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 작업을 해오던 여러 대학교 친구들이 영화를 한 번 같이 만들어보자고 모여서 88년도에 장산곶매가 처음 만들어졌다. 그때 모두에게 가장 관심 있던 주제는 광주와 노동 현장이었다. 그래서 89년도 초에 광주에 관한 <오! 꿈의 나라>를 처음 만든 후에 노동 영화로는 <파업전야>를 만들었다. (이은 감독)

<파업전야>는 부평에 있는 한독 금속에서 찍었는데 이 공장이 그때 위장 파업을 해서 노조원들이 철폐 농성 중이었다. 우리가 그 농성장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건 그 노조원들 덕택이다. 우리 같은 '찐따'들보다 훨씬 건강한 분들이었다. 한전에서 그때 전기를 끊었는데, 공장 기계가 돌아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그분들이 전신주 퓨즈를 새로 연결하여 기계를 돌릴 수 있었다. 죽어 있던 기계가 꽝꽝 돌아가니까, 그분들도 너무 신나했고. 영화 속에서 그 장면이 그렇게 생생했던 것은 모두 그들의 힘이다. 러쉬를 다 편집해 놓고 녹음하기 위해서 영화진흥공사 녹음실에 가서 제목을 <꽃다지>로 바꿔 달고 공연 테이프인 척했다. 그런데 거기서 나중에 사실을 알더니 못해주겠다고 난처해하는 거였다. 차마 피해를 주기가 싫어서 그 건너편의 한양 녹음실에서 녹음을 했다. 그렇게 어렵게 프린트를 뽑았다. (이용배 감독)

그 당시가 노태우 공안 정권의 초기였다. 영화 상영 전에 경찰이 막더라도 전국적으로 같이 움직이면 더 보호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전국에 있는 10개 정도의 문화단체들과 상영 전부터 모여서 대응책을 마련했다. 전국적으로 같이 상영하며 또 어느 지역에서 경찰이 막으면 전국적으로 어떻게 대응한다, 그리고 소극장 상영보다는 덜 위험하게 각 대학에서 학생들의 보호하에 직접 상영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1990년 3월경에 기자들과 문화계 선배들을 모시고 신촌에 있는 신선 소극장이라는 공연장에서 일종의 기자 시사회를 했다. 당시의 16밀리 독립 영화치고는 드물게 영사기도 제대로 갖추어 상영해서 반응들이 좋았고 완성도도 높다고 칭찬을 들었다. 전노협 지도자들도 이 영화를 노동절 100주년인가 101주년 기념 영화로 지정할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당시 장선우 감독님도 <우묵배미의 사랑>을 만들었을 때인데 와서 보시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이은 감독)

기자 시사회를 마치고 중앙일보 사회면 쪽에 조그맣게 기사가 났다. "일부 운동권이 파업을 선동하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어서 예의 주시하고 있다." 뭐 그런 기사였다. 혜화동에 있는 한마음 소극장에서 본격적인 일반 시사회를 하는데, 첫번째 시사회 때는 백기완 선생도 오셔서 격려를 많이 해주셔서 그게 참 힘이 되었다. 그런데 두번째 날부터 압수 수색을 한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서 릴을 한 개만 영사기에 끼워놨다. 나는 수배령이 떨어진 대표였으니까 극장 안에는 못 들어가고 그 옆에 있는 2층 카페에 앉아 있었다. 거기서 너댓 시간 정도 앉아서 극장 앞의 줄을 내려다보았다. 솔직히 겁도 많이 났었고, 그 날씨 좋은 날에 대학로를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웃음). 극장 안에 있던 장산곶매들은 그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다들 관객들의 호응을 보면서 진짜 뭔가 필요한 걸 만들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겠지. 두번째 시사회 때 경찰들이 들어와서 압수 수색을 벌였을 때 이은이 나한테 전화해서 "형, 애들이 영사기 가져갔어요" 하고 전해줬다. 아직도 그 긴박한 이은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파업전야> 시나리오를 공수창 씨가 같이 썼는데, 릴을 뺏기고 나서 벽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고 하더라. (이용배 감독)

