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으로 이두용 감독과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본 것은 82년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을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다. 영화를 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겁이 나 우회해서 다른 것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철학과를 지원했다. 미학이나 예술철학 같은 걸 공부할 거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서강대는 분석철학 아니면 중세철학 밖에 없었다. 기억나는 건 입학할 때 내가 검정 터틀넥 스웨터에 은목걸이를 하고 나타났던 것이다. 선배들이 보기에도 이상했을 거다.

그때 아마도 '쟤는 전혀 싹수가 없어 보이니까 포기하자'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대가 시대였으니까 사회적인 문제들, 정치적인 이슈들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관심이 있었고 시위에도 참여했지만 조직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철학과로서는 특이하게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그 시절엔 혼자서 프랑스 문화원이나 영화관을 돌아다니며 지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세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것은 이소룡 영화였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썸머 타임 킬러>나 <나자리노> 같은 컬트 영화들이나 <사무라이>와 같은 장-삐에르 멜빌의 영화들에 빠져 있었다.

한국 영화는 거의 본 게 없었다. 이상하게 나는 그 당시 유행하던 이장호 감독이나 하길종 감독의 청춘 영화들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두용과 김기영이 내가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한국 영화 감독일 것이다. <해결사>와 <최후의 증인> 그리고 <화녀 82>가 처음 본 그들의 영화였다. 이두용 감독 영화 중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영화는 많지만 <해결사>나 <최후의 증인>은 흥행이 전혀 안 되었던 작품들이고, 김기영 감독의 <화녀 82>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신문이나 비평집에 실린 글들을 보니까 이두용 감독의 영화는 기존의 한국 영화와는 다른 것 같았고 거리에서 본 <해결사>의 포스터가 주는 느낌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결국 혼자서 손님 없는 변두리 극장을 찾아가 <해결사>를 보게 되었다(그리고 영화는 한 1주일 정도 뒤에 간판을 내리고 말았다).

<해결사>는 액션 영화의 통속적인 내러티브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지만 B 무비 정서가 아주 잘 드러나서 깜짝 놀랐다. 황정리 씨와 신호철 씨가 출연했는데 그들은 결코 인기있는 미남 배우나 이소룡같이 카리스마를 가진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거친 로우키 화면과 잘 어우러져 다큐멘터리같이 드라이하고 리얼한 느낌을 주었다. <해결사>의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해결사가 어떤 사람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한 범죄자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그는 그 범죄자를 화장실로 다짜고짜 끌고가서 한참 때린 다음 좌변기에다 머리를 쳐넣고 물을 내리는데 그 묘사가 피도 눈물도 없을 정도로 냉혹했다. 또 벽돌 공장에서 벌이는 마지막 시퀀스의 패싸움처럼 살벌하고 리얼한 액션 장면에도 커다란 쇼크를 받았다.

그래서 이두용 감독을 좋아하게 되었다. 비디오가 보급되어 있던 시절이 아니라 개봉이 끝난 영화를 찾아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운 좋게도 <피막>과 <최후의 증인>은 그 당시 영화진흥공사에서 있었던 특별 시사회에서 볼 수 있었다. <피막>의 경우는 이미 베니스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이기도 해서 기대를 가지고 봤는데 우리나라 의상이나 가옥 같은 것이 얼마나 아름답게 찍힐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정말로 놀라웠던 것은 <최후의 증인>이었다. 동명의 원작 소설이 작가인 김성종의 유일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다 <최후의 증인>은 그전에 보았던 <해결사>와는 달리 감정이 풍부한 영화였다. 하지만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세계관은 역시 건조하고 비극적이었다. 역사의 아픔을 미스테리의 이야기 속에서 풀어내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고 멋진 탐정이 아니라 실패한 인생을 부여잡은 탐정이 나온다는 점도 좋았다.

