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현장 핫라인
-실기위주의 영화교육, 프랑스의 에섹

페미스와 뤼미에르가 프랑스의 2대 국립 영화학교라면 사립교육기관의 대표로 꼽히는 학교가 에섹(ESEC)과 에스라(ESRA) 정도다. 에스라가 광고영화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영상교육을 시키고 있다면 에섹은 영화기술교육에 주력한다는 게 특징이다. 파리 12구에 자리잡고 있는 이곳은 각국의 자유분방한 젊은이들로 북적거린다. 20%가 외국인인데 한국유학생은 서너명 정도다.

에섹은 73년에 설립됐다. 러시아인이 교장을 맡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교장은 코스티아 밀하키에프. 이 학교가 프랑스 국제예술아카데미재단의 재원으로 운영되며 러시아의 생 페테르스부르크 예술역사연구소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는 것과 관련 있다. 아직까지 이 학교에서 배출한 유명 영화감독은 없는 편. 우리 박광수 감독이 이 학교 출신. 그래서 지금도 박광수 감독은 프랑스에 들르면 학교에서는 칙사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에섹 학생들의 졸업 뒤 취업률은 매우 높은 편이어서 영화와 방송쪽 제작기술부문에 거의 100% 취업하고 있다. 아무래도 실기기술교육에 집중하는 편이라 감독쪽의 인력배출은 아직까지 그닥 주목할 만한 수준이 아니지만 기술인력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어서 점점 많은 수의 에섹 출신 사람들이 프랑스 영화계에서 하나의 계보를 이루고 있다.

대학교육을 2년 이상 받았을 경우 학교에 구비되어 있는 서류를 작성해 제출한 뒤 서류심사로 입학여부가 결정된다. 서류제출은 3월부터 10월15일까지 가능하며 1년 학비는 등록금을 포함해 4만프랑(약 6백만원-96년기준임) 정도이며 세번에 나누어 낼 수 있다. 입학 전 미리 프랑스 정부에 장학금도 신청할 수 있다.

1학년 과정에서는 기초수학, 기초물리화학, 영화사, 영화분석, 현대영화, 소리와 영상, 영상의 역사, TV강론, 영화 경제론, 비디오기술, 영화기술, 비디오 실기, 시나리오 작성법과 연출론을 배운다. 하루에 보통 두 강의로 이루어지는데 3주나 한달 과정으로 각 과목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먼저 실기 이론을 배우고 5~6명으로 구성된 그룹별 실기 제작에 들어가 작품을 제출해야 한다. 예를 들면 조명 수업인 경우 이론을 가르치고 인터뷰를 찍어오라고 한다. 주어진 12시간 내에 프로젝트의 위치를 바꾸고 액세서리를 이것저것 바꾸는 사이 조명의 특성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 시험은 학기중 두세번에 나누어 치르는데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을 받아야 2학년 진학이 가능하다. 외국인이라도 아무런 배려가 없고 프랑스인과 똑같이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불어 실력이 필수적이다.

2학년 과정은 연출과, 제작과, 멀티미디어 창작과, 편집과로 나뉘고 공통과목 몇개를 제외하고 수업은 따로 하게 된다. 1학년 때 배운 실기 이론을 좀더 심도 있게 가르치고 그룹별 실기 제작을 집중적으로 여러 번에 걸쳐 하게 된다. 교수진은 대학교수, 영화감독, 영화제, 시나리오작가, 편집기사 등 영화현장의 경험이 풍부한 강사로 이루어져 현장감각이 그대로 수업에 이어지게 된다.

연출과인 경우 조감독 실습, 영화실기 기수, 현상, 비디오 이론 및 실습(조명), 카메라 촬영, 녹음이론 및 실습으로 커리큘럼이 구성된다. 예를 들어 조감독 실습 수업에서는 한 영화 시나리오를 선정해 영화기획부터 촬영까지 영화제작과정 전반에 대해 실제 그 영화를 만들었던 현역 조감독이 강의한다. 그 시나리오만을 보고 그룹별로 촬영장소, 헌팅, 배우캐스팅, 촬영일정표 작성, 스토리보드를 리포트로 제출한뒤 그 영화를 직접 보면서 조감독과 함께 리포트를 비교 토론한다. 녹음이론 및 실습수업은 먼저 소리의 특징, 마이크의 종류와 특징, 녹음기의 종류와 특징을 배우고, 녹음기 나그라(Nagra-아날로그 방식)와 D.A.T.E(디지털 방식)를 듣고 사운드 녹음실습을 한다. 마이크를 바꾸어 쓰고 녹음 필터를 조정하고 소리를 채집하면서 사운드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연출과가 영화 위주의 수업이라면 멀티미디어 창작과나 편집과는 정원이 각각 15명으로 제한돼 있어 1학년 성적이 아주 좋아야 들어갈 수 있다.

칸영화제 기간 동안은 연수 기회를 주는데 매년 10명 남짓 다녀오고 있다. 이론, 실기 시험의 총평점이 10점이 넘으면 일단 학위 수여자격을 따게 되고 의무적으로 한두 차례 영화제작에 직접 참여해 실습을 통한 보고서류를 작성, 제출해야 학위를 받게 된다.

2학년 말이 되면 몇몇 연출과 학생들은 영화제를 겨냥해 자기 작품을 준비하고 제작과 학생들은 졸업 뒤 친구들과 함께 독립 프로덕션을 차린다.

3학년 과정은 임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시나리오나 컴퓨터 편집 등의 수업을 교수와 일 대 일로 진행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다. ESEC은 졸업 뒤 영화 현장에서 바로 뛸 수 있도록 학생들을 훈련시켜 준다.

<글:파리-이성철 : 61년생, 부산대 불문과 졸업, 파리 제12대학 불문과 석사, 96년 현재 ESEC 2학년 재학중>

한국학생 인터뷰 -최현기(에섹 1학년 재학생)
(96년도 당시 인터뷰 내용입니다!)

에섹을 선택한 이유는?

한국에서 이미 이 학교를 알고 있었다. 이론보다 영화 실기제작에 더 관심이 많았고 빨리 현장에서 일하고 싶어서다.

수업은 어떠한가?

벅찬 편이다. 어학과정을 마쳤지만 강의를 따라잡기 힘들다. 프랑스 친구에게 강의노트를 빌려 매일 복습하며 강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한다. 실기 제작 수업인 경우 그룹 내의 조화가 중요하다. 카메라 위치 하나를 정하더라도 전원 합의를 본 뒤 촬영에 들어간다. 사전 준비작업이 아주 치밀한 것, 작품 하나를 만들 때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동양과 다른 서양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힘든 만큼 재미있다. 촬영 실습 때 촬영 장소인 친구집까지 모든 장비를 들고, 메고 가느라 많은 시간을 빼앗겨 몹시 아쉬웠던 기억도 있다. 시간 배정을 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강의 없는 때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교수들이 추천하는 전문서적을 읽거나 '시네마테크'에서 이전에 한국에서 보지 못한 영화를 본다.

2학년 때는 무슨 과를 선택할 건가?

카메라와 조명을 공부하고 싶다. 진급에 대한 부담은 있지만, 어느 정도 학교 생활에 적응한터라 최선을 다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