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곤을 아시나요? 요즘 잘나가는데 - 김해곤

요즘 충무로에서 뜨는 작가 겸 배우 김해곤

영화인들은 잘 알지만, 관객들은 거의 모르는 충무로 명물 중에 김해곤이라는 작자가 있다. 올해로 데뷔 14년째를 맞는 김해곤은 한국영화에서는 전례가 없는 시나리오 작가 겸 배우이다. 잡기 힘들다, 시나리오계의 황태자다 등등 이 사람에 대해 하도 재미있는 소문이 많아 일단 붙잡아 만났다. 그런데, 그의 얘기를 들어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좀 필요하다.

경고! 기사를 읽기 전에

첫째, 이 기사는 일부 영화인들에게 협심증, 심장 발작 및 일시적인 화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둘째, 이 기사는 일부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에게 우울증과 의욕 저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셋째, 이 기사는 일부 독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습니다. 19세 이하의 청소년과 육두문자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성인은 다음 기사로 넘어가길 권합니다.

김해곤과의 인터뷰는 세상에서 가장 하기 쉬운 인터뷰였다. 녹음기의 녹음 버튼과 정지 버튼을 누르는 2시간 동안 기자는 간간이 추임새만 넣으면 됐다. 이야기꾼 김해곤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육두문자를 써가며 일찍이 누려본 적이 없는 구비문학(口碑文學)의 짜릿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김해곤과의 인터뷰 기사는 세상에서 가장 쓰기 어려운 기사였다. 어깨가 빠져라, 손가락이 끊어져라 녹취를 푸는 일도 고됐지만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활자로 옮기는 일은 무척이나 무모해 보였다. 또한 FILM2.0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하는 범생이 잡지인지라 욕설을 빼고 나면 의미 전달에 차질이 생기는 그의 말을 다 실을 수도, 뺄 수도 없는 곤란한 형편이었다.

인터뷰 말미, 김해곤에게 욕을 많이 쓰는 이유를 물어봤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려고 의도적으로 쓰던 욕이 습관이 됐다”고 했다. 1남 3녀, 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곱게 자랐던 김해곤, 막내가 너무 여성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냐는 집안의 우려를 씻으려다 너무 호방한 사나이가 된 그, 이제는 욕을 안 하면 주위에서 ‘뭔 일 있냐’며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그거 아나? 기분이 너무 좋아도 욕이 튀어나온다는 것. 그래서 김해곤은 “정말 싸움이 나려고 할 때는 절대 욕을 안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 기사의 거친 표현에 노여워 마시고, 독자 여러분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 영화인의 진담에 귀 기울여 주시길 바란다.

■<블루>, 잠수로 시작해서 잠수로 끝난 영화

“이걸 대가리에 쓰면 사람 죽겠다. 죽겠어.” 해양 액션영화 <블루>에 나오는 16kg짜리 헬멧을 들고 사진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김해곤이 투덜댄다. <블루>의 특수 소품을 제작한 INLIVE의 김종석 실장이 알아듣기 힘든 용어를 말하며 수중에서는 괜찮다고 하자 김해곤이 “아, 맞아. 시나리오 쓸 때 그거 다 외웠었는데…” 하며 잠시 웃는다.

김해곤이 <블루>의 시나리오를 맡게 된 것은 <파이란>의 시나리오를 막 끝낸 1999년 12월의 일이었다. 당시 김해곤은 이 책(충무로에서는 시나리오를 책이라고 한다)이 돌아다닌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던 터였는데 어느 날 최성수 프로듀서가 <파이란>의 제작사인 튜브픽쳐스로 찾아온다. “최PD는 술자리에서 한번 봤을 뿐인데 이 새끼가 튜브로 쳐들어와 가지고는 막무가내로 책을 안기더라고. 그래서 책을 보니까 이건 각색을 해서는 고쳐질 책이 아니고 아예 다시 써야겠더라고. 못 하겠다고 하는데도 최PD가 추진력이 있어 가지고 최현묵 사장을 만나게 됐어. 최사장이 이 책이 투자사를 40군데 돌아다녔는데 다 뺀찌맞고 회사 부도나게 생겼으니 부탁 좀 하자는 거야. 특수 부대 영화라 어려운 용어도 많고 특수 촬영도 많은데 그거를 모르는 상황에서 시나리오를 쓸 수는 없잖아. 한 달 반 정도는 자료만 보고 공부를 했지.”

