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년 6개월의 기간이 소요되는 영상작가전문교육원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영상시나리오작가협회 준회원의 자격이 주어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곧장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영화화할 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영상시나리오작가협회의 정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공모전에서 입상하거나 최소한 1편 이상의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해야 한다. 따라서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인 셈이다. 교육기간 중 강사로 나오는 현장 영화인들에게 자신의 아이템을 노출시키거나 공모전에 응시해야 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교육원은 시나리오 작가 양성에 근본적인 목표를 두고 있지, 작가의 작품이 영화화되기 위한 실질적인 작업을 진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영상 시나리오 작가협회는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영화진흥위원회와 함께 시나리오 뱅크제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TV극본, 영화 각본, 방송 구성대본의 세 개 과정에 애니메이션 각본 과정을 추가하고, 창작반을 신설해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창작기금을 지원하는 등 좀더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작가 양성 계획을 갖고 있다. 영상작가전문교육원 이외에 박철수필름 아카데미와 한겨레신문 문화센터에도 시나리오 작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도전하라

혈혈단신 시나리오작가 지망생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은 시나리오 공모전이다. 공모전의 가장 큰 매력은 경제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 그 밖에도 공모전은 시나리오 작가가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에 작가 지망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대부분의 시나리오 공모전은 기성, 신인에 상관없이 시나리오 응모를 받기 때문에 공모전이 있을 때마다 작품을 내 여러 차례 당선되는 사례도 있다. 이미 방송작가를 하고 있거나 혹은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으면서도 시나리오를 공모전에 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현재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나리오 공모전은 대략 7개다.

최근 공모전은 완성된 시나리오 외에 간략한 시놉시스만을 모집하기도 한다.(아이찜 시나리오 공모전이 대표적인 사례) 아이찜 시나리오 공모전은 완성된 시나리오와 시놉시스 단계 작품을 동시에 공모해 5명 내외의 당선자를 선발, 이창동 감독과 1대1 워크숍을 통해 시나리오 작가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창동 감독이 당선작을 시놉시스 상태로 해체한 후 작가와의 토론과정을 거쳐 시놉시를 재구성하면, 작가는 완성된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98년에 시행된 1창 공모전의 당선작가 8명이 시나리오를 집필중이고, 99년말에 있었던 2차 공모 당선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가장 전통있는 공모전으로는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을 들 수 있다. 77년부터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 영진위 공모전에는 극영화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과 시놉시스 공모전이 포함돼 있다. 영진위 공모전 당선작들 가운데에는 이미 영화로 제작돼 개봉됐거나, 기획 혹은 제작중인 영화가 다수 있다.

93년 상반기 대상작 <얼음물고기>(김대우)가 박종원 감독의 <송어>로 영화화돼 제12회 도쿄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상반기 우수작이었던 <엄마와 별과 말미잘>(권재우)은 유현목 감독이 연출해 제15회 영평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96년 하반기 당선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장용민)은 유상욱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고, 97년 당선작 <우순경>(김광식)은 신승수 감독의 <얼굴>로 개봉됐다. 이밖에 <오델로> <우리의 소원은> <치명적 사랑> <좋은 친구들> <그것에 대하여> <마이너리그> <보고싶은 얼굴> <클럽 버터플라이> <싸움닭 철구의 귀향> <안단테 칸타빌레> 등이 제작중이거나 기획중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감독과 <조용한 가족>의 김지운 감독은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공모전에 출품해 직접 연출까지 하게 된 경우. 이미 <프리미어>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좋은 시절>로 당선된 적이 있는 김지운 감독은 <조용한 가족>을 제1회 <씨네21> 시나리오 공모전에 출품해 영화화하기에 이르렀다. <조용한 가족>을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이사는 시나리오 자체의 완성도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이 정도 시나리오를 쓴 작가면 연출을 맡겨도 되겠다 싶어서 작가가 연출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조용한 가족>에 비하면 좀더 우여곡적을 겪은 경우. 이정향 감독은 <미술관 옆 동물원>의 시나리오가 제2회 <씨네21>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낙선됐다는 소식을 확인하고 같은 해 신설된 제1회 청룡영화상 시나리오 공모 부문에 출품해 가작으로 뽑혔다. 이정향 감독은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가장 중요하지만 공모전에 당선되기 위해서는 운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원래부터 연출을 지망했기 때문에 내 시나리오는 문학적인 요소보다 영화적인 면이 많았는데, 다행히 심사위원 가운데 송능한, 김유진 감독이 포함돼 있어 심사위원들의 성향과 맞아 떨어졌고 그래서 내 작품이 뽑혔다고 말했다.

