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영화이론의 자존심
- 강도높은 이론강의, 워릭대학 영화 TV학과

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려면 할리우드의 나라 미국으로 가든지 유럽영화의 자존심을 어렵게 지켜 나가는 프랑스로 가야한다고 생각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두 나라의 발달된 영상산업, 화려한 영화인력, 풍부한 기술, 문화 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도 찰리 채플린이나 앨프리드 히치콕 같은 거장들이 영국 출신이고 할리우드에서 연기 잘 하기로 유명한 배우들의 상당수가 영국 출신인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 다음 순위쯤으로 생각될 나라가 영국이다. 영국의 영화산업은 199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마이크 리 감독, 피터 그리너웨이, 데이비드 린치, 스티븐 프리어즈, 켄 로치 같은 개성있는 감독들이나 엠마 톰슨, 앤소니 홉킨스, 다니엘 데이 루이스 같은 배우로나 겨우(!)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6,70년대 이후 버밍엄대학의 CCCS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연구의 중요성을 체계적으로(사회학, 기호학, 정신분석학, 구조주의적으로) 주장한 문화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영화이론 연구는 상당한 수준을 자랑한다.

영국에는 의외로 우수한 영화이론 관련 학교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쟁쟁한 영화학자들이 모여있는 학교가 워릭대학 영화 TV학과이다. 1978년 의 저자, 빅터 퍼킨스에 의해 시작된 워릭대학 영화과는 곧이어 버밍엄 CCCS 출신의 리처드 다이어 교수( 등의 저자), 여성주의 영화 및 방송 이론가 샬롯트 브린스턴, 유럽영화 백과사전을 편찬한 지네트 벵상도 교수 등이 합세하면서, 교수진의 수준 높은 연구와 강의를 자랑하는 성장일로의 학과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영국 대학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연구실적 평가에서도 최고로 인정받았으며, 각종 자료 및 문헌의 소장량도 영국의 대학 중에서 가장 많다.

대학원 석사과정(1년)의 교과는 영화비평의 기초가 되는 미장센(mise-en-scene)을 자세히 분석하는 훈련과정인 '영화분석 및 영화양식', 기존의 영화를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영화사론', 영화 및 방송에 등장하는 특정그룹(소수민족, 여성, 동성연애자 등)의 이미지를 이해하고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분석하는 'Representation론'이 필수 과목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영화연구 방법론', '여성주의 비평' 등의 과목을 따로 수강하거나 갖가지 소그룹 세미나에 참가할 수 있다. 수업은 주로 강의, 영화감상, 세미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평균 8시간씩 진행되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다. 하지만 학과 구성원이 그만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덕분에 분위기는 아주 가족적이다. 영화제작이 정규 과정 안에 포함되어 있진 않지만, 상당수의 학부 졸업생들이 채널4를 비롯한 방송이나 영화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연구원, 영화 프로그래머 등으로 국제영화제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졸업생 중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은 , 을 연출한 폴 앤더슨이다.

현재 학부에서는 약 1백명 정도의 학생이 등록되어 있고, 석사는 13명, 박사과정 학생은 23명이다. 한국 유학생으로는 지금까지 1명이 석사학위를 마쳤고, 필자가 과정 중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니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영국 내는 물론 다른 유럽 국가나 미국, 캐나다에는 잘 알려진 학교라서 입시 경쟁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대학원 과정 학생의 국가별 구성원을 보면, 대부분의 영국 학생들이지만, 북미, 유럽 학생이 10% 정도이고, 동양인은 석사 3명, 박사 1명이 등록되어 있다. 학부에서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인문학, 사회학을 전공했으면 대학원 과정 입학이 가능하지만 대신 '영화연구 방법론' 과목을 따로 수강해야 한다. 그리고 10월에 시작하는 석사과정에 입학하려면 그 해 3월 이전까지는 원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음 주소나 팩스로 학과 비서 일레인 텐틴에게 연락하면 대학원 과정 개요책자를 받아볼 수 있다.(96년도 주소임)

Department of Film & Television Studies, University of Warwick, Coventry CV4 7AL U.K. Fax:(영국 국가번호) 44-1203-524757 <글:코벤트리-신지윤 : 68년 광주 출생, 전남대에서 영문학을 전공, 서강대에서 영문학과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93년 영국에 건너가 위릭대에서 문화학을 공부, 영화쪽으로 관심을 돌려 현재 영화학 공부에 매진중>

교수 인터뷰 -지네트 뱅상도 Ginette Vincendeau(영화과)
(96년도 당시 인터뷰 내용입니다!)