그를 단박에 ‘스타 작가’로 만든 <파이란> 때문인지는 몰라도 김해곤의 장기가 팍팍한 삶을 담은 ‘입담 걸쭉한 영화’라고 생각했던 터라, 그가 할리우드영화에서나 보던 해양 액션영화의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은 조금 의외였다. 시나리오 좀 쓴다는 사람도 웬만큼 써서는 박수받기 힘든 영화, 보기는 뻔해도 쓰기는 어렵다는 게 할리우드 장르 영화가 아닌가. 당연히 그의 지인 중에도 극구 말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자신이 있었어. 내가 군대 생활 하면서 겪은 얘기들, ‘지휘관 저 씹새끼 좆 같더라’ 이런 경험을 가지고 거기에 영화적인 장치를 하는 것은 걱정을 안 했어. 내가 추구하는 게 일상의 리얼리티지 리얼리즘 영화 그 자체는 아니니까. 근데 이것 때문에 많이 싸웠어. 공동 제작자인 강제규 감독은 이태현(김영호)이 해군에 입대하는 이유가 아버지가 군인이었던지 아니면 어부였다든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대. 그 말 듣고 내가 ‘형, 집안에 영화 하는 사람 있어서 영화감독 된 거유?’ 그랬어. 연출자인 이정국 감독도 마찬가지야. 영화에서 김준(신현준)과 강수진(신은경)이 대판 싸우고 오해를 해. 이감독이 이태현이 중간에서 쪽지를 주는 것으로 하재. 내가 그랬어? ‘그거 <편지> 아니요?’(이정국 감독의 전작이 <편지>다) 군바리들이 ‘니미 씨발’ 이러고 덤비는 게 낫지, 무슨 쪽지야. 고삐리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취향은 달라. 근데 내 생각은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따라간다고 걔네들 공식에 팍팍 밑줄 그으면서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봐.”

결국 김해곤은 <블루>를 7고까지 쓴 상태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조중훈 작가가 각색 작업을 이어받았다. 그리하여 <블루>의 엔딩 크레딧은 한국영화 사상 초유의 ‘나라비’ 선 크레딧을 갖게 됐다. ‘기획 최현묵, 최성수/ 시나리오 감수 강제규/ 원안 윤학렬, 최정식, 박용집, 김우범, 임춘택/ 각본 김해곤/ 각색 조중훈…’ “최사장, 최피디, 이감독, 강감독까지 다들 이 영화 때문에 정말 마음고생 많이 했어.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해서도 갈 수 있는 것을 왜 내 고집만 피웠나 싶어. <블루>는 정말 애정이 많이 가는 작품이야. 내가 쓴 시나리오로 투자를 받아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그렇지만 영화 하는 사람들 마음을 정말 많이 배웠어.”

김해곤은 <블루>에서 기백이 넘치는 김진만 대령으로 출연도 한다. 그동안 연기했던 시시껄렁한 밑바닥 인생에 비해 각이 살아있는 하얀 제복만으로도 신분의 수직 상승이다. 언뜻 중이 제 손으로 머리 깎은 것 같지만 이거, 남이 깎아준 머리다. “최사장이 <파이란>과 <라이방>을 보고 연기도 해보라고 해서 한 4, 5신 넣었어. 근데 조중훈이 이 새끼가 내 꺼를 무지하게 늘려 놓은 거야. 내가 많이 나와 봐. 사람들한테 욕 먹지. 녹음할 때 보니까 다행히 누가 되지는 않은 것 같아. 연기는 글 쓰는 거와는 달라서 참 재미있었어.”

■불혹의 나이, 이제야 흔들린다

김해곤은 올해로 마흔이 됐다. 연극에서 출발한 딴따라 경력이 22년째, 충무로 경력도 14년째지만 ‘경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이 놀았다. 학교에 놀러 가던 고등학교 시절, 한 선생님의 추천으로 극단 춘추에 입단한 김해곤은 일찍 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다른 연극쟁이들과는 달리 신기하게도 연극에는 안 미치고 라면 끓여먹고 노닥거리는 연극인들의 놀이 문화에만 미친다. 그의 재능은 민중극단 출신의 대표적인 연극배우 윤주상 등의 눈에 띄어 좋은 기회를 얻기도 하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자유분방하게 자란 그에게 빨리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어떤 상황에 닥치나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그의 낙천성은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무기가 됐다. 남들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는 군 생활, 김해곤은 너무 잘 놀고 나왔다. 그 자신이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고 말하는 군 생활을 마감해야 했을 때, 그의 제대에 전우들은 목 놓아 울었다고 한다. 제대 후 <장군의 아들> 오디션에 같이 합격한 김승우, 이일재, 신현준, 박상민 등과 4년 동안 태흥영화사 전속 배우로 있으면서 어제 술 마신 것 복습하자며 마시고, 다음날 또 마셨다. 그러는 사이 다른 동기들은 서서히 떠가는데 스스로 “얼굴이 좆 같아서”라고 말하는 김해곤은 인생의 목적도, 성공을 향한 열의도 없이 그냥 충무로 바닥에서 노는 재미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단역 배우로 전전했다.

