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산에 간다 작가 심산의 진짜 심산(心算) - 심산

<태양은 없다> 이후 후속작이 없는 시나리오 작가 심산이 3월 14일 에베레스트로 떠났다. 원정에 앞서 심산은 시나리오 대신 유서를 썼다.

■ 도대체 심산이 뭔가?

뭐가?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 왜 시나리오를 안 쓰냔 말이다. 대한민국 대표 시나리오 작가가 대표작 <태양은 없다>(1998) 이후 후속작이 없다. 이게 말이 되나.

꾸준히 썼는데 영화가 안 됐다.

■ <심산의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 서문에서 당신은 '시나리오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작 가능성'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왜 당신이 쓴 시나리오는 제작이 안 되는 건가?

어찌 됐건 시나리오가 후졌으니까 그렇겠지.

■ 왜 후진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의 시나리오 워크숍에 수강생이 수백 명씩 몰리고, 그가 쓴 작법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걸까?

어쩌면 나는 강사로서 재능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엔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7년 동안 4백 명씩 수강생을 배출하면서 책임감도 커졌다. 출판사에서는 3편까지 내자고 하는데 일단 2편은 쓰기로 마음을 굳혔다. ‘한국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좀 더 충실한 내용을 담고 싶다.

■ 문화센터 영화 강좌가 한물 갔고, 영화 서적도 재판 들어가는 게 거의 없는데 대단한 성공이다. 덕분에 많이 유명해졌고.

알고 보면 내 유명세는 신문, 잡지에 기고하고 책 내면서 생긴 거다. 상대적으로 다른 작가들이 사회 활동을 안 하기 때문이지 시나리오 때문에 유명해졌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면에선 내가 과대 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몇 년 후면 <태양은 없다>가 개봉한 지 10년이 된다. 차기작이 안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는 건가?

그렇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자존심은 있으니까 적어도 두 편 이상은 개봉하고 은퇴하고는 싶다. 그게 5년 내에 이뤄졌으면 좋겠다. 올해 일이 잘 되면 두세 편이 크랭크인할 것 같은데, 사실 지난해에도 그랬다. 어느 날 운이 좋으면 1년에 다섯 편도 개봉할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또 운이 없으면 이렇게 2, 3년이 가겠지. 그러다 아무도 청탁 안 하면 충무로에서 잘리는 거고…. 마음 비운 지 오래다. 왜 자꾸 엎어지냐고 묻는다면 나는 진짜 할 말이 없다.

■ 그동안 엎어진 시나리오가 얼마나 되나?

완전히 엎어진 것도 있고, 유보된 것도 있다. 현재 펀딩이나 캐스팅 중인 영화만 스무 편이다.

■ 타율이 낮아도 너무 낮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시나리오가 너무 형편없어서 출연하거나 투자하기가 어렵다기보다는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야 프로 작가니까 아이템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돈 받고 열심히 쓰는데 막상 영화는 제작사나 시기 등의 문제로 자꾸 미뤄진다. 특히 나한테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예산이나 규모가 큰 영화가 많아서 자꾸 불발되는 경우가 많다. 주로 대작 드라마, 액션, 스릴러, 누아르를 많이 쓰는데 그런 장르는 기획 자체가 성공하는 확률이 적으니까 자꾸 엎어지는 것 같다.

■ 작품은 많이 들어오나?

작가가 워낙 없으니까 별의별 게 다 들어온다. 얼마 전까지도 공수창, 김대우, 박정우 빼면 각인된 작가가 별로 없었지 않나. 이 사람들도 이제 다 감독하니까 청탁할 사람이 없는 거지. 들어오는 것 다 계약하면 1년에 열 편도 넘는다. 내가 안 쓰는 멜로, 코미디 빼고도 그렇게 많다.

■ 들어오는 작품 말고 독자적으로 써볼 생각은 없나?

그럴 시간이 한번도 없었다. 1년에 두 편 반 시나리오를 쓰면 개인 작업 시간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휘둘리지 않고 독자적으로 써서 팔든지, 안 팔리면 시나리오집으로라도 내든지 해야 되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돈 주는 시나리오만 쓰고, 돈 주는 시나리오는 영화가 안 되고…. 그런 악순환에 지쳤다.

■ 시간은 만드는 거라더라.

여기서는 못 만든다. 1년에 두 편씩 쓴다고 치고 10번 고쳐 쓰면 벌써 스무 편이다. 거기다 연재하는 글까지 합하면 밥 먹고 글만 쓴다고 보면 된다. 2003년에는 하도 써대서 단행본 6권 분량의 원고가 모였다. 하루 약속이 열 개씩 있는 날도 부지기수고. 충무로와 반 년만 떨어져서 살아도 창조적인 인간이 될 것 같다. 사실 이번 등정도 쉬러 가는 거다.

