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는 이야기 한 토막, 들어보실래요? - 이원형, 이원재

시나리오 작가는 충무로에서도 고단한 직종이다. 이원형-이원재 형제는 그 가시밭길을 함께가는 공동 창작자다. 남다른 감각으로 코미디에서 재능을 발휘한 이들 형제는 데뷔 3년 만에 인기 작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험난한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우애심 깊은 형제의 스토리를 공개한다.

이원형, 이원재 형제가 사는 집은 한국 시나리오 작가의 궁핍한 처지에 어울리지 않는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그들은 개인 집필실로 꾸민 각자의 방에 너른 거실까지 갖춘 25평 빌라에서 동거중이다. 하지만 놀람의 순간도 잠시. 헝그리 정신으로 글을 쓰기에는 너무 윤택해보이는 이 집이 <위대한 유산>를 제작하는 CJ엔터테인먼트에서 마련해준 것이며, 그들이 올해 4월까지 보증금 3백에, 월세 15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살았고 속칭 ‘카드깡’으로 카드 빚을 돌려 막는 ‘신용 불량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시나리오 작가로 이 바닥에서 급부상중인 두 사람이라고 해도 충무로에서 작가 생활 3년 만에 이런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린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조금 유명세를 탄 요즘에도 생활은 쪼들림의 연속”이다. 작가 생활 초기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생활인으로서는 낙제를 면하기 힘든 처지다. 하지만 돈벌이와 능력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충무로에서 두 사람은 참신한 감각을 갖춘 코미디 작가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중이다. 서른한 살 형과 스물아홉 살 동생에게 찾아온 기회는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형님 따라 충무로 간다

형 이원형은 타고난 재담꾼이다. 그의 입담은 거의 ‘만담가’ 수준이다. 형으로서의 체면 같은 건 개의치 않은 듯 과묵한 동생을 앞에 두고 쉴새없이 늘어놓는 수다가 끝이 없다.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 놓을라치면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연기까지 곁들인다. “저는 좀 떠버리예요. 호들갑스러운 사춘기 기집애처럼 무슨 일이 있으면 쪼르르 달려와서 식구들한테 다 말하곤 했죠.” 어렸을 때부터 남들 앞에서 ‘이야기 꾸며내기’를 즐겼다는 이원형은 입으로 하던 이야기를 지금은 글로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이원형이 작가가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다. <주유소 습격 사건>의 연출부 시절, 모든 제작진이 라스트 신이 안 풀려 고민하고 있을 때 숨통을 틔워준 것이 이원형의 아이디어였다. <주유소 습격 사건>의 시나리오를 쓴 박정우 작가가 이원형에게 작가 일을 권한 것도 그때였다. “박정우 작가님이 웬만하면 남들 칭찬도 안 하고 성질 고약한 사람인데(웃음) 저에게는 따뜻하게 대해 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처음 발을 내디딘 작품이 박정우 작가가 쓴 <선물>(첫 작품인지라 크레딧에는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다)이었다.

동생 이원재가 “팔자에 없는 작가의 길에 들어선 건 순전히 형 때문”이다. 대학을 중퇴하고 남들처럼 충무로 연출부 생활을 시작할 때쯤, 이원형은 “연출부는 노가다니까 하지 말고 작가 한번 해보라”고 동생을 꼬셨다. 2년 반 동안 영화 현장의 연출부로 구른 이원형은 연출부 막내의 쓴맛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형은 동생에게 자신이 걸었던 전철을 되밟게 하고 싶지 않았다. “1년 꼬박 찍고 2백만 원 받았거든요. 차마 그 생활을 하라고는 못하겠더라고요. 작가도 현장 경험이니까, 그걸 권했죠.”

시나리오 작가는 이원재의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그때 이미 <선물>과 <다찌마와 LEE> 등의 각색 작업에 참여했던 이원형은 충무로에서 작가로서 생존할 길을 모색중이었고 오랫동안 눈여겨봐두었던 동생의 재능을 썩히기가 아까웠다. “남자 형제는 특히 형에게 동생이 영향을 많이 받게 되잖아요. 저도 그런 셈이죠.” 사춘기 때 영상 매체에 눈을 뜨게 해준 것도 형 이원형였다. “중학교 때 대학생들이 가는 뮤직 영상 카페에 몰래 갔었어요. 거기서 뮤직 비디오를 틀어줬는데 완전히 별천지인 거예요. 그래서 순진한 원재를 꼬셔서 같이 갔죠. 그게 동생에게는 충격이었나봐요.” 그곳에서 난생처음 보았다는' 건즈 앤 로우지즈'의 '돈 크라이'를 잊지 못한다는 이원재는 그때부터 감독의 꿈을 꾸었다.

