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나리오 작가가 될수도 있겠구나 - 김대우

시나리오 작가가 된 경로는?

파리에서 연출 공부를 하던 중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에 작품을 냈는데 가작으로 당선됐다. '내가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왔을때, 공모전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유진 감독님이 연락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나리오 작가가 된 것 같다.

한국영화계에서 시나리오 작가라는 위치는 어떤가?

기획자와 감독 중간에 끼어 있다. 기획자도 버거워 하고 현장에서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것이 시나리오 작가의 비극이다.

시스템 개선 방법이 있을까?

기본적인 문제가 더 시급하다. 계약을 하러 가 보면, '어떻게 선배들은 이런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계약서가 아니라 거의 모욕서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갑(고용자)이 만족할때까지 을(피고용자)은 작품을 쓴다'는 식의 조항은 삭제하고 계약한다. 충무로의 계약 문화가 불만족스럽기는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좀더 무자비하다. 일본의 계약서를 보았더니, 한국의 갑과 을이 바뀌어 있었다. 미국의 경우, 너무 차갑고 비정한 맛은 있지만 지불의 투명성은 확실히 보장된다. 한국은 계약 때는 친분을 내세우고 필요할 때는 계약을 내세우다가 지불할 때는 다시 친분을 내세운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내가 작품의 모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스컴의 도움도 필요하다. 주로 감독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만, 시나리오 작가라는 독립된 영역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초기에 주로 썼던 트렌드 영화가 나오게 된 배경은?

충무로 시스템의 주문에 의한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의 특성은 트렌드에 있는 것 같다. 나름대로 여러 장르에 자신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나의 길을 찾는 데 꽤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금에 와서야 정착했다.

<정사>와 <송어>에 대해서.

시나리오는 <송어>(원제<얼음물고기>)를 먼저 썼다. 인간관계의 핵심은 '질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작품이다. <정사>는 시나리오를 쓸 무렵의 감성이 많이 작용했다. 오정완 기획자는 '나이든 여자와 젊은 남자의 사랑'이라는 컨셉을 제시했는데, 나는 가정과 사랑 사이의 갈등이 아닌 여자 내부의 갈등으로 그리고 싶었다. 당시 나는 '노쇠와 소멸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고, 늙어가는 여성에게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결과에 만족하는가?

<정사>는 제작 전단계에서 감독-작가-기획자의 합의도가 높았고, 나온 영화에 90퍼센트 이상 만족한다. <송어>는 제작 환경이 풍요롭지 않았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영화에서 감독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조금만 더 여유있는 환경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반칙왕> 원안자로서 영화를 어떻게 봤는가?

김지운 감독은 대중과의 통로가 확고하며, 그 통로가 항구적이고 매우 넓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영화는 단순한 코미디 이상이다. 장진 감독에게도 느끼는 거지만, 그는 대중과 가장 가깝게 살고 있는 감독인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근 임권택 감독님이 일간지에 연재하는 글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30년 전에 만든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들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당시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들을 했다. 모두 원로 작가가 되신 그분들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시나리오 작가의 한명으로서, 임 감독님 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1962년 출생. 한국 외국어대학교 이탈리어과 졸업. 프랑스 ISEC 졸업.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가작입선 <슬픔에 찬 성모는 서 있었다>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93,김호선) <해적>(94,박승배)
<결혼이야기2>(94,김강노) <깡패수업>(96,김상진) <용병 이반>(97,이현석)
<정사>(98,이재용) <송어>(99,박종원) <반칙왕>(2000,김지운)

<스크린 김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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