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작가를 배출하는 학교"
-실험영화의 전통으로부터 할리우드 주류영화를 향해

UCLA 영화학과이 성격은 무엇인가. UCLA 영화학과 연출과정에 재학중인 한 한국인 유학생은 "영화작가(자기만의 사상과 스타일을 지닌 영화감독을 일컫는 말)를 배출하는 학교"라고 단언했다. 고도로 전문화된 영화제작의 현실에 눌려 독창적인 영화작가의 입지가 그 어느 때보다 좁아진 사정을 고려할 때 언뜻 이해되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공립학교 특유의 실험적이고 개방적인 전통과 창작 환경을 갖춘 UCLA 영화학과의 학풍에 비추어 본다면 그 유학생의 말뜻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연극, 영화, TV대학"(Theater, Film and Television at UCLA)의 일부를 이루는 UCLA 영화학과는 공식 명칭이 "영화와 TV학과"(Department of Film and Television)인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종합적인 공연예술인 양성을 지향하고 있다. 1955년 연극학과로부터 분리된 영화학과는 지금까지 LA 영상산업이 필요로 하는 능력있는 인재들을 배출해 왔다.

미국의 명문 영화학교들이 대게 사립대학인데 비해 UCLA 영화학과는 드물게 주립이다. 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영화학의 특성상 자칫하면 영화학은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 되기 쉽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학교쪽은 공립대학의 특성을 활용해서 여러 계층의 학생에게 배움의 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많은 학생을 선발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대학원 연출과정 재학생이 약 70여명으로 사립대학에 비해 적은 것은 교육의 외연적 확대보다는 내실을 다지겠다는 학교의 방침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학과가 보유한 시설과 장비는 어느 학교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3개의 TV스튜디오, 2개의 사운드 스테이지, 대형 TV 중계차, 10개의 비디오편집실, 30개의 영화편집실, 디지털 미디어 제작실은 학생들의 창작을 위해 24시간 열려 있다.

UCLA 영화학과는 학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영화 학도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학비는 다른 사립영화학교의 1/3 정도, 다양한 재정 보조가 학생들을 돕고 있다(하지만 유학생들은 이 저렴한 학비 혜택을 쉽게 받지 못한다. 유학생을 비롯한 다른 주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차별적인 등록금제 때문에 사립대학의 등록금에 버금가는 학비를 내야 한다). 이런 이점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이 학교에 지원하고 타대학에 비해 치열한 입학 경쟁이 벌어진다.

UCLA 영화학과는 영화 학부와 대학원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2년의 학부 과정은 교양과목을 모두 이수한 3학년 학생만이 지원할 수 있으며 편입생도 받고 있다. 30여명의 학생이 등록중이며 교과 과정은 영화의 역사, 이론, 실기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도모하도록 짜여 있다. 입학 지원시에 영화 관련 작품 대신 문예 창작물 제출을 요구하고 있으며,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 그리고 협동 작업에 필요한 원만한 인성을 갖춘 학생들을 뽑는다. 학부 과정을 마쳤다고 해서, 같은 학교 대학원의 진학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의 경우 대학원 연출과정의 입학허가서를 받은 UCLA 영화학과 학부생이 단 한명에 그쳤다는 사실은 까다로운 대학원 입학 전형과 함께 '동종교배'를 꺼리는 미국 대학의 성향을 잘 반영한다.

석사과정은 연출, 제작, 극본, 애니메이션의 4개의 실기과정(MFA)과 이론과정(MA) 등 모두 다섯 분야로 나뉜다. 대학원은 전공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지원의 기회를 준다. 지원 학생의 창의력에 더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연출과정의 경우 매년 7백여명의 학생들이 지원하는데 1차 서류심사, 2차 면접과 작품 심사를 통해 21명 학생이 입학허가서를 손에 쥐게 된다. 학생처장인 세실리아 윌모트는 "지원자들이 자기소개서를 쓸 때 미래에 만들고 싶은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러준다.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선호하는 학과의 성향 때문에 실험정신과 진취성을 갖춘 지원자들이 입학에 유리하다.

하길종, 프랜시스 코폴라, 폴 슈레이더, 찰스 버넷, 앨리슨 앤더스 등의 영화작가를 배출한 UCLA 영화학과는 지금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영상산업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영화인 배출을 위해 진보적인 학과의 풍토에 영화산업 현장의 요구를 접목시키려 하고 있다. 학과 설립 초기에는 영화산업이 요구하는 기능인 양성보다 예술적 표현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여,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학생들 창작물의 대다수였다고 하다. 학생시절 코폴라가 B급영화 제작자인 로저 코만의 극본과 연출을 맡았다고 하여 학우들로부터 빈정거림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당시의 분위기를 잘 설명해준다.