공부보다 영화를 좋아했던 두 사람은 나란히 연극영화과에 갔다. 하지만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이원재는 학업을 중도 하차해야 했다. “부모님이 집에 있던 금을 팔아서 등록금을 대시더라고요. 같은 과 친구들은 영화를 만드는데 전 등록금 대기도 빠듯했죠. 형편이 그러니까 내가 이러면서까지 학교를 다녀야 하나,라는 회의가 생겼어요. 그래서 관뒀죠.” 그때부터 이원재는 ‘돈이 들지 않지만 돈을 벌 수 없는’ 연출부 일을 포기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작가 일을 시작했다. 동생의 재능에 대한 형의 판단은 적중했다. 당시 이들 형제가 합작한 시나리오 중에는 지금까지 영화화되고 있지 않지만(언젠가 자신들이 감독이 되면 영화로 만들 거라고 한다), 영화사에 팔린 작품들이 더러 있었다. 형제가 함께 각본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재밌는 영화>에서부터다.

“형에게 가장 잘 팔리는 장르가 뭐냐고 물어봤더니 코미디래요. 그래서 코미디를 썼는데 이제 코미디만 들어와요(웃음).” 이때부터 두 사람은 습작으로 쓰는 작품까지 서로 검사받고 상의하는 공동 창작자가 됐다. <선생 김봉두>는 짧은 작가 생활의 전환점이었다. 순전히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 영화의 각본으로 그들은 올해 대종상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는 감격을 맛봤다. 상의 힘이었을까, 그때부터 작품 의뢰가 잦아졌다. 올해 두 사람은 '백수 코미디’ <위대한 유산>을 내놓았고, 이 작품을 계기로 CJ엔터테인먼트와 1년 전속 계약을 맺었다. 3년 만에 이룬 놀라운 변화였다.

■달라도 다르지 않은 형제

동생 이원재는 진지한 청년이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모아온 영화 잡지들이 방 한켠을 차곡차곡 채우고 있을 정도로 수집벽이 있으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기록을 해두는 메모광이기도 하다. 남들이 부여한 ‘코미디 작가’라는 정체성에 썩 만족하고 있지는 않지만 코미디를 쓰는 동안에는 '헐렁하게 웃겨서는 안 된다'는 신조로 머리털 빠지게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코미디 쓰는 그렇고 그런 작가’라는 소리를 듣기는 싫기 때문이다. 이원재의 손이 간 각본에 대해 이원형은 “익숙한 상황과 대사에 비틀기를 가해 새로운 느낌을 주는 이야기”라고 평한다. 미리 김을 뺄 수 있으므로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그들의 신작 <위대한 유산>에도 그런 반짝반짝 하는 순간들이 더러 있다.

이렇듯 형제는 너무 다르다. 이원형은 고기 한 근을 공짜로 얻기 위해 정육점에서 나눠준 포도송이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가며 흡족해 하는 선이 고운(?) 성격의 소유자지만 동생은 웬만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배포를 지녔다. 여성적이고 꼼꼼한 이원형은 요리와 빨래가 취미며 끼니마다 꼬박꼬박 요리를 해서 ‘차려 먹는 밥’을 즐기지만 이원재는 설거지나 하면서 형이 없으면 십중팔구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외모는 물론이요, 성격, 행동까지 닮은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상반된 성격은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도 적용된다. 이원재는 전체 드라마의 구성과 짜임새를 만드는 재주가 출중하고 이원형은 대사나 인물의 소소한 행동,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다듬는 데 능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전 신문, 책 이런 걸 거의 안 봐요. 아는 것 없이 순전히 상상력에만 의존해서 글을 쓰죠. 원재는 저하고 반대예요. 얘는 독서왕이 됐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어서 하나의 소재로 가지를 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요리로 치면 저는 기본 재료인 마늘, 파, 양파만 가지고 요리를 만드는 거고 동생은 마카로니 면, 화이트 소스처럼 재료가 다양하죠.”

