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아버지>를 만든 영화사 시네비전에서 판권을 사놓은 상태였다. 그 쪽에서는 장길수 감독에게 이 영화를 맡기려고 했는데, 진행 중 엎어졌다. 영화사 사장 친구가 후배인데, 처음에 그 친구가 자기가 감독을 직접 하겠다고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왔다. 하지만 신인감독이 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영화화하기로 결심을 하자 이제 그 친구를 설득하는 일만 남았다(웃음).

그리고 나서야 원작을 봤는데, 주위에서는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꽤 있었다. 공동 제작하기로 한 한맥영화사의 김형준 사장과 이야기를 했다. 어쨌든 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원작에서 보는 이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신체 특정 부위를 지칭하는 비속어들의 남발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이 판금조치 된 데에는 그런 이유가 클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말들은 영화화의 과정 속에서 일정 정도 사라진다. 그럼 가능하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장정일의 소설에는 독재 시대를 겪어오면서 억눌려 있던 표현들, 그 정신병적인 징후들이 정확하게 드러나 있었다. 이건 참 시의 적절한 이야기가 아닌가? 사실 장정일에 대해서는 그 전부터 계속 관심이 있었다. 89년 그가 처음 낸 시집인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굉장히 좋게 본 기억이 있는데, 그중에 한 편인 「샴푸의 요정」을 각색해서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일이 있다. 그때 그걸 영화로 옮겨오기 위해 장정일을 만났었다. 결국에는 생각보다 재미있게 안 나와서 포기했지만.

다른 영화사가 이미 판권을 사놓은 작품이기 때문에 이 영화 하면서는 장정일 씨와 만날 일이 없었다. 장선우 감독도 그렇고. 며칠 전 어느 인터뷰에서 보니까 “만들지 말지 그랬어요”라고 말하더라(웃음).

나는 처음부터 무조건 제일 잘 해낼 사람은 장선우 감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이라면 그가 <나쁜 영화>에서 하지 못한 것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정작 부담스러워한 건 장선우 감독 자신이었다. 그가 한 첫말은 <나쁜 영화> 때 고생해서 안 하고 싶다는 거였으니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나쁜 영화>에 대한 비판이 어떤 기준에서 이루어지는 건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되는 것 아닌가. 내 생각에 그건 영화가 아니라 촬영 현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이 영화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을까? 감독에게 그런 이야기들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당신 아니면 할 사람 없다고, 그렇게 설득해서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지금보다는 그 표현 수위가 좀 낮아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감독에게 걱정하지 말고 찍으라고, 정 안되면 국내는 포기하고 해외에서 개봉으로 돈 법시다 라고 말했는데, 장선우 감독 스스로가 국내 개봉은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수위는 그 정도로 잡았다.

사실 어느 정도 논쟁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 정도의 위험은 다른 영화 할 때도 다 감수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98년 4월부터 시나리오 각색하고, 7월쯤 촬영에 들어갔는데 배우들은 처음부터 신인을 쓸 생각이었다. 기성 배우 중에는 한다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이상현 씨를 처음 소개해준 건 영화배우 이혜영 씨였다. 파리에서 만난 친분이 있는데, 그가 꼭 J역을 해보고 싶다고 자청했다고 하면서. 사진만 봤을 때는 안중근 의사 같았다(웃음).

그 사람 꿈이 『아리랑』에서 김산 같은 역할을 맡아보는 거다. 처음에는 난 좀 회의적이었는데, 장선우 감독이 좋다고 했다. 김태연은 처음 여균동 감독으로부터 소개받았다. 문제는 우리보다 먼저 정지영 감독의 <까>에 캐스팅되었다는 것이었다. 김태연은 <거짓말>을 하고 싶어했는데, 먼저 부모님 문제를 상의하고 함께 정지영 감독을 찾아갔다. 그때 말해서 정지영 감독이 한 마디라도 멈칫하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정지영 감독 첫말이 그 쪽에서 주연 맡을 거면 데려가라는 거다(웃음). 그렇게 시작했는데 촬영 현장을 공개하는 건 아무래도 위험했다. 어차피 야한 사진만 쓸 테니까. 그렇게 하나둘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완성하기도 전에 감당해야 할 위험 부담이 너무 컸다.

DJ 정부가 들어서면서 표현의 영역이 넓어졌고, 일본 영화도 개방되었다. 우리 또한 그 영역을 넓히는 방향으로 가자, 그에 알맞는 것을 할 수 있고, 해야 겠다, 그런 때가 됐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후의 반응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하나다. 일부의 벽은 아직도 매우 견고하구나. 이제 성교육 전체를 다시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 사회의 윤리 구조의 이중성과 그 위선성은 정말 놀라운 지경이다.

