을 창시한 레오노어 드코벤이란 할머니 교수가 매우 정열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영화워크숍'은 에밀 쿠스트리차, 밀로스 포먼, 배리 레빈슨 같은 스타급 감독 교수들이 작품 활동을 위해 학교를 떠나는 바람에 새로운 교수의 학보가 급선무인 상태다. '이론 전공'의 경우는 아네트 인스돌프, 앤드류 새리스, 리차드 펜냐, 데이비드 스테리트 등 우수한 교수들이 포진하고 있다.

2학년 때부터 전공이 결정되면 각 부분의 전공과목을 수강하고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기 위한 과제물을 내야한다. 연출 전공은 10분 내외의 단편, 극작은 장편 시나리오의 초고, 제작은 다른 친구의 작품을 두편 정도 제작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컬럼비아의 장점은 과목신청에 전공제한이 없다는 것. 이 대학이 자랑하는 경영학과나 법학과의 관련과목 수강도 가능하며, 미술학과의 데생이나 회화 과목, 철학과의 문화이론 과목들이 영화학과 학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는 편이다. 학점 관리 규정은 60학점, 즉 20과목을 이수해야 졸업논문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대개가 2년, 혹은 2년 반 만에 60학점 규정을 채우고 1년~1년 반 동안 졸업작품을 완성한다.

졸업작품에 대한 신청을 하게 되면, 연출 전공은 제작 전공의 학생과 팀을 이루어서 연출, 극작, 제작 지도교수의 감독하에 사전 준비작업을 하게 된다. 최종 시나리오, 촬영 일정, 예산이 준비되면 지도교수의 신청으로 교수회의가 소집되고 최종 촬영승인을 받게 된다. 극작 전공은 두개의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해야 한다. 졸업작품은 그 학생이 영화학과에서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학생작품발표회는 컬럼비아가 주최하는 대외적인 홍보 자리로서, 일종의 축제 같은 성격이다. 1년에 두번, 봄/가을, 그리고 LA에서도 한 차례 열리는 이 행사는 시내의 한 극장을 전세 내서 대개 3~4일 계속되며 마지막 날에는 교수가 추천하는 완성도 높은 10여편의 작품이 서로 경쟁을 벌여 뉴라인, 미라맥스 등의 독립영화제작사가 주는 상을 받는다. 이 자리에는 수많은 영화 관계자들과 기자, 평론가들이 참석해서 가능성 있는 신예 작가들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영화학도에게는 엄청나게 좋은 기회이다. 그외에 학생들을 위하여 실시되는 과외 행사로는 매주 금요일 오후에 있는 '초청연사 시리즈'가 있다. 유명감독이나 논란을 일으키는 작품의 감독들, 제작자와 배우들을 초빙하여 같이 토론을 하는 시간으로 실로 말로만 듣던 유명 영화인들을 피부로 접할 수 있는 좋은 자리이다.

컬럼비아는 LA의 영화학교나 NYU에 비하여 아무래도 백인계 학생이 수적으로 우세한 편이다. 필자가 속해있는 94학번의 경우를 보면 55명의 신입생 중에서 유럽계, 유대계, 영국계 백인이 37명으로 70%를 상회하고 있다. 그러나 동양계 학생들에 대한 문호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94년도에 4명이었던 동양계 신입생이 95년에는 5명, 올해 6명(96년)으로 늘어났다.

컬럼비아 대학의 입학문의처는 다음과 같다.

Columbia University Admissions Office / School of the Arts 2960
Broadway 305 Dodge Hall New York. NY 10027
전화번호:1-212-854-2134

<글:뉴욕-민인기 : 62년생.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96년 현재 컬럼비아대학 영화학과 대학원 재학중>

학과장 인터뷰 -루이스 콜(영화학과 학과장)
(96년도 당시 인터뷰 내용입니다!)

컬럼비아 영화학과가 중점을 두는 대목은?

컬럼비아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에게 영화학교로 기억되는 학교가 아니었다. 항상 한쪽에 치우쳤던 것이 문제였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양극의 교과과정을 융합하여 영화제작의 모든 분야를 고루 접할 수 있는 그런 교과과정을 짜내는 것이다. 기존의 시나리오 창작 전통위에 기술적인 교육을 효과적으로 접목하는 것이 요점이다. 현재 실행되고 있는 촬영장비의 다량화, 고급화도 이런 이유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적지 않은 한국 젊은이들이 영화계에서 직업을 찾으려 하고, 해외 유학도 많이 오고 있는 중이다. 이들을 위하여 컬럼비아대학의 영화교육을 소개한다면?

컬럼비아 영화학과 교육의 강조점은 우선 시나리오, 즉 스토리텔링의 연마에 있다. 이건 영화 제작의 가장 기초이기 때문에 단지 좋은 시나리오를 쓰는 방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나리오를 읽고 구별해낼 수 있는 능력도 기르는 것이다. 두번째 강조점은 통합이다. 다른 대학으 전문화, 세분화와는 달리 연출,극작,제작을 통합하여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커다란 시스템에서 한 부분으로 일하는 할리우드 영화전문 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이 아닌 뉴욕 스타일의 독립 영화 작가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다. 세번째 강조점은 영화이론과 역사에 대한 교육이다. 이는 촬영감독을 길러낸다 하더라도 영화에 대한 기본적 교양을 가지고 있는 전문인력을 키우는 것이며, 단지 영화를 손재주로 만드는 것이 아닌 머리와 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유학을 고려하고 있는 독자들을 위한 질문인데, 영화학과를 지원할 때 무엇이 결정적으로 당락을 좌우하며, 경쟁률은 어떠하고, 소수민족에 대한 쿼터배정은 실제로 존해하는 것인지?

쿼터배정 같은 건 전혀 없다. 그것은 다양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정신에 정반대되는 것이다. 만약에 쿼터가 있었다면 어떻게 당신이 입학했겠는가? 다음은 지원서에 대한 평가인데, 교수들이 Application Package에서 바라는 것은 다음 세가지이다. 우선 흥미를 줘야 한다. 지원자의 경력이라든지, 그의 글이라든지, 영화 아이디어라든지, 하다못해 생김새에서라도 흥미를 줘서 평가 교수들이 그를 만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영화에 대한 의욕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다른 사람들과 잘 협력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