■ 유서 쓰고 쉬러 가는 사람은 없다.

죽으러 간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다. 문제는 항상 예기치 않은 데서 생기니까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은 인식하고 있다. 나와 같이 가는 사람들 사연이 참 기가 막히다. 7년 동안 사귀던 여자와 결혼하기로 했다가 여자가 말리니까 파혼하고 간다. 회사 다니던 사람들은 장기 휴가 안 내주니까 사표 쓰고 가고. 남 보기엔 미친 짓이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다.

■ 영화인들이 보기엔 당신도 미쳤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얘기해봐야 소용도 없고….

■ 시나리오 작가란 이야기로 설득하는 사람 아닌가? 어서 나를 설득해 달라.

말로는 도저히 불가능한데…. 이를 테면 시나리오를 쓰면서 너무 힘들다가도 신이 잘 풀린다거나 하면 굉장히 행복하다. 그런데 산에 가면 그런 행복감을 훨씬 더 많이 느낀다. ‘2005 한국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 이름) 휴먼원정대’라고 이름 붙은 이번 원정은 세계 등반 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 후 하산 과정에서 숨진 세 명의 시신을 찾아오는 것인데 엄홍길 대장을 비롯해 18명이 떠난다. 그 어떤 원정도 8,750m에 있는 시신을 끌어내리려고 한 적이 없다. 그중 한 사람은 내 친구이기도 하고. 이런 원정에 참여하게 된 걸 영예롭게 생각한다. 산에 간다는 건 돈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굉장히 순수한 행복감이 있다. 나는 인간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안 하면 미칠 것 같다.

■ 목숨을 걸 정도로 미칠 것 같은가?

그렇다. 원초적인 행복감인데 보통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평생을 사는 거지. 이번 원정이 80일인데 다녀 오면 몸에 있는 독도 많이 빠지고 정신적으로도 맑아질 것 같다.

■ 죽은 친구 시신을 가져오는 일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좋은 일을 했다는 기쁨이다. 지난 주에 유족을 만나고 왔다. 내가 눈물이 없는 편인데 많이 울었다. 에베레스트 등산로에 버려져 있는, 그대로 놔두면 저 상태로 몇백 년을 냉동 인간으로 버려져 있을 시신을 끌어내리는 일인데 부디 성공해서 가족들에게 유해를 전해줬으면 좋겠다.

■ 산이 좋아서 예명을 심산(深山)이라 지었나?

1984년 학생운동 하다 수배 중이었는데 본명을 못 쓰니까 예명이 필요했다. 처음엔 산악인들에게 건방지다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이후로는 심산이라는 이름으로 산 타고, 글 쓰고 해서 본명은 밝히고 싶지 않다.

■ 수배 중일 때 산으로 많이 숨었나?

지리산에 많이 갔지. 내가 81학번인데 그때는 자기 좋자고 산에 간다는 건 상상을 못했다. 도피라고 생각했다. 산에 가는 애들은 머리가 비었거나 이상한 애들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연세대를 다녔는데 그 당시 연대 산악부에서 대학 산악부 최초로 알프스에 원정을 갔다. 그때는 정신 나간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이 넘어서부터 내가 산에 빠지기 시작했다.

■ 어렸을 때는 산에 다니지 않았나?

할아버지가 풍수지리를 하신 분이라 산에 많이 다니셨고, 아버지도 일제 시대 금강산도 많이 가시고 산을 좋아하셨다. 아버지 따라 백운대를 갔을 때가 너댓 살 무렵인가? 산에 올라가면 어른들이 기특하다고 사탕도 주고 칭찬도 많이 해줬다. 어린 마음에 굉장히 우쭐했던 것 같다. 그런 맛에 다니다가 형들 보고는 절대 산에 안 가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4형제 중 막내인데 둘째, 셋째 쌍둥이형이 암벽 등반하다 만날 떨어져서 입원해 있는 것 보니까 저렇게는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산악인 가족이네.

아내와 연애할 때도 산에서 했고, 딸도 산에 많이 데리고 다녔다. 지금 열두 살인데 기러기 아빠만 아니면 올해부터 암벽 등반 가르치려고 했다.

■ 산에 다시 다닌 시점과 영화 시작한 시점이 거의 일치한다.

