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착한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 이영아



제 12회 막동이 시나리오 영화제 가작 'A군을 찾아라'의 이영아

"10번째 만에 응답이 왔네요." '이중유괴 동화' 로 수상한 직후 이영아씨는 그렇게 말했다. 2001년부터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을 줄기차게 두드렸던 그는 만나자마자 "그 소감은 민망하니 제발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아직도 공모전을 기웃거리냐"는 핀잔을 들을까봐 걱정이어서다. 하지만 쓰기로 했다. 9전10기가 아니라 10전11기, 11전12기를 꿈꾸는 시나리오작가 지망생들을 위해서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광고회사, 음반회사 등에서 기획 일을 했던 그는 1999년 한국영상작가원에서 처음으로 시나리오 쓰는 법을 배웠다.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거짓말>을 본 직후였다. 2001년에는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30년 넘게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은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영아씨는 사실 초보 작가라고 말하긴 뭣하다. 개봉하진 못했지만 이영재 감독의 <여름이 준 선물>을 비롯해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여러 편 했다. "그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러브레터를 보냈는데도 상대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거였다. 이걸 써서 뭣하지, 하는 자조를 견뎌내는 것도 힘들었다. 이제야 좋아하는 누군가로부터 윙크를 받은 셈이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기도 하다. 겨우 윙크받았는데 어느 세월에 손잡고, 사귀고, 사랑하지?"

지난 10년 동안 한번도 빼놓지 않고 응모했나.

2001년부터 냈는데, 한두번은 빠지거나 놓쳤을 거다. 는 지난해 가을에 쓴 작품인데, 사실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버리려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막동이한테 미안한데. 막동이한테 누가 되면 안된다. 지금 말한 것도 빼달라. (웃음)

극중 삼동과 대오가 참가하는 물고기잡기 대회를 보면서 <천국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써놓고 보니 그렇더라. 첫 구상은 지역 신문에 난 미담에서 시작했다. 충북 진천에서 일어난 아름다운 소동이다. 가난한 A군이 수학여행을 가지 않고 갑자기 사라졌는데 알고보니 아픈 아버지의 병원에 여동생과 함께 숨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 제목을 고스란히 따서 시나리오 제목에 썼다. 드라마를 만들다 보니 대오라는 인물도 투입하고, 유괴사건도 집어넣었다. 내가 원래 착한 사람들이 왜 악행을 저지르는지에 관심이 많다.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만 해도 기괴하고, 엽기적이고, 피도 낭자하고, 어두운 소재에 끌렸는데 나이 먹으니까 비뚤어진 착한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게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삼동이는 경제적, 대오는 심적, 순심이는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다.

내 주인공들은 늘 결핍 상태다. 단적으로 지금까지 쓴 시나리오 중 부자는 딱 한명 나온다. 게다가 직업은 킬러다. 결핍에 천착을 하다보니 나중엔 다른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 몇년 전에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땄으니까. 부족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유사가족 이야기도 많다. 휴먼드라마를 주로 쓰다 보니 다른 장르의 영화들도 다른 식으로 본다. 내게 <마더>는 스릴러라기보다 휴먼드라마다. 잘난 사람들 이야기는 좀처럼 안 쓸 것 같다. 아니, 못 쓸 것 같다.

크게 보면 물고기잡기대회, 유괴 아닌 유괴, 진짜 유괴 등 세 가지 사건이 중심이다.

사실 수정을 좀 해야 한다. 누가 보여달라고 해도 안 보여줬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모니터를 할 걸 그랬나 후회도 된다. 지난해에 쓰고 나서 수정을 한번밖에 못한 게 아쉽다. 부족한 것을 못 채우고 결국엔 버리는 버릇도 고쳐볼 생각이다.

어떤 부분을 고치고 싶나.

삼동이와 대오가 우정을 쌓고, 오해가 생겨 찢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 드라마 구조와 감정의 굴곡들을 좀더 매끄럽게 다듬고 싶다. 이야기가 조금 산만한 것 같기도 하다. 물고기잡기대회와 유괴사건의 연결 또한 비약이라는 느낌이 있고. 붙여놓긴 했는데 그닥 자연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대오와 삼동의 사랑을 제대로 그렸나 하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영화화된다면 삼동이 역을 누가 맡을지가 가장 궁금하다. 삼동이의 성별을 바꾸어 진지희 같은 아역배우에게 맡기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아, 빵꾸똥꾸! 쓸 때는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진 않았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까.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어떤 소재인가.

휴먼드라마인데, 구상 단계라 말하기 좀 뭣하다. 사실 시작하고 몇년 동안은 두어달에 1편씩 꼬박꼬박 써냈다. 그런데 오래 되니까 지치더라. 메아리가 없으니 신도 안 나고. 그러다가 1년 편수가 2편 정도로 줄었다. 앞으로는 좀더 열심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휴먼드라마를 쓰면서 갖고 있는 원칙이 있나.

재미를 위해서 가치를 왜곡하거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서 실제의 누군가를 짓밟기는 싫다.