출연료도 얼마 안 되는 어려운 시절이었으나 그에게는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챙겨주는 세 누님들이 있었고, 집에 들를 때마다 친자식처럼 돈 찔러주는 승우 부모님이 있었고, 현대 문명의 이기인 신용 카드가 있었다. 그러다 카드 빚을 갚느라 공사판에 뛰어들었는데 이 시기 또한 다시는 오지 못할 ‘천국의 나날들’이라고 회고한다. 김해곤은 일산 호수 공원 공사판에서 현장 주임을 맡았는데 뭐 건설업에 대해 식견이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구라를 잘 풀었기 때문에, 좋은 말로 인부들 다루는 통솔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하루해가 어찌나 빨리 저무는지, 아저씨들과 놀다 보면 그 아저씨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아쉬움의 시간이 돌아왔고 그러는 사이 공사는 마무리 되어갔다. 아저씨들에게는 인생을 한 수 배웠고, 또 어떻게 하면 그럴싸하게 설을 푸는지 테크닉도 키웠다.

그러다가 인생에 대한 성숙한 시선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초절정을 이루게 된 게 바로 1998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보고 싶은 얼굴’이다. “여자가 남자한테 처절하게 배신을 당하는 얘기지. 최민식 선배, 문성근 선배, 이창동 감독이 지금도 그 책을 물어봐. 문선배는 ‘너는 어떤 수가 있어도 그 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민식이형은 ‘세상에 이런 좆 같은 경우가 있나?’ 하도 진저리가 쳐져서 밥 한 끼 못 먹었대. 남자의 바람기, 이런 것을 두드려 팼지. 가슴이 아프면서도 칙칙하게 안 풀고 아기자기하게 가서 사람들이 그 책을 그렇게 좋아해.”

술 먹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젊은 날을 보냈던 김해곤이 영화계 실력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쓴 것이 꼭 파란만장한 경험 덕만은 아니었다. 그는 열일곱 살 때부터 지금까지 일기를 써오고 있으며, 자기 전에는 책 한 줄이라도 읽던지 아니면 얼굴에 덮고라도 자야 하는 지독한 문자 중독자이기도 하다. “일기는 술 먹고 못 쓰겠으면 다음날이라도 써. 책은 잡생각 잊으려고 잡히는 대로 읽어. 재밌거든.”

‘불후의 명작’ <파이란>을 기점으로 이제 좀 일을 하게 된 김해곤, 절대 낙천주의자 김해곤에게 최근 전에 없었던 근심이 생겼다. “데뷔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내가 영화를 진지하게 생각한 지는 한 4년밖에 안 돼. 10년 동안 영화가 뭔지도 몰랐는데 요즘엔 영화가 산업이기만 한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해. 호랑이를 그리려다가 고양이를 그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심정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고양이를 그리겠다고 작정을 해놓고 호랑이를 그린 척하는 놈들이 판에 깔렸어. 나처럼 맨날 여자 따먹는 얘기만 하던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면 ‘저 씨발놈이 약 먹었구나’ 그러는데 솔직히 요즘엔 이런 저런 생각 때문에 혼돈 상태야.”

■시나리오를 쓰는 배우, 연기하는 작가

요즘 김해곤에게는 손 좀 봐달라고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부지기수로 많다. 그러나 그는 거의 다 거절한다. 그의 작가료는 편당 6,7천만 원 선으로 현업 작가 중에서 최고 수준인 데다가 선금도 다른 작가보다 10% 많은 계약금의 60%를 받는다. 각색의 경우 <이것은 법이다>에선 여덟 신 쓰는 조건으로 1천만 원을 받았다. 김해곤에게 줄을 대려는 책은 많은데 간택은 안 되고, 개런티도 세니 뒷말이 많다. 거침없는 말투 때문에 오해도 많이 산다. “내가 액수가 높다는 것은 맞아. 근데 난 옷 벗어주고 매 맞는 값이라고 생각해. 난 성격상 대충은 못해. 지금까지 내가 떠들어 놓은 말이 있는데 어떻게 주워 담으려고 돈 보고 이거 저거 하겠어. 잘난 척한다고 욕해도 드러우면 지들이 안 찾아야지.”

