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이끄는 이론가 양성소
-프랑스 최고 석학들의 집산지, 파리 제3대학 영화과

현재 프랑스가 세계영화계에 자신있게 내놓을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누벨바그시대처럼 화련한 진용 없이 몇몇 감독만이 궁색하게 개인전을 치르는 프랑스영화가 왜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서 개인전을 치르는 프랑스영화가 왜 유독 다른 나라에 비해서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이하 <카이에>)는 백년의 영화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이에 대해 '영화의 교육환경'이 그 비결이라는 아주 평범한 대답을 하고 있다. 카이에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실기학교로 역시 이데크(IEDC)라는 전설을 등에 업고 있는 페미스를 꼽았다. 흔히 또다른 국립학교 에콜 뤼미에르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서열과 명성, 시설에서 페미스가 한발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확실히 페미스는 거장을 배출하는 양산체제를 보여주진 못하지만 아직도 유럽 학생들의 동경일 만큼 매력이 있다. 게다가 국립과 사립이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프랑스의 교육 환경에서 페미스는 영화쪽으로는 프로가 되기 위한 유일한 국립 전초기지이다. 졸업 뒤 100% 스카우트,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 그 권위를 말해준다.

그러나 <카이에>는 프랑스에서나 가능한 목록 하나를 추가하는데 이론과정으로 파리 제3대학을 꼽은 것이다. 프랑스영화계는 파리 제3대학을 페미스 못지 않게 대접한다. 파리 제3대학이 프랑스의 자랑거리 중의 하나인 까닭은 여기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영화이론의 산실이라는 점이다. 다른 대학으로부터 지나치지 않느냐는 비난을 받을 만큼 제3대학은 유명인사들을 모두 거느리고 있다. 레이몽 벨루, 자크 오몽, 미셸 마리, 장 루이 뢰트라, 노엘 뷔르시 등 그야말로 현대 영화 이론계 26명의 두뇌들이 한데 모여 있다. 입시 요강에 보면 파리 제3대학의 영화과는 실기학교가 아니며 실기교육은 페미스 등의 다른 교육기관에서 배울 수 있다고 점잖게 거절하는 말이 쓰여 있다. 이것은 현재, 이론이 이끌어가는 프랑스영화계의 모습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영화과 지망생들은 '영화학자, 즉 이론가가 되고 싶으면 3자 앞에 세번 넘어져라'는 우스개말을 한다. 이 말은 제3대학의 권위를 말해주는 동시에 학생선발의 엄격함도 말해준다. 교수진이 좋으면 학생들이 몰리게 되는 법, 때문에 드물게도 제3대학은 학생을 성적으로 고른다(프랑스대학의 입학은 일반적으로는 선착순 개념이다). 대학 3년 기간(프랑스의 대학은 3년제이다) 동안은 어려운 입학에도 불구하고 특이한 것은 없다. 특히 교양과정인 되그(DEUG)는 2년과정으로 그야말로 교양과목들만 즐비하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 특히, 라틴계 출신이 아닌 아시아계의 유학파들에겐 오히려 박사과정보다도 힘들지 모를 만큼 엄청나게 바쁜 일정을 갖고 있다. 우선 교양답게 라틴어를 비롯 프랑스 문화사 등등의 여지껏 꿈도 꿔보지 않은 과목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 2년을 거치면 1년간의 전공과정 리상스(Licence)가 있다. 여기에 와서야 본격적인 영화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1년 안에 11개의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 이 과정도 여간해서는 유학생들이 통과하기 힘든 과정이다. 일단 불어가 딸리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총 6개의 분야가 있는데 미학/ 영화사/ 시지각 예술 분석/ 영화와 오디오 비주얼 사회 또는 경제학/ 시나리오 실제와 분석/ 다른 전공자들을 위한 보조 등이 그것이다.

대학 3년을 마치면 이제 1년의 대학원과정이 있다. 제3대학의 교육과정 중 적어도 시간적으로는 가장 수월한 편이지만 여기도 역시 함부로 볼 게 못 된다. 박사로 가는 고비는 이 과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론가가 되기 위해서 제3대학 앞에서 세번 넘어지라는 말은 여기까지의 과정에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박사준비과정 입학 때가 그 첫번째이다. 대학원을 마치고 박사로 가는 길목에 놓인 박사준비과정(DEA)과 박사과정의 입학은 기가 막힐 만큼 까다로운 수준이다. 덕분에 제3대학의 박사준비 과정에는 자부심 많은 학생들로 가득차 있다. 제3대학 박사준비과정은 인문과학으로는 명실공히 가장 강도 높은 과정으로 꼽힌다. 대부분의 박사준비과정이 1년에 한두 과목 이수와 논문으로 끝나는 반면 제3대학은 다섯 과목의 수업을 이수하고 논문(80장)을 써야한다. 하도 비난이 거세 삼년 전부터는 네 과목으로 한 과목을 줄여줄 만큼 '심한' 것으로 통한다. 사실 제3대학을 자랑스럽게 하는 과정이 바로 이 박사준비과정이다. 불과 네개의 학점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총과목이 30여개. 풍부한 교수진이 아니면 흉내내기 어려운 지점이다. 인문과학학과 통계에 따르면 제3대학 영화과 박사준비과정은 가장 풍성한 과목 수 즉, 교수 인원을 확보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따라서 거의 모든 부문의 연구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론가가 되기 위한, 즉 박사가 되기 위한 두번째의 걸림돌은 2~4년으로 잡혀 있는 박사과정 입학이다. 박사준비과정 학생들 중에 삼분의 일이 채 안되는 학생들만이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네 과목 고루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야 하고 논문의 성적이 무엇보다도 좋아야 한다.