대학(소르본, 파리 3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국에 와서 불어를 가르치다가 지금의 영국인 남편을 만나 영국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당시 가르치고 있던 이스트 앵글리아(East Anglia)대학에서 영화이론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마도 순수하게 영화로 박사학위를 받은 첫세대에 속할 것이다.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영국에서 공부하게 되었지만 프랑스에 있었더라도 같은 길을 갔을 것이다(내가 대학을 다니던 60년대 말에는 어느 나라에도 영화학과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가 다니던 대학에도 훌륭한 영화학과가 생겼다. 실은 내년 안식년에 한 학기 동안 그곳에서 강의를 하게 되어있다). 물론 프랑스의 영화문학, 영화산업이 영국보다 더 다채롭고 활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국에서 영화공부를 한 것에 대해서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 영화이론 연구, 특히 페미니스트 영화이론은 영국이 오히려 더 진보적이다.

영국과 미국의 영화연구에 차이점이 있다면?

두 나라 모두 다양한 영화학교가 있고, 각각 나름대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영화이론은 좀 더 역사주의적이고 형식주의적인데 반해 영국은 문화연구의 영향을 받아 동시대적이다. 워릭대학 영화과는 영화사가(Film historian)를 양성하는 곳이라는 느낌이 있다. 영화사가란 어떤 사람이며, 영화비평가와는 어떻게 다른가?

영화비평가는 영화의 미적인 평가와 수준을 판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역사가는 연대기적인 틀 안에서 증거들을 바탕으로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 물론 영화관, 대중영화장르, 관객, 기술분야, 영화스타 등 관심분야에 따라 다양한 영화사가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영화사가는 단순히 어떤 일이 있었던가를 설명하기에 앞서 일정한 관점, 즉 역사관을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연구 방법은 알맞은 자료의 유무와 그 자료의 정확성에 달려있다.

워릭대학 영화 TV과만의 강점이라면?

우선은 초창기 교수진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교수진이 새로 보강되긴 하였지만, 학교를 떠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번째로는 자료가 질적으로 우수하다는 점이다. 수업에 관련된 영화는 모두 비디오가 아닌 16mm나 35mm필름들을 사용하고, 학과 내에 7천개 정도의 비디오가 비치되어 있는 '비디오 라이브러리'가 있어 학생들이 수시로 이용할 수 있고, 학교 중앙도서관의 영화관련 도서도 영국 내에서는 가장 많다. 세번째로는 교수 대 학생 비율이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학생정원을 일부러 늘리지 않고 있다.

한국학생 인터뷰 : -신지윤(영화과 석사과정)
(96년도 당시 인터뷰 내용입니다!)

영화공부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68년생이며, 한국에서는 영문학 공부를 했다. 전남대학교 86학번이고, 서강대 대학원 90학번이다. 92년에 서강대 대학원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을 앙토넹 아르토의 잔혹극 이론을 가지고 생각해 본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마치고 93년에 영국에 와서 문화학 공부를 했다. 사실 문화학을 공부하기 전까지는 영화를 수준 낮은(!) 대중문화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영화를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고, 보지 못했던 영화들(오래된 영화, 유럽영화, 정치적인 영화)를 보게 되면서부터이고, 연극과는 달리 영화가 갖는 무한한 가능성과 대중성에 매료되어서다. 워릭대학 영화과 석사과정에(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사과정입학은 허락되지 않았다)입학허가를 다시 받아, 현재 석사학위 콜렉터라는 별명을 애써 무시하면서, 또다른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중이다.

연구하는 테마는?

유럽의 주요 영화산업 국가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영화 감독들(루이 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빔 벤더스)이 영어로 만든 영화에 대한 연구이다. 언어 문제를(그들이 영어를 선택한 이유) 통해서,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할리우드와 숙명적인 대결구조에 있는 유럽영화 산업 전반에 관해 통찰하고, 영어로된 유럽영화의 정체성 문제(그래도 유럽 예술영화에 속하는지의 여부) 등을 중심으로 연구중이다.

졸업 뒤 계획은?

이론공부를 하고 있는 만큼 일단은 박사과정에 진입할 생각이지만, 현장 경험을 조금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유럽영화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계속 공부하고 싶고, 국제 영화제 전문인이 되고 싶기도 하다. 장차는 한국영화를 학문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학계에서 높이 평가되는 일본영화들을 대하면서 불타는 질투심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조건이 허락한다면 한국에서 대학강의도 하고 싶고, 작가주의 비평에 머물러 있는 우리 영화비평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도 싶다.

<글:씨네21-오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