시놉시스

자폐증을 앓는 아들 영세를 교통사고로 잃은 대오는 죽은 아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물고기 팔찌를 손에 넣기 위해 물고기잡기대회에 참가한다. 뇌손상으로 서번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동생 순심과 똥오줌 못 가리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소년가장 삼동 또한 순심에게 중고 바이올린을 사주기 위해 물고기잡기대회에 출전한다. 대오는 1등을 해야 물고기 팔찌를 얻을 수 있고, 삼동은 2등을 해야 상금 10만원을 따낼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바람과 달리 뒤바뀐다. 2등을 차지한 대오는 삼동을 가까스로 찾지만, 삼동은 얼마 안되는 돈을 받고 금은방 주인에게 팔찌를 팔아넘긴 뒤다. 팔찌를 찾으러 금은방에 가보지만 누군가에게 이미 팔린 상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오는 지갑을 잃어버리고 삼동에게 사정한 뒤 쌈짓돈을 빌리고, 삼동은 쌈짓돈마저 뺏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대오와 함께 서울로 오게 된다. 교통사고로 앞을 보지 못하는 대오의 아내는 삼동을 영세로 착각하고, 대오는 삼동에게 얼마간 영세처럼 살아달라는 부탁을 한다.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서울 생활이 싫지 않은 삼동은 대오의 부탁을 받아들이는데, 얼마 뒤 삼동이를 부잣집 아들로 착각한 진짜 유괴사건이 발생한다.

시나리오 발췌

S#20. 삼동이네 집/저녁

<마당>
삼동, 히죽 웃는 얼굴로 수돗가에 험하게 싸놓은 똥을 치운다. 때때로 주머니 속의 금팔찌를 만져보며 미소를 짓는다. 툇마루에 앉아 있는 순심과 할머니.

할머니 저것이 터진 김밥을 쑤셔먹었나, 설설 쪼개고 지럴이야.
순심 배올린이다. 배올린~.
할머니 모? 빠울린이 어딨다고?
삼동 아니야, 할망구.
할머니 썅놈의 새끼들. 지들끼리 콩먹고 팥먹고… 흥. 밥이나 줘, 이놈들아.
삼동 알았어, 빨랑 밥 내올 테니까 순심이랑 가만히 계셔!

<방 안>
시간경과; 밤
할머니는 코를 골며 자고 있고, 그 옆에 삼동과 순심이 나란히 누워 있다. 이불 한채를 셋이서 덮고 있다.

삼동 할망구한텐 비밀이다! 걸리면 뺏겨. 자기 빤스 사고 지붕 고친다 그럴 거야.
순심 증말 나. 그게 생기는 거야? 증말? 우와우와 오빠야 정말….
삼동 내일 내가 읍내 갔다 오면 같이 가서 사자!
순심 (기뻐 죽는) 와~.
삼동 무대에서 유진박처럼 그렇게 해야 된다.
순심 진박처럼… 나 잘한다! 진박처럼.
삼동 글치만, 순심아… 만약에… 만약에 엄마 아빠 안 와도 실망 안 할 거지?

순심, 표정 굳어진다. 돌아눕는다.

삼동 니 생각대론 안될 거야… 너도 알아야 돼… 엄마 아빤 우리 안 찾아. 죽었어.
순심 (울먹울먹) 오빠야도 나쁘다….

S#31. 서울, 병원

대오, 심호흡을 하고 보영의 병실 문을 연다.보영이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있다. 눈과 코에 붕대를 했기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다. 병실로 들어가는 대오를 의뭉히 뒤따르는 삼동.

대오 여보….

보영,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울 것처럼 입가가 씰룩인다.

보영 영세는? …당신은 괜찮지? 난 어떤 거야? 지금.
대오 (힘없이 내뱉는) 어… 다 괜찮아….
보영 영세는 어딨어? 영세랑 같이 있었는데….
대오 괜찮아, 영세 지금 자… 당신만 나으면 돼.
보영 (안도하는) 그래…? 다행이다… 아… 아파….

보영 곁에 다가서는 대오를 따라 몇 걸음 걷는 삼동. 보영, 걸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갸웃거린다. 입가에 실낱같은 미소를 짓는다.

보영 거기 있구나? 일루와, 김영세.

삼동을 향해 손을 뻗는 보영. 깜짝 놀라는 삼동과 대오. 삼동은 뒤로 슬금 물러난다. 대오, 이 상황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 머리를 굴리고 있다.

보영 왜… 엄마 이런 모습 처음이라 무섭구나? 이리 와봐, 아들. 어떤지 보게….
대오 그래, 영세, 엄마한테 가봐.

대오, 입에 손가락을 대어 들리지 않게 ‘쉿’ 하며 삼동을 보며 등을 민다.
주섬주섬 보영 앞으로 밀려가는 삼동.
보영, 삼동의 머리를, 어깨를, 엉덩이를 쓰다듬는다.



씨네 21 -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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