그 뒤에 발표한 <물레야 물레야>까지도 괜찮았지만 그 자신의 영화사를 차리면서 발표한 영화들은 실망스러웠다. 아마도 이두용 감독의 영화는 <뽕>으로 실망한 다음부터는 관심 있게 찾아보지 않게 된 것 같다. 이두용 영화들과 같은 쇼크를 받은 또 한편의 영화가 김기영 감독의 <화녀 82>였다. <화녀 82>는 같은 스탭들이 만들어서 그런지, 비슷한 주제를 가진 김기영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완성도가 높았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이 호스티스물이었기 때문에 한국 영화는 울고 짜고 하는 것이 전부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김기영 감독과 이두용 감독은 나에게 각각 섬뜩한 광기와 비정한 폭력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한국 영화 속에 자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김기영 감독과 관련해서는 나중에 대학교 3학년 때 보았던 시나리오 한 편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는 과외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스크린」에 글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내가 김기영 감독과 이두영 감독을 좋아한다고 하니까 당시 「스크린」의 편집장으로 있던 이연호 씨가 김기영 감독으로부터 빌려온 시나리오 하나를 보여주었다. 두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까 이연호 씨도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 시나리오 제목은 <뱀눈의 여자>였는데 봉투에서 시나리오를 꺼내는 순간부터 비명을 지를 뻔했다.

표지가 여자의 측면 얼굴인데 뱀이 그 여자의 목을 감고 올라와서 여자의 뒤통수에서 눈쪽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그림이었다. 김기영 감독이 동아수출공사에서 영화 준비하고 있었는데 시나리오 표지를 보니 특수효과는 일본 스탭들, 촬영은 정일성 촬영감독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나리오 내용은 정말로 엽기적이었다.

고생 끝에 처음으로 베스트셀러를 낸 어떤 소설가가 아내와 미루었던 신혼여행을 겸해서 아내의 고향인 외진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은 순박한 섬 주민들의 환대를 받고 같이 어울려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때 그 섬으로 마침 장어잡이 배가 만선이 되어 돌아온다. 그런데 이것들이 새빨갛게 발광하는 눈을 가진 장어들이었다. 이것을 먹은 사람들은 모두 좀비처럼 변해서 다른 사람들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일순간에 섬 전체가 먹고 먹히는 난장판이 되어버리고 두 부부는 폭풍우가 치는 밤에 겨우 섬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에필로그로 놓여진 것이 아내의 출산이다.

소름돋게도, 완전히 잊혀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여자의 뱃속에서 아기와 네 마리의 뱀장어가 같이 나오는 것이다. 나오자마자 뱀장어들이 아기를 뜯어먹는 동시에 갑자기 벽면에 금이 가고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핏물과 함께 붉은 눈의 뱀장어 떼가 카메라를 덮치면서 끝이 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김기영 특유의 자막이 나온다, '인류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멸종되고 말 것이다'라는 식의(웃음).

히치콕의 <새>와 좀비영화가 합쳐진 것 같은 느낌인데, 그 시나리오는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육식동물> 다음에 들어가려고 했었지만 아마도 제작비 때문에 백지로 돌아간 것 같다. 그 시절에는 특수효과도 안 되고 해서 힘들었을테니까. <뱀눈의 여자>는 김기영 감독의 미완의 프로젝트다. 지금 다시 <뱀눈의 여자>를 영화화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오마쥬한다는 의미로라도.

이두용 감독의 영화 중에서 만들어보고 싶은 영화는 <최후의 증인>이다. 좋아하는 영화와 만들고 싶은 영화는 다른 것 같다. 나는 <해결사>를 좋아하지만 솔직히 이두용 감독이 그 영화에서 보여준 것 같은 그런 낙오자들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하고 그런 권격 액션을 찍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낙오자들의 삶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드러내는 영화를 보는 것이 재미있을 뿐이다. 그러나 <최후의 증인>은 내가 선호하는 미스테리 구조의 역사 이야기여서 기회가 생긴다면 도전해 보고 싶다.

이두용 감독을 실제로 처음 만난 게 그가 감독협회 회장이 된 이후인 97, 8년 즈음인 것 같다. 그때 <최후의 증인>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분단문제를 다룬 것 때문에 완전히 난도질당해서 개봉했다고 한다. 지금도 원형대로 볼 수 없는 게 참 아쉽다. 그런데 지금 <최후의 증인>을 다시 보면 어떨까, 지금도 재미있을까? 궁금하다.

<글:키노-장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