서로 다른 탤런트를 물려받은 형제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역할 분담을 했다. 그런고로 일상생활에서는 더러 다툼이 있지만 시나리오 작업에서는 거의 견해가 일치한다. “시나리오를 가지고 감독하고 싸우면 형하고 저는 거의 비슷한 논리로 덤벼요. 작품에 대한 생각은 같으니까 한목소리로 싸우는 거죠.”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충무로 시나리오 작가가 겪을 수밖에 없는 통과 의례를 형제들도 경험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박한 대우와 작가가 창작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풍토를 뼈저리게 느낀 그들이다. 그럴 때마다 경험이 일천하고 낯가림이 심한 이원재에게 형은 믿을 수 있는 방패막이다. “제가 하소연할 사람은 형밖에 없으니까 불만이 있으면 형에게 쏟아내요.” 그래서 지금까지 영화사를 상대로 복잡한 계약서를 쓰는 건 언제나 이원형의 몫이다. 활동 초기에는 계약 당사자인 이원형의 이름으로 개런티를 받았지만 형제 작가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면서부터 공동 작업에 걸맞는 두 사람 몫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소시민의 흥건한 웃음

지금까지 이들 형제의 작품은 창작 시나리오보다 각색이 많았다. 넷 중 셋이 각색이었으니 70%가 넘는 셈이다. 각색을 선호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원재는 “각색 단계까지 갔다는 것은 영화가 엎어질 확률이 그만큼 적다는 거죠”라고 ‘안정론’을 편다. 형 이원형은 “각색은 원안 작가가 하다가 안 되니까 새로운 작가를 물색해서 맡기는 거 아닙니까. 난관에 봉착한 이야기를 만져서 숨통을 틔웠을 때 희열이 더 크거든요. 이왕 붙는 싸움, 센 놈하고 떠보는 게 재미있잖아요”라며 ‘승부론’을 내세운다.

원안이 있는 이야기를 각색하지만 이들은 드라마의 골격, 캐릭터, 대사까지 총체적으로 손을 보는 스타일이다. 시나리오라는 것이 하나를 손보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전체를 송두리째 바꾸는 경우가 많다. 의뢰한 영화사에서 각본 타이틀에 이름을 올리는 이유 역시 "각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손이 많이 간 꼴"이기 때문이다. 그런 작업 스타일 때문에 영화사와 충돌을 빚기도 한다. "각색 작가가 많은 걸 고쳐버리니까 그 전에 그걸 썼던 사람들은 기분이 나쁜 거예요. 곱게 보이지 않는 거죠. 글 쓰는 작가로서 그 심정, 충분히 이해가 돼요.” <위대한 유산> 역시 그런 경우였다. 올 초 각색 작업을 끝내고 호텔에서 나오면서 이원형은 “원재야, 이거 우리가 한 것 중 제일 죽이지 않냐?”라며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의뢰한 영화사(이 영화의 최초 제작사는 CJ엔터테인먼트가 아니었다)의 반응은 싸늘했다. 영화사에서는 원안 시나리오를 너무 많이 바꿨다며 영화 자체를 엎자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원형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않을 뻔" 했다. 제 자식처럼 아끼는 작품이 휴지 조각이 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형제는 담당 프로듀서를 설득, 시나리오를 돌렸다. 시나리오를 읽고 러브콜을 보낸 곳은 투자, 배급사에서 제작으로까지 영역 확장을 모색하던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였다. CJ의 제작 관계자는 <위대한 유산>의 시나리오를 본 후 자체 제작 1호 작품으로 낙점했다.