이러한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분위기는 소수민족의 영화운동으로 이어져 찰스 버넷, 하릴레 제리마, 래리 클라크 등이 중심이 된 70년대 흑인영화운동을 낳는다(이러한 풍토가 하길종 감독의 실험적인 영상미학을 벼리는 데 한몫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성향은 주류 영화산업이 요구하는 영화인 양성에 불리하다는 지적을 들어왔다. 실험성의 강조만으로 팽창하는 영화산업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대제작자들로 성장한 80년대의 "영화 아이들"(Movie Brats) 가운데 UCLA 영화학과 출신이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학교쪽은 영화산업의 현실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극본창작과정의 변모가 그런 체질 개선의 한 예. 필수과목인 극본학에서는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서술 구조를 중심으로 강의 방향이 바뀌었다. 학생의 표현력을 제한하지 않으면서, 영화산업이 필요로 하는 영화인을 키우겠다는 것이 학교의 의지인 셈이다. 공립영화학교 나름의 실험적 전통과 주류 영화산업의 현실적 요구를 효과적으로 접목시키는 일, 바로 이것이 현재 UCLA 영화학과가 안고 있는 과제다.

입학자료 담당자 연락처는 다음과 같다.

Cecilia Wilmott:Department of Film and Television, University of
California at Los Angeles, Los Angeles, CA 90024

<글:LA-안진수 : 68년생. UCLA 영화학과 이론 박사과정>

교수 인터뷰 -피터 윌렌(Peter Wollen)
(96년도 당시 인터뷰 내용입니다!)

피터 윌렌 교수는 서구 영화학에서 중요한 저서로 평가받는 <영화의 기호와 의미>로 유명한 학자. 윌렌은 에이젠슈타인의 미학과 작가주의와 기호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이 책으로 60년대 중반까지의 영화 이론 성과를 집약한 업적을 남겼다. 주류영화의 형식을 공격하는 아방 가르드 미학과 여성주의 세계관을 결합한 일련의 실험영화 작업으로도 유명한 이론가이자 실천가이기도 하다.

UCLA 영화학과 이론과정의 강점이라면?

뛰어난 학생들이다. 좋은 교수진이 자질있는 학생들을 모으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학생들의 우수한 자질과 성실한 면학 분위기가 학과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믿는다. UCLA 영화학과 이론과정의 특성으로 폭넓고 깊이 있는 커리큘럼을 꼽고 싶다. 교수진 모두가 영화 이론에 해박한 학자들이지만 수업과 연구가 교수진의 이론 분야만을 중심으로 된 것은 결코 아니다. 탈식민주의론, 다문화주의 이론 등의 연구가 활발하고 중국영화 연구도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다. 학교의 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자료 역시 영화 이론과정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장 르누아르의 개인 문서나 해이즈 검열의 실사문서를 직접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살아 있는 교육의 한 예라 할 수 있다.

현재 영화학의 추세를 말하자면?

오랫동안 수용이론과 문화연구가 강세를 보였다. 이는 작품 분석에서 수용자, 관객으로 연구의 대상이 옮겨갔음을 뜻한다. 문화연구 역시 소비라는 개념 안에서 영화 매체를 다루어 괄목한 만한 성과를 거뒀다. 그런 과정 속에서 미학이나 작가의 연구가 뒷전에 밀렸다고 볼 수 있다. 근래에 스튜디오 역사 연구와 함께 영화 제작 기관 연구가 다시 일어나는 것 같다. 정치적 담론의 연구에 밀렸던 미학에 대한 논의 역시 다시 활기를 찾으리라고 본다.

근래의 작업은?

<영화와 기호의 의미>라는 책을 수정, 보완하고 있다. 에이젠슈테인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자료의 부족으로 아직 큰 진전이 없다. 지금은 책의 마지막 부분인 영화기호학을 다듬고 있는데, 영화언어가 서술 매체로 굳어진 초기영화의 변천을 언어학 이론을 빌려 설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근래에는 영화와 다른 예술매체, 곧 미술, 춤, 패션, 행위예술간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모두 현재 영화학에서는 별로 다루지 않는 주변분야라고 밝히는 것이 계획중인 세미나의 주제다. 나 역시 연극분야는 처음 다루는 것이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작업중이거나 계획중인 영화 제작은?

지난 몇해 동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서너편 만들었고, 내년 안식년에는 극영화의 극본을 쓸 계획이다(윌렌 교수는 안토니오니가 감독한 의 시나리오 작가이며, 70년대 초에는 당시 아내였던 로라 멀비 교수와 함께 작품 제작에 주력하였다). 크리스 마커나 하룬 파로카의 "에세이영화"라는 실험영화 장르도 현실적으로 제작의 가능성이 많아 고려중이다. 영화의 제작만큼이나 꾸준히 발표해 온 단편소설의 창작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영화학을 공부하려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진부한 소리겠지만 많은 영화를 보고 관련된 영화를 보고 영화에 관련된 책이나 잡지, 학회지를 두루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토론의 장을 만들어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우리 세대는 이를 위해 영화잡지를 만들곤 했는데, 지금은 웹사이트를 통해서 대신할 수 있다. 현재 영화학은 대단히 다양한 분야로 성장했기 때문에 그중 가장 관심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것도 효율적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