초등학생이 포르노를 접하고 문 밖만 나가면 매춘이 성행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막아서 될 일이 아니다. 그걸 공론화하고 어떤 건지 가르쳐줘야 한다. 어른들이 뭘 하고 사는지는 비밀이다. 아이들은 거기에 대해 모른 척 해주고 있을 뿐이다. 문화란 사회적 갈등과 정신적인 욕구를 어떤 정치적, 경제적 해결 등과 함께 어떻게 승화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다. <거짓말>은 성인 영화다. 가장 웃긴 건 이 영화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는 음대협의 논리다.

이건 논리가 안 맞는 이야기 아닌가? 그건 거꾸로 우리가 갖고 있는 섹스에 대한 죄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짓말>은 폭력과 사랑에 관한 문제다. 패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군사독재를 거친 이 나라에서 교육이란 매를 들고 준엄하게 꾸짖는 것이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방법을 모른다. 배워본 적이 없으니까. 고등학생인 아이는 교육 제도하에서, 남자는 군사 제도하에서 맞고 살아왔다. 그런 두 낙오자에 대한 이야기가 <거짓말>이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의미를 이런 식으로만 배워왔기 때문에, 맞는 게 행복인 거 같다고 말한다. 그게 우리의 모습 아닌가? 나는 일부의 벽이 이렇게 높을 줄은 미처 예상 못했다. 보수적인 쪽에서는 이런 이야기 자체가 바깥으로 꺼내졌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한다. 그들은 참지를 못한다. 나 역시 이러한 이중적 기준에 놀랐다. 한때는 매일 사무실에서 항의 전화 받느라고 온종일을 꼬박 보냈다. 직원들 전부가 매달려서. 어떤 사람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욕설을 퍼붓는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젊은 세대에겐 이미 한발 늦었고 기성세대에게는 너무 많이 갔다. 다시 한 번 느낀 게 세대 간 괴리가 정말로 크다는 것이다. 실은 훨씬 더 나아간 컨텐츠들이 많이 있다. 또 하나는… 진심으로 네트웍의 위력을 알았다는 것. 요즘의 내 화두가 네트웍인데, 거기에 크게 당했다(웃음). 사실 작년 가을 <거짓말>을 끝내 놓고 그 쪽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계속되는 파장 때문에 진전을 못 시켰다. 아무래도 나는 이 영화 때문에 정보통신부에서 상받아야 할 것 같다(웃음).

용산 전자상가에서는 컴퓨터 살 때 디폴트로 <거짓말> CD를 아예 깔아줬다. 거기에 대해서 경찰 쪽에서는 진전이 없다는 공문만이 왔다. 저작권 보호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나라다. 영화를 만들어서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워낙 방해가 많아서 생각보다 한 절반 정도의 수치기는 하지만. 답답한 건 합법적인 건 그렇게 잘 막으면서 불법은 전혀 못 막는다는 거다. 음대협 또한 불법 유통 CD를 봤으면서 왜 그런 쪽은 안 잡고 우리만 잡으려고 하는지(웃음).

<거짓말>은 약간 불친절한 데가 있다. 난데 없다라는… 하지만 장선우 감독의 영화니까, 그리고 내가 그를 예술가라고 생각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이러저러하게 만들어 달라고는 할 수 없다. 아마 내 식으로 했다면 좀더 친절한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아마 오해도 줄었을 테지만, 어쨌든 나는 장선우 감독이 만든 <거짓말>이라는 영화에 찬성한다. 지금은...

더 이상 문제작은 못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심리적 피해라는 게 정말 크다. 이런 것들이 작가들을 위축시키는구나, 그런 걸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이 놀림감이 될 정도다. 예측했던 부분도 있고, 예측 못했던 부분도 많았다. 이런 저런 많은 공부를 했다. 검찰에도 가보고, 광고한 후 개봉도 못 해보고. 하지만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전체적으로 개방 추세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거짓말>이 선두에 선것 뿐이지, 안 그랬다면 잡혀갔거나 아예 상영도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데 못한 게 많았다. 이제는 그런 것들이 허용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결같이 잡고 있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관객층을 벗어나 해볼 건 많이 해볼 수 있는. 말하자면 <거짓말>은 그런 경향 속에서 대표 선수가 된 것이다.

<글:키노-이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