<위대한 유산>은 제작 전부터 충무로에 ‘물건’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던 시나리오다. 그것은 이 시나리오가 백수나 다름없는 그들 자신의 일상에 대한 솔직 담백한 고백이었기 때문이다. 충무로에 막 발을 디뎠을 당시, 아침마다 이력서 들고 나가기 바빴던 그들은 하루벌이 인생의 애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연기에 보면 메소드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영화 속 인물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돼버리는 거죠. 작가 역시 주인공이 백수니까 백수가 돼서 살아보는 거죠.” 이번만은 허구를 꾸며내지 않고 뼈저린 과거를 교훈(?) 삼아 백수의 삶을 제대로 그릴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안 해본 일이 없죠. 노가다부터 인분 치우는 일, 때밀이까지. 그렇게 오래 사니까 나중에는 그런 삶이 우울하지도 않아요. 지금 우리가 ‘작가’라는 거창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경험을 통해 얻은 감수성 때문인 것 같아요.” <위대한 유산>에는 그들의 과거처럼 하릴없는 인생들에 대한 애정과 소박한 꿈이 담겨 있다. 이원형-이원재 형제의 손이 간 시나리오는 죄다 그런 식이다. <선물> <선생 김봉두> <위대한 유산>까지, 그들은 “소시민적 정서를 바탕에 깔고 흥건한 웃음을 전하는 코미디”를 일관성 있게 써왔다. 앞으로도 두 사람이 재벌 2세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를 꾸며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재벌이 주인공이라면, 그 재벌이 망해서 나중에 소시민이 되는 이야기겠죠."(웃음)

■미래로 열린 각자의 길

이원형-이원재 형제의 코미디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웃기되 오버하지 말자’ ‘뜬구름 잡지 말고 현실적으로 웃기자’ ‘남들하고 비슷한 글 쓰지 말자’ 등등. 원칙을 지키는 글을 쓰는 동안 남들에게 인정받은 형제의 장기는 ‘살아 숨쉬는 대사’다. 대사 감각의 일인자라는 류승완 감독이 “이작가님, '대사빨'은 충무로 최곱니다”라고 인정했을 정도다. 이원형의 ‘스승’인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박정우는 “끝까지 읽게 되는 시나리오"라고 그들의 작품을 평가하기도 했다. 다분히 전략적으로 코미디를 쓰는 이원재와 달리 "코미디가 체질에 맞다"고 말하는 이원형은 남다른 웃음 철학을 가지고 있다. “웃음에 있어서 미추(美醜)를 구분하는 경계선은 굉장히 얇다고 생각합니다. ‘웃기다’ 와 ‘재미없다’는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거든요. 그 경계를 미묘하게 오가는 게 진짜 코미디의 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소시민적 코미디를 했다고 해서 그들이 평생 거기에만 안주할 작정을 한 해이한 청년들은 아니다.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의 바람처럼 형제 역시 궁극적으로는 감독을 꿈꾼다. “작가가 독자적인 전문성을 인정받으면 좋겠지만 한국영화 풍토에서 아직 요원하잖아요. 아직까지 영화는 감독에게 속한 예술이죠.” 전업 작가가 아니라 ‘감독’이 돼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비뚤어진 한국영화의 현실을 거스를 만한 힘이 그들에게는 없다. 비교적 안정세에 접어든 작가의 이력에 흠집이 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형제는 이미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은 이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원재는 “주류 상업 영화 방식이 아닌 독립 제작 시스템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당돌한 의지를 내보인다. 이원형은 CJ와 계약한 작품이 끝나는 내년 초 감독 데뷔를 할 예정이다. 그에게는 꿈에 그리던 감독 데뷔다. 물론 이원형의 데뷔작은 물론 동생 이원재가 손을 봐준 시나리오다.

앞길이 창창한 동생을 놔두고 혼자 ‘감독님’ 감투를 쓰는 것이 미안했는지 이원형은 “감독이 된 후에도 틈틈이 원재하고 작업하면서 작가 생활을 겸할 생각이에요”라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이원재는 형의 그 말이 자신을 위로하려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형 감독님 되면 나 볼 시간 있겠어. 여배우하고 얘기할 시간도 모자랄 텐데.” 농담 섞인 동생의 말 속에는 든든한 방패막이 형과 떨어져야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 있다. “아냐. 진짜야.” 형은 강하게 도리질을 친다. 머지않은 미래에 형제는 더이상 공동 각본가로 활동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를 따라 계절이 바뀌듯 그들 역시 유연하게 변할 것이다. 모나지 않고 반듯한 그들의 모습이 그런 믿음을 갖게 해준다.

FILM 2.0 글 : 장병원 기자 / 사진 : 김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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