사실 개봉을 통해 검증받은 시나리오는 <파이란> 딱 한 편뿐이다. 그런데도 김해곤을 찾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이유는 뭘까? <파이란>의 안상훈 프로듀서는 “<파이란>은 강재의 영화다. 그런데 이 강재 캐릭터와 실감나는 대사를 만든 사람이 김해곤이다. 그는 밑바닥 인생들의 사실적인 이야기를 쓰는 데는 국내 최고다. 직설화법으로 만들어내는 일상의 리얼리티, 이것이 김해곤 최고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 “김해곤은 연출과 연기 마인드 골고루 갖춰져 있다. PD가 요구에 아주 근접한 작업물을 가지고 온다. 실제 바로 쓸 수 있는 시나리오를 가져온다는 얘기다. <파이란> 때도 방송 작가처럼 현장에서 즉석으로 시나리오를 고쳤다”고 말한다. 시라소니 영화 <조선의 주먹>에 김해곤을 끌어들인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도 “김해곤은 남자 이야기를 잘 쓰는 작가다. 진짜 삶에서 길어 올린 대사를 쓰기 때문에 대사에 가짜 같은 냄새가 안 난다”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어진 김해곤의 다부지고 생생한 리얼리티 구현력을 높이 평가한다. 김해곤이 가지고 있는 이런 강점들은 최근 충무로에서 남성성이 강조된 드라마가 많이 기획되면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제 그에게 연락을 해오는 사람은 제작자뿐만은 아니다. 그의 소문을 듣고 작가 지망생들이 심심치 않게 메일을 보내온다. 요는 ‘어떻게 하면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나요?’다. 1급 시나리오 작가 김해곤이 돌려보내는 회신은 한때 그의 성격과는 달리 상당히 비관적이다. “작가 하지 마쇼. 정히 영화가 하고 싶으면 차라리 더 노력해서 감독 하쇼. 무늬가 좋아서 영화하고 싶으면 기획실에 들어가 병아리 감별사처럼 시나리오 감별사나 하쇼.” 지난 몇 년간 ‘영화의 80%는 시나리오’라는 달콤한 거짓말에 속아 실컷 몸 대주고 두들겨 맞는 일에 진력이 났다며 김해곤은 평생 시나리오만 쓸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어째 이런 일이. 하지만 이런 생각은 현재 한국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99%의 작가가 공통적으로 겪는 상실감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라는 것은 피부보다 민감해. 여기서 떼서 저기로 옮기면 표가 나는 거지. 근데 권한만 있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찢어진 입이라고 감 놔라, 배 놔라 해. 영화는 카메라가 들어가 주면 열 장 쓴 지문이 소용이 없어. 그러니까 영화가 감독 영화지. 연기를 모르고 연출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방 끈, 내공 자랑하면서 쥐고 흔들면 영화 산으로 가고 결국 관객들 비웃음만 사.”

불러주는 사람 없어도 기죽지 않고 충무로를 떠나지 않았던 김해곤이 나이 마흔에 폭삭 늙어버린 걸까, 아니면 철이 든 걸까? 2년 전 만났을 때만 해도 좌절, 체념 등의 단어는 그의 사전엔 사어(死語)에 불과하다고 했는데, 투자 환경의 위축으로 시나리오 개발비부터 삭감된 제작 환경이 겨울 날씨보다 춥게만 느껴진다. 2월 개봉하는 <블루>가 과연 블록버스터 포비아에 걸린 한국 영화계와 ‘돌아온 탕아’ 김해곤에게 따뜻한 봄바람을 실어다 줄까? “<조선의 주먹> 같이 하는 김태균 감독은 할렐루야가 다 됐어. 우리가 ‘어떻게 사냐’가 중요하지 시나리오 몇 줄 고치는 게 뭐가 중요하냬. 형은 그렇게 살아. 난 ‘어떻게 되나 보려고 살게’ 했지.” ‘어떻게 되나 보려고 산다’는 말은 그의 인생 철학이자 ‘보고 싶은 얼굴’에 나오는 대사이다.

김해곤 프로필

1964년 서울 생. 고등학교 3학년 때 기성 극단인 극단 춘추에 입단, 20세가 되기 전에 모 연극제에서 희곡상과 연출상을 수상한다. 전문대학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을 친구들과 노는 데 탕진하고 입대한다. 1988년 민중극단으로 자리를 옮겨 <사랑의 전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1989년 체육 특기생 겸 배우 지망생들이 구름처럼 몰린 <장군의 아들> 오디션에 장기 하나 없이 운 좋게 합격,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게임의 법칙> <본 투 킬> 등에 단연으로 출연한다. 1998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에서 ‘보고 싶은 얼굴’로 우수상을 수상한 뒤 각본과 연기를 겸한 <파이란>으로 일약 충무로의 ‘물건’으로 떠오른다. <라이방>에서는 생애 최초의 주연을 맡아 무르익은 연기력을 선보였으며 <블루>에서는 시나리오도 쓰고 비중 있는 조연으로도 출연한다. 최근 각색 작품은 <이것이 법이다>와 <청풍명월>, 각본은 김태균 감독의 시라소니 영화 <조선의 주먹>을 거의 끝냈다.

FILM 2.0 글 : 한승희 기자 / 사진 : 이준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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