일반 관객들과 처음 만난 건 연세대 대강당에서였다. 상영 첫날, 정문에서 대강당까지 관객들이 줄을 좍 섰고 그 큰 강당이 꽉찰 정도였다. 분위기가 참 험악했다. 경찰들은 정문 앞에 와서 각목 들고 지키고 서 있고, 또 우리는 강당 앞에서 입장 관객들의 학생증을 일일이 검사해서 학생 아닌 사람은 들여보내지 않았다. 경찰한테 우리 전재산인 영사기와 필름을 안 뺏기려고, 그 주변을 마스크 쓰고 쇠파이프 든 학생들이 빙 둘러서 지키게 했다(웃음). 한 번은 경찰들이 학교 안으로 진입을 해서 난리가 났다. 학생들한테 보호받으면서 영사기를 들고 연세대 뒷산을 넘어서 도망치기도 했다(웃음). (이은 감독)

내가 처음으로 일반 관객들과 대면했을 때가 아마 한양대 노천극장에서였던 것 같은데, 무조건 이 영화를 지지하며 지킨다는 대단한 분위기 때문에 흥분해서 옆 사람들에게 들릴정도로 심장이 고동쳤던 것 같다. 나와서 인사하라고 해서, 그런 일이 처음이었는데 무대 위로 올라가니까 할 말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버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웃음). 그래서 그냥 구호만 두어 개, 예를 들어 분쇄하자 분쇄하자 분쇄하자, 처럼 강하고 과격한 걸 외쳤다. 관객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속이 시원해지길래, 학생 회장이 그래서 이런 걸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웃음). (이용배 감독)

검찰이 우리를 잡아간다는 뉴스와 언제 상영한다고 맞서는 우리의 발표가 번갈아 신문들에 실렸고, 포스터도 만들어서 대학가에 붙이고, 5만 원 정도 하는 한겨레 신문 알림란에 조그만 광고도 냈다. 그런 홍보들을 보고 참 많이들 와주었던 것 같다. 관객들은 자기들 이야기니까, 많이 감동받고 울었다. 관객들과의 이해 일치를 이루어낸 것이다. 아놀드 하우저의 말처럼, 영화는 민주적인 매체라는 것을 실천하지 않았나 싶다.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고 공감하는 영화, 그것이 영화의 본질인 것 같은데 10년 전에 우리 팀이 그걸 해냈던 것 같다. (이은 감독)

영화가 분명히 변혁에 도움을 주고,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광주가 끊임없는 원죄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기존 한국 영화는 소외받은 사람들의 내용을 담아내지 못할 때 우리는 바로 갈 수 있다는 확신들. 그런 것에 충혈되어 있어서 다른 것들을 거의 생각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실험 영화 만들던 친구들의 미학적 시도 같은 걸 우습게 보고 그랬는데 나중에 2~3년 지나서, 우리의 방식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었다고 후회를 많이 했다.
(이용배 감독)

처음엔 영화를 만드는 것이 좋아서 모였는데, <오! 꿈의 나라>나 <파업전야> 때문에 검찰과 싸우면서 오기도 생기고, 그러면서 오히려 장산곶매가 탄탄해졌던 것 같다. 그때 여러 가지 자각이 들었는데, 영화가 노동자 같은 기층 민중들의 이야기로부터 떨어져서는 안 되며 철저하게 함께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과 어차피 영화로 말해야 하니까 완성도를 높여야겠다는 자각, 그리고 공부를 더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실질적으로 내게 미친 영향을 말하자면, 당시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배급과 마케팅을 포함한 프로듀서 일을 맡았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필름 메이커로서의 출발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배급 문제, 시나리오 탈고의 지난한 과정, 작가와 제작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스탭 구성, 현장에서의 역학 등 영화 작업의 근본적인 것을 많이 배웠다. 장산곶매의 의의라면, 한국 영화계의 경직된 풍토 속에서 무차별한 관객이 아닌 다분히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들을 구체적으로 찾아가 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는 대안적인 제작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두번째는 리얼리즘 영화(지금은 그 미학적 논의의 맥이 끊긴게 아쉽다)의 미학을 보여줬다는 점, 마지막으로 당시든 이후든 간에 제도권 영화에 주었을 독립 영화로서의 직간접적인 영향들을 높이 사고 싶다. (이은 감독)

직배 반대 투쟁부터 시작해서 한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었고, 영화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무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용이 형식을 좌우하니까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사회주의 책들도 많이 읽고 토론하고...그렇게 91, 2년까지 다들 일정하게 편향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제작사를 전전했지만, 장산곶매가 가장 오래 몸담았던 조직이었다. 가장 사랑하기도 했고. 89년부터 93년까지, 그때가 가장 활성화된 상태였고 정열적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세상을 보는 기본적인 시선을 거기서 얻었던 것 같다. 그 때 같이 있던 나머지 친구들도 지금 잘하고 있고… 결국 장산곶매가 현재의 나를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용배 감독)

<글:키노-김용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