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에서 적어도 그 나라를 대표하는 촬영감독이 탄생하고 좋은 감독이 탄생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노력과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며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기까지의 험난한 과정들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같은 촬영감독들은 3백여 명 되지만 그 중에서도 유영길 촬영감독은 조수로 나와 함께 일을 했었고 좋은 작품을 통해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촬영감독이 되었기에 더욱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정해져 있지만 죽음이라는 순간은 누구도 모르는 것 같다. 나이 때문에 내가 먼저 죽을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유영길 촬영감독은 죽음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끝까지 영화 현장에 있었으니까. 게다가 후배들이 아쉬워하고 동료와 선배들도 아까워하는 그런 죽음이라는 게 많지가 않다. 그래서 가끔 생각이 나는 거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유영길 촬영감독이 영화를 통해서 자기의 존재 가치를 드높혔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그렇게 일찍 죽으려고 그랬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처음 유영길 촬영감독을 만난 것은 40여 년 전이다. 그때 그 친구는 인하대학교를 휴학하고 어떤 집에 가정교사로 있었다. 그 집이 편집기사 출신의 감독이었던 양주남 씨의 집이었는데 그게 유영길 촬영감독이 영화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느날인가 양주남 씨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괜찮은 친구가 있는데 같이 일을 해보겠느냐고 소개를 해주어 그를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조수로 쓰게 되었고 그 후에 나말고 장석준 촬영감독과 김정환 촬영감독의 조수로도 일했었다. 그렇게 긴 도제 기간을 거쳐서 입봉을 했다.

유영길 촬영감독도 대기만성형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늦게 데뷔를 하고 늦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영화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들, 아무리 악인이라도 따뜻한 모습으로 봐주는 그런 쪽의 탐미적인 것을 미학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결국에는 성숙한 영상을 만들어내는 작가로 그를 전환시켰다고 생각한다.

70년대나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영길 촬영감독은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가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와서다. 그는 자신의 활동이 저조했을 때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뉴스 같은 것도 찍었던 것인데 거기서 오히려 많은 것을 혼자서 깨우치고 독창적으로 사회를 보는 눈을 길렀던 것 같다.

쉼 박자가 있다고 하는 것이 인간에게 많은 도움이 될 때가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해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많은 경험을 얻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을 때 사회적으로 몰락했을 때 오히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발견하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나도 그랬던 것 같다. 2, 30대에는 1년에 10작품 이상씩 하곤 했는데 오히려 그때는 시간도 없고 열의도 없었다. 인터벌이 있을 때 독서도 하게 되고 다른 예술 작품들도 보면서 재충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남의 예술을 인정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어야만 내 작품도 타 예술 분야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않겠는가. 그런 것들이 쉬는 기간에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나 유영길 촬영감독은 70년대 중반부터 뉴스 카메라를 들고 광주사태를 비롯하여 사회 전반에 걸친 사건들이나 정치적인 문제들을 많이 접하였으니까. 그때 도망다니는 학생들도 봤을 테고 주민들이 구타당하는 것들도 봤을 것이다. 그런 과정이 갑자기 성장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모순이 자신을 어른으로 만들 때가 있다. 나는 그의 영화들이 갑자기 사상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어른스러워진 것을 느꼈다. 자기가 살아가다 보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이 굉장히 따뜻해진 것이다.

가끔 유영길 촬영감독과 만나면 그가 늘 하던 말이 "감독님 영화는 언제나 다이내믹한 힘이 느껴집니다"라는 거였다. 자기가 볼 때는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의도적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거다. 나는 "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 아니냐"라며 웃어넘겼지만 정확한 지적이었다. 확실히 나는 어떤 영화를 찍더라도 형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일관된 형식이 작품의 격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나와는 달리 유영길 촬영감독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이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리얼리즘이란 건 있는 그대로를 찍는 게 리얼리즘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찍으면 뉴스나 다큐멘터리일 뿐이다. 영화는 픽션이 가지고 있는 이상과 꿈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합해야만 리얼리즘으로서 살아날 수 있는 거다. 영화만이 담을 수 있는 그런 시각이 담겨야 하는 것이다.

유영길 촬영감독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죽기 얼마 전이다. 그때 우연히 전화가 왔다. 나는 대수술을 두 번이나 했는데 내가 처음 수술을 받고 난 다음에 유영길 감독이 같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내가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나면 자기가 다시 그 병원에 입원하고 하는 게 반복되는 것에서 어떤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두 번 수술을 받은 것처럼 자기도 두번째 수술을 받았다고, 나도 건재하니까 자기도 건재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더라. 그게 참 이상하게 찡한 감정을 전했다.

"그래, 모든 것은 마음에서 오는 거다. 네가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면 그것을 극복할 거다" 라는 이야기를 그에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갑자기 그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물론 앞으로도 좋은 후배들이 나오겠지만 적어도 유영길 촬영감독이 죽었을 당시의 연령으로 봐서 나와 유영길 촬영감독, 그리고 젊은 후배를 잇는 그 맥이 끊어졌기 때문에 참 가슴이 아프다. 지금 동료들 중에서 현역으로 카메라를 잡고 있는 사람이 없다. 가끔 내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얼까, 그리고 선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삶에 있어서도 모범이 되어야 하겠지만 자연인 정일성보다도 촬영감독 정일성으로서 작품을 통해서 후배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영상을 남기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좋은 영상을 남기고 싶다고 해서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가 조화롭게 톱니바퀴 같은 것들이 맞아떨어져야 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다짐하는 것은 정말로 좋은 후배들이 이 땅에서 좋은 작품들을 만들 수 있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는 단지 사건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의 토대는 자기가 살아온 그 체험밖에 없다. 남을 이야기하더라도 자신의 경험을 모티프로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 자기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데 요즘에는 그게 부족한 것 같다.

영화감독이나 촬영감독이나 자기 나이에 맞는 영화가 있다. 젊은 감독들이 찍어낼 수 있는 영화가 있고 그 사람들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영화가 있다. 그래서 자기 나이에 걸맞는 다양한 영화들이 있어야 하고 서로 교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독창적인 창작 활동을 통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끊임없이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발견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그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자극이 되고 보탬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촬영을 하는 사람들이 영상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어른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이다.

확실히 유영길 촬영감독은 젊은 사람들과 작업을 잘했다. 유영길 촬영감독은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우리는 인기가 없는 쪽이었다(웃음). 그래서 후배들이 잘 못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가끔씩 유영길 촬영감독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

<글:키노-장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