1993년인가 코오롱등산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산에 다녔다. 일주일에 3-4일씩 산에 갔다. 그때는 막 시나리오를 쓸 때여서 문제가 안 됐는데 지금은 시나리오 작가가 왜 산에 가냐는 말이 많다.

■ 90년대 초반, 왜 당신 인생에서 중요한 두 가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을까?

글쎄. 서른 살 즈음이 되면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구 소련이 붕괴(1991년)된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20대를 지탱했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다고 할까. 하여간 인생에 혼란이 왔다. 그전에는 공장을 다녔는데 나와 너무 안 맞는 거 같아서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나도 내 멋대로 살래, 그런 생각을 한 거 같다.

■ 산에 가면서는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산에 가는 사람들은 굉장히 자유롭다. 어떻게 보면 현실에 관심이 없다. 정치, 경제는 신경 끄고 사는데 전지구의 일기 예보는 챙겨 듣는다. 말하자면 다른 유형의 인간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 신선했다. 사람은 냉정하게 자신이 뭘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가를 알아야 한다. 가능하면 그 시간을 늘리는 게 이익이고. 나 같은 경우는 산에서 찾았다. 사실 산에 가는 사람들은 산에 안 가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생각한다.

■ 종교인들이 딱 그렇다.

부정하지 않겠다. 산이라는 게 명백히 종교적인 데가 있다.

■ 전도는 안 하나?

안 한다.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패가망신까지는 아니지만 가정 생활이 파탄 나는 경우는 많다. 물어 보면 몇 번 말리다가 얘기는 해주는데 나서서 다니라고는 않는다.

■ 젊은 날 한때 사회주의 사상과 혁명에 경도됐다가 어이없이 종교인이 된 사람들이 많다. 당신도 운동을 했을 때는 그런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20대 기준으로 보자면 난 많이 타락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다시 20대를 살라고 하면 그렇게 안 살 거다. 돌이켜보건대 굉장히 편협하고 유아기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내가 봤던 세상은 너무 좁은 세상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하나의 관점으로 재단될 수 있는 게 아니다.

■ 달새는 달만 생각하고 술꾼은 술만 생각한다는데 그럼 심산은 산만 생각하나?

산만 생각하지는 않지만 산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지금이 3월 초니까 조금 있으면 올해 첫 바위 등반이 시작된다. 눈 녹은 바위에 착 들러붙는 느낌은 환상적이다. 바위에 미치면 애인 살결보다 바윗결이 좋다고 하는데 전혀 과장이 아니다. 완전히 합일된 느낌이다.

■ 당신이 쓴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에 실린 산 사진을 보니까 누드 보다 훨씬 더 에로틱하더라.

직접 가서 보면 배우 얼굴하고는 게임이 안 된다. 막상 산에 빠지면 섹스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너무 잘 맞는 여자가 있으면 섹스하는 게 그렇게 좋은데 산은 그보다 훨씬 더 좋다. 여자는 언젠가 싸우고 미워하게 되지만 산은 그럴 일이 없다.

■ 하지만 산에게는 완전히 버림받을 수 있다. 이대로 나랑 죽을래, 유혹하지 않나?

할 수 없지, 뭐.

■ 지난해 멋모르고 바위를 탔다가 죽을 뻔 한 적이 있다. 굉장히 짧은 순간이었는데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싶더라. 살았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 느낌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나도 많이 떨어져봐서 아는데 추락이라는 게 묘한 오르가슴을 준다. 지금도 그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크라이머스 하이’라고 어느 순간 뻑 가는 게 온다.

■ 죽음을 가까이하고 산다는 게 어떤 느낌인가?

최근 몇 년 동안 주변에서 매년 두세 명씩 죽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 빼고. 익숙하다고 할까? 죽음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사는 데 덜 쪼잔해지는 것 같다. 미운 놈 있어도 잊어버리고 말고. 그런 면에서 산은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다. 산은 삶과 죽음에 대해 존재론적인 깨달음을 준다. 축구와는 다른 것이다.

■ 축구하는 사람들은 축구도 그렇다고 한다.

다른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축구하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나. 세상의 모든 종류의 스포츠에 대한 책보다도 산에 대한 책이 훨씬 많다. 산에 가는 사람들은 책도 많이 읽고, 많은 깨달음을 얻어서 책도 많이 남긴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안 알려져 있지만 ‘산악 문학’이라는 장르가 따로 있다. 이번에 원정 가서 쓸 책이 그런 건데, 돌아와서 6월쯤 ‘심산스쿨’에서 낼 것이다.

■ ‘심산스쿨’은 등반 학교인가?