이정향 감독은 <미술관 옆 동물원>을 직접 연출했기 때문에 시나리오료는 따로 받지 않았고 당선금 1000만원 가운데 세금 22퍼센트를 공제한 상금과 연출료를 받았다. <미술관 옆 동물원>을 제작한 씨네2000(대표 이춘연)은 청룡영화상을 주최한 <스포츠 조선>에 800만원의 판권료를 지불하고 <미술관 옆 동물원.의 시나리오를 샀다. 제2회 청룡영화상에서 시나리오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엠바고>(김병재) 역시 현재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해 처음 생긴 막동이시나리오는 배우 한석규가 지원하는 공모전. 1회 당선작으로 <제노사이드>(안재훈)를 낸 데 이어 현재 제2회 시나리오 공모를 하고 있다. 태창흥업은 영화사 가운데 드물게 1년에 한 번씩 공모전을 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공모전을 통해 확보한 시나리오 <신혼여행>(윤재균)이 영화로 완성돼 지난 2월 개봉됐고, <공포택시>(심산)도 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영화사를 방문하라

공모전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에게 금전적으로 보상받고 지명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등용문인 만큼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5명 내외의 당선자를 모집하는 아이찜 시나리오의 경우 1회 때 약 900편, 2회 때 700여편의 시나리오가 접수됐다. 이런 경쟁률을 고려한다면 오히려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를 직접 방문하는 것이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제작사를 직접 찾아갈 경우 시놉시스나 초고만 들고 회사와 배팅하지 말고, 완성된 시나리오를 들고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정향 감독의 조언. 시놉시스에 자신이 있다면 시놉시스를 들고 영화사를 찾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4월 1일 개봉을 앞둔 <인터뷰>는 변혁 감독이 제시한 시놉시스가 좋아서 영화사가 제작을 결정한 경우이다. 참신하고 완결된 구조의 시놉시스와 읽어 보면 한 편의 영화가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시나리오 그리고 한 편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되기 위한 긴 여정을 기다릴 줄 아는 느긋함을 가져야 진정한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다.

이상의 사례들을 토대로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질을 간추려 볼 수 있다.

우선, 참신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시놉시스를 구성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완성된 시나리오가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최초의 아이템과 시놉시스이다. 최근 들어 시나리오 공모전이 시놉시스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원하는 제작자들의 바람과도 맞아 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아이찜 시나리오 공모전을 담당하고 있는 유니코리아의 김유평 씨는 지난 해 판타지 액션물이 흥행에 성공하자 700여편의 응모작 가운데 상당수가 판타지 액션물 유형을 띠었다. 공모전이 원하는 것은 시류에 영합한 시나리오가 아니라 독특한 아이템과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시나리오 작가는 비주얼적인 측면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 시나리오 작가란 글을 쓰는 사람이기 전에 3차원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화의 밑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즉, 등장인물 개개인의 대사나 심리묘사에 치중하기 앞서 등장인물의 동작이나 그들이 있는 공간의 분위기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제작자나 영화감독은 기본적으로 좋은 시나리오를 영화화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들은 빼어난 문장보다 시나리오를 일고 미장센을 떠올릴 수 있는 시나리오를 선호하고, 그런 시나리오에 후한 점수를 준다. 이것은 영화화할 경우 수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마지막으로, 시나리오 작가는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 한 편의 시나리오가 완성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영화화하기 위해 공모전에 출품하거나 제작사와 협의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시나리오 수정작업에 참여해야 하고, 이렇게 공을 들인 영화가 제작이 중단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자신의 시나리오가 한 편의 영화로 탄생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지혜가 필요하다.

-스크린 최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