마지막 걸림돌은 무엇일까? 당연히 박사논문이다. 3백50장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대체로 4백장에서 5백장을 교수들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원고지 2천매가 넘는 분량이다.

외국인 학생들은 어느 과정에나 입학하기 위해선 까다롭기로 소문난 제3대학 어학시험을 치러서 수업받을 수 있다는 평가를 일단 받아야 한다. 제3대학 영화과에 아시아인이 드문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어학시험의 어려움에 있다고 봐도 된다. 입학 때는 그렇진 않지만, 입학뒤에 영화공부를 수월히 하기 위해선 우리나라의 영화과 출신보다는 문학이나 철학과 출신이 조금 더 적응하기 수월하다. 베르그송과 들뢰즈를 아는 데서부터 영화과의 공부가 시작되는 환경이기 때문에 영화과 출신이라면 다른 인문과학분야를 정보차원에서가 아니라 충실히 공부해 두는 것이 다니는 데 득이 많다.

참고로 제3대학 영화과에 다니는 한국인은 현재 총4명이다.(96년 상황임) 대학원과정에는 2명의 한국인이 다니고 있고 박사준비과정에는 프랑스 대학원 출신이 아닌 사람으로 예외적으로 입학한 1명의 한국인이 있어서 한국 대학원 출신도 문을 두드려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있다. 또 박사과정에 1명의 한국인이 다니고 있다.

제3대학 입학 학부과정과 대학원, 박사준비과정은 9월 이전에 입학원서를 접수시켜야 한다. 학부과정은 입학 원서접수로 끝나지만, 대학원 및 박사준비과정은 6월말까지 교수와 만나 자신의 논문계획서에 대한 지도허가를 받아야 한다. 어떤 경우든 제3대학 지원생 중 외국인은 타 대학에 비해서 엄격한 어학능력 시험을 통과하여야만 입학이 허용된다.

참고로 제3대학은 일반적으로 한국에서의 학력 수준보다 한 단계 밑의 수준을 주로 허용한다는 것을 알아야 함. 즉,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다시 학부과정에,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은 다시 대학원과정에 하는 식으로(단, 대학원과정 지원시에 논문계획서나 언어능력이 충실한 경우에는 한국에서의 학력을 인정받아 그 윗단계에 진학할 수도 있다).

입학원서를 교부받으려면, 늦어도 8월까지는 학교에 편지를 보내 원서를 신청하여야 한다. 이때 어느 과정 원서를 원하는지 반드시 편지에 기입하여야 한다. 참고로 재학증명서나 졸업증명서를 프랑스 대사관에서 공증을 받아 첨부해야 한다.

<글:파리-김성태 : 63년생, 한신대 국문학과 졸업 96년 현재 파리 제3대학 박사과정 수료>

한국학생 인터뷰 : -한국학생 인터뷰 -서정일(석사과정)
(96년도 당시 인터뷰 내용입니다!)

학교에서 가장 힘든 점은?

수업이 너무 벅차다. 일주일에 하나씩 만들어야 하니까 프로젝트도 너무 많다. 무거운 과제와 경쟁 부담은 10여명의 다른 유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이번 학기에는 신이 난다.

프랑스로 유학을 온 계기는?

프랑스에선 영화를 많이 볼 수 있다는 주위 사람의 권유가 많았다. 영화 외적인 문화환경이 좋아서 정신적인 자양분을 많이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어떻게 파리 제3대학을 택하게 됐나?

13개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지만 영화과가 있는 곳은 제3대학과 제8대학뿐이다. 제3대학이건 제8대학이건 실기쪽 과목은 없다. 제8대학은 68년 5월혁명 때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필명을 날리던 장 나르보니 같은 교수가 포진해 있고 지금도 3세계영화나 진보적인 영화를 옹호하는 실천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제3대학에 쟁쟁한 이론가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론에 대한 욕구를 해소시켜 줄 수 있는 곳으로 제3대학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지금 뭘 연구하고 있나?

"칼 데오도르 드레이어의 <흡혈귀>에 나타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관하여"란 주제다. 드레이어의 영화에만 있는 특이한 시점화면, 등장인물 중 누구의 시점도 아닌 시점 화면이 어떤 초월적이 존재를 암시하는 것 아니냐, 뭐 그런 가설을 놓고 논문을 진행시키고 있다. 여기 교수들은 남들이 건드리지 않았던 주제를 학생들에게 권장한다.

영화감독이 되는 데 전문적인 이론공부가 도움이 되나?

할리우드에 젖어서 매일 그런 것만 보다 왔는데, 내가 지금 연구하는 드레이어 감독만 하더라도 30년대에 이미 초월적인 것에 대한 고민을 영화에 옮겨놓고 있다. 영화으 현대성, 무진장한 표현의 보고라는 점, 이런 걸 느꼈고 앞으로도 그런 걸 캐보고 싶다. 물론 영화감독이 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될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