여러 가지 일을 한다. 우선 시나리오를 써서 판다. 나 개인뿐 아니라 팀 작업을 하게 된다. 둘째는 한겨레문화센터의 시나리오 워크숍을 접고 심산스쿨에서 단계별로 네 가지 강좌를 진행할 예정이다. 세 번째가 ‘산악 문학’을 가르치고 쓰는 것이다. 이번 원정을 포함해 산에 대한 글을 남길 것이다. <마운틴 오딧세이>도 앞으로 7권에서 10권까지 낼 것이다. 네 번째는 콘텐츠 스토리텔링이다. 이게 뭔가 하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을 대상으로 교과 과정에 맞춰 시나리오 쓰듯 교과서를 쓰는 것이다. 위기철의 <반갑다, 논리야> 스타일로 수학 이야기를 마치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처럼 쓰는 거다. 수학자들과 작업한 지 한 3개월 정도 됐다. 앞으로 과학, 논술 등으로 시리즈가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할 일이 많다.

■ 그럼 시나리오는 언제 쓰나? 다른 작가들은 감독까지 하겠다고 아우성인데 영화 욕심이 그렇게 없나?

전혀 없다. 내가 일할 때 굉장히 완벽주의자인데 현장에서 사람 죽일 거 같다. 그래서 감독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출은 매력적이지만 사람을 정말 악마로 만드는 일이다.

■ 그럼 다른 작가들은 다들 악마가 되겠다고 하는 건가?

다른 작가들은 작가로서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까 하고 싶은 거다. 나는 작가는 작가고 감독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김성수만큼 다이내믹한 화면을 만들 것 같지도 않고, 허진호처럼 유장한 화면을 찍을 거 같지도 않다. 말하자면 걔네들보다 잘할 것 같지 않은데 가서 뭐하러 2등을 하나.

■ 산에서도 1등을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영화는 완벽하게 자본주의 게임인데 산은 다르다. 나보다 암벽 등반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산에서는 별로 그런 거 안 느낀다. 미국 요세미트에 63빌딩 여섯 개 높이로 세워져 있는 암벽이 있다. 3박 4일 먹고, 싸고, 자면서 올라가는데 위에 올라가던 사람이 버린 용변 봉투 맞고 아래 사람이 떨어져 죽는 경우가 있다. 남의 똥 맞고 죽는 거지. 그런 곳인데도 올라가면서 행복하다. 여럿이 가도 혼자 가는 것 같다. 경쟁, 그런 거 없다. 절대와 나 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 하하하. 인간 목숨이란 게 참....

나한테 인간에 대해 분명한 태도가 있는데 별로 안 좋은 거라 말하기 좀 그렇다. 난 인간이 지구에서 빨리 멸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대를 같이 살고 있는 동식물들에게 인간은 가장 악랄한 존재다. 우리가 제3간빙기를 살고 있는데 조만간 빙하기가 올 거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짓이 제3간빙기의 낙서에 불과하다. 그런 해충이 뭔가 써서 남긴다는 게 웃기는 거다.

■ 해충이긴 하지만 쓰레기처럼 살고 싶지는 않을 텐데.

그래서 8천만 원에 계약하고 5천만 원 받고 일하다가 중간에 엎어지는 일이 지겨운 거다. 시나리오가 참 독특한 장르고, 영화화된다는 보장이 있고 좋은 영화가 나오면 정말 멋진데 결국 영화가 안 되면 돈 버는 수단 밖에 안 된다. 오직 돈만 보고 살기엔 너무 억울하다는 거지. 돈이 안 돼도 산악 문학을 하는 게 작가로서 보람 있지 않겠나.

■ 거시적으로 보면 둘 다 낙서인 걸 뭘.

낙서긴 하지만 산악 문학은 소수의 사람이나마 교감을 할 수 있다.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는 외국에서도 끊임없이 팬레터가 온다. 그러니까 시나리오에 인생을 바치겠다, 그런 생각이 없는 거지.

■ 몸 건강히 다녀와서 멋진 산악 문학을 보여 달라.

나도 이번 원정을 써낼 생각에 설렌다. 난 일찍 죽으면 곤란하다. 남극도 가고, 북극도 가고, 안데스 종주도 해보고 싶으니까. 그리고 그걸 쓰고 싶으니까.

프로필 1961년생 |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 저서 <식민지 밤노래> <하이힐을 신은 남자> <심산의 마운틴 오딧세이>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 등 ㅣ 영화 <맨발에서 벤츠까지> <비트> <태양은 없다>

<글 : 필름2.0 한승희 기사 / 사진 : 김춘호 기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