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시나리오를 타고 - 인정옥

68년생. 이화여대 사회학과 졸. (나는 소망한다.) 연출부. (맨?) 스크립터. 영화 (여고괴담) 시나리오 집필. TV 드라마 (환상여행) (테마게임) (해바라기) 집필

입문기 여균동 감독은 숙제 잘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를테면 연출부에도 시퀀스 하나를 써오라는 식이다. 여균동 감독 연출부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훈련이 됐고, 그때 어떤 이들은 미리 가능성을 읽어줬다. 참신한 작가를 찾던 사람들이 의뢰해 와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전부 세편을 썼는데, 공교롭게도 쓰고 있는 동안에 영화를 기획한 회사가 전부 망했다. 그래서 방송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여고괴담)은 오기민 프로듀서가 기획서를 보여주고 한번 써보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

시나리오 작가란 대개 감독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인식한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 위해 기획사에 가기보다는 감독이 되기 위해 시나리오를 가지고 간다. 시나리오 창작 공모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지만, 전문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쪽 문을 많이 두드리는 걸로 알고 있다. 아이템을 영화화하는 것은 자신의 아이디어뿐 아니라 기획실 아이디어를 갖고도 한다. 기획실에서 적극적으로 작가를 찾고 있고, 작가와 감독을 묶는 경우가 요즘 많이 나타났다.

모든 시나리오 작업이 나 같진 않을 텐데, 내 경우는 기획사에서 준 제목 따라서 내용은 맘대로 썼다. 사장됐던 시나리오가 파이낸싱되고 감독이 물색되면서 마지막 각색은 감독이 맡았다. 보통은 감독과 개인적인 교감있는 작가들이 감독에 맞춰 시나리오를 쓰면 기획실에서 파이낸싱을 한다. 아니면 기획실에서 특정 작가에게 의뢰하고 감독이 정해지면 다시 수정하는 식이다. 시나리오를 작위적으로 시작하면 클라이맥스가 약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시작하고 리듬을 어떻게 탈 것인지 염두에 둬야 한다. 앞부분은 놓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뒀다 한꺼번에 몰아치는 것이다. 쓰다보면 처음 생각과 달리 가기도 하는데, 어떻게 무슨 얘기로 시작할지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해둬야 한다. 시류나 유행에 편승하는 건 좋지 않다.

빛과 그림자 성공을 꿈꾸지는 마라. 시나리오 작가가 성공한다는 것은 언론에서 보는 그런 성공과 다르다. 왜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가, 시나리오 작업의 매력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라. 우리나라 영화는 전문화돼 있지 못하다.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다. 지금 방송사일을 하고 있으니 비교를 해보자면, TV연속극보다 영화가 제작비가 많이 듦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방송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돈을 받고 일을 한다. 그러다보니 한편은 떠야 된다는 생각, 도박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 자체를 갖추지 못한다. 스탭이나 작가나 의욕이 저하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실 요원한 일일 수도 있다.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길 시나리오 작가협회 워크숍이 있고, 영상원에는 시나리오 전공까지 있다. 아직까진 시나리오 수업으로 작가가 되는 일은 드물고, 연출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감독되기 위한 과정에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단은 영화 많이 보고, 책을 많이 보는 것으로 훈련이 될 거다. 영화를 관객 입장에서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이 어떤 부분에 동조하고 공감하는지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나라 문화는 아직 문화가 획일화돼 있고, 이끌어내는 교육이 안 되기 때문에 교육기관에서 교육받는다고 해도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다. 구성을 배운다거나, 내러티브를 배운다 해도 차단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를 많이 보는 일이다. 기본만 되어 있다면 리듬을 타고 어느 정도는 쓸 수 있다. 시나리오 구해서 읽어보고, 시나리오 작법은 모르는 것만 참조하면 된다.

*충무로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들

시나리오는 다른 분야에 비해 여성인력이 많이 진출해 있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여성과 남성 모두를 객관적으로 그리는 데는 남성문화를 체득한 여성이 더 유리하다는 게 현장에서 활동하는 여성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다. 시나리오 공모전에 응모하고 당선되는 작가 지망생 중에도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 또한 눈여겨볼 대목. <씨네21>이 지난해 실시한 시나리오 공모에 응모한 이들도 여성이 60%를 차지하는 등 여성들이 점점 더 많이 지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은 10명 내외다. <접속>과 <연풍연가>를 집필한 조명주씨는 사랑하는 남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잡아내는 멜로드라마에 강한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손톱> <올가미> 등 여성간의 심리전과 그에 따른 파국을 그린 스릴러에 특장을 발휘하고 있는 여해영씨도 충무로에서 주목받는 여성 시나리오 작가. <마누라 죽이기> <홀리데이 인 서울>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을 쓴 오시욱씨는 코미디에 능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삼성과 시네마서비스가 공동 주관한 시나리오 공모에서 당선된 <자귀모>도 여성 신예 홍주리씨의 작품이다. <마요네즈>의 전혜성씨, <닥터봉>의 육정원씨도 재기발랄한 입담을 자랑한 여성 작가들.

씨네21에서 발췌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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