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지지 않게, 사건 중심의 빠른 전개 - 장항준



케이블 드라마 <위기일발 풍년빌라> 각본 쓴 장항준 감독

케이블이 공중파보다 과감한 시도를 즐기는 건 명백해졌다. 장항준 감독이 드라마 작가로 참여한 <위기일발 풍년빌라>(이하 <풍년빌라>)는 지금, 시청자가 케이블을 주목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본보기 같은 드라마다. 스릴러 장르의 활용에서 화려한 배우 캐스팅, 짜임새있는 이야기까지 ‘스크린을 훔쳐왔다’는 의견이 과언이 아닌 영화 같은 드라마 <풍년빌라>가 만들어지기까지 장항준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연출도 아니고 대본으로 참여해서 좀 의외였다.

처음 제작사로부터 연출을 제안받았는데 영화 준비 때문에 시간도 부족했고 할 마음도 안 나더라. 완곡히 거절했더니 그럼 대본이라도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쪽 인력이 드라마에 참여하는 건 내실문제를 떠나 홍보에도 분명 도움이 되어서였을 거다. 특히 드라마는 대본이 중요한데 상업영화감독이 대본을 썼다고 하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괜찮은 거다. 결국 박정기 작가와 아내 김은주 작가, 이렇게 셋이서 참여했다. 원칙은 확실했다. 이왕 만드는 거 기존 한국 드라마의 형식은 벗어나자. 시청자가 보고 싶은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만드는 사람이 보고 싶은 드라마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마음에서 심기일전 시작하게 됐다.

만드는 사람이 보고 싶은 드라마는 어떤 걸 말하는 건가.

영화는 두 시간 남짓한 시간에 쉴틈없이 몰아치니 관객이 한눈팔 수가 없다. 그런데 드라마는 한두회 정도는 빼먹고 봐도 시청자가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래서 드라마는 항상 사건보다는 인간을 따라가는 스토리 중심으로 가게 되고, 결국 사건 중심의 스릴러 장르는 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는 거다. 드라마 보는 내내 등장하는 시어머니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와는 차별화하고 싶었다. 속도를 느리게 하라, 남녀 사각 로맨스 등을 넣어야 한다는 주문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아예 그 부분들은 타협할 수 없는 지점으로 못 박고 갔다.

스릴러지만 역시 장기인 코믹은 잘 발휘되고 있다. 계속 이 분위기를 유지하는 건가.

지금과는 사뭇 달라질 거다. 뒤로 갈수록 코믹한 부분들은 사라질 것이다. 황금을 찾는 과정에서 빌라 사람들도 하나둘씩 죽어나가게 되고, 어두워지고, 지금보다 호흡도 빨라질 거다. 범인의 실체가 밝혀지는 동안 아무도 믿을 사람 없다는 말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벌써 기존 드라마와 차별화는 성공적으로 이룬 것 같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을 워낙 즐겨 봤고, 상당 부분 참고했다. 같은 빌라에 사는 주민. 이 사회에서 과연 우리만 피해자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평범한 이웃이 탐욕에 가득 찬 인간들이고, 결국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이야기의 핵심이다. 그걸 한국식으로 풀되 좀더 스피디한 전개로 가고자 했다. 형식은 영화적인 스릴러 장르를 차용했고 미스터리처럼 하나씩 풀어나가는 구조다. 긴 호흡이 필요했는데 그런 점에서 영화를 연출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결과가 성공을 담보해준다. 첫방 시청률이 1.01%였다.

처음엔 그 수치보고 깜짝 놀랐다. 왜 이렇게 낮나 싶더라. 그런데 케이블 TV 시청률로는 꽤 높다는 걸 알게됐다. 지금은 두배 정도 시청률이 올랐고, 후반 비밀이 밝혀지면서 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케이블이라서 이런 실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풍년빌라>는 공중파 편성을 목표로 만든 드라마였다.

당연히 공중파 편성을 생각했고 거의 100% 확실한 상태였다. 그런데 첫 촬영날, 이진석 대표(JS픽쳐스)가 연출자인 조현탁 감독한테 전화를 했다. “촬영 접고 돌아와라”고. 방영을 약속한 공중파 방송사에서 편성을 거부했다는 거였다. 대본은 이미 다 쓴 상태였음에도, 내부에서 ‘엎자’라는 말이 나왔다.

마지막에 공중파에서 편성을 거부한 이유가 뭐라던가.

방송국에서 대본에 대한 반응이 꽤 좋았다. 그런데 막상 편성을 하려고 하니 장르나 수위 등 모든 게 방송을 하기엔 걸림돌이 돼버린 거다. 들어보니 젊은 PD들은 끝까지 지지했는데 좀 연배가 높으신 분들은 많이 반대했다고 한다. 멜로라인도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고, 인물들은 모두 삐딱한데다, 드라마도 안방에서 온 가족이 같이 볼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는 이유였다.

케이블은 결국 차선책이었던 셈이다.

감독, 작가 모두 받은 개런티 다 토해내고 투자하더라도 작품만은 살리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마침 CJ미디어가 tvN을 흡수하면서 공격적인 전략을 펼칠 때였고, 우리의 시도를 높게 평가해줬다. 시기가 잘 맞아떨어진 거다. 공중파였다면 시청자가 더 많았을거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미드도 공중파가 아닌 같은 전문 채널에서 실험하며 성장했다는 점에선 고무적이라고 본다.

케이블로 옮겨오면서 내용이 수정되거나 수위가 조절된 부분이 있나.

100% 사전제작이라 그런 건 없었다. 그런데 좀 안 맞는 부분은 있었다. 애초 공중파를 염두에 두고 쓴 대본이라 모든 게 60분 드라마의 호흡으로 이루어졌었다. 마지막 60분에 궁금증을 일으켜주고 다음 회를 보게 만드는 방식이다. 그런데 케이블은 45분 드라마다. 중간 CF가 나가기 전, 공중파의 한회가 끝났을 때 주는 궁금증을 시청자에게 줘야 한다. 그러니 원래 대본으로 촬영하고 나서 조현탁 감독이 편집하느라 많이 고생했다.

사전 제작이 이 경우엔 오히려 걸림돌이 된 거 아닌가.

맞다. 사전 제작이 지금 방송의 퀄리티를 담보해줄 해결책처럼 인식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긍정적인 측면과 달리 반대로 단점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시청자의 반응을 함께 호흡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영화와 차별화되는 TV의 가장 큰 장점이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만 봐도, 조권-가인쪽 러브라인이 선호-슬혜쪽보다 더 호응을 얻는다면 그쪽을 늘려가는 탄력성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시청자에게 전권을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은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이 드라마에 관심을 갖는 요소 중 하나가 캐스팅이다. 영화쪽에 치중하던 신하균의 출연도 이례적이다.

처음 기획단계부터 백윤식씨는 반드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썼다. 신하균씨 같은 경우는 그간 대중적으로 목말랐던 걸 해소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원래 연기파 배우가 폼은 나지만 외롭다. 당장 지방 소도시만 가도 알아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대중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TV만큼 적절한 매체가 없지 않나. 이보영은 그간의 단아한 이미지 변신책으로 이 작품을 택했다. 나머지 조연 캐스팅이 화려한 건 방송쪽에서 입지를 굳힌 JS 픽쳐스가 가진 파워라고 보면 된다.

영화 제작편수가 줄어들면서 TV출연을 모색하는 경향도 한몫하지 않았나.

다들 흔한 말로 ‘시도한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합리화고 변명이란 생각이 든다. 배우의 경우 영화가 제작비도 낮아지고 편수도 줄어들면서 기존에 한편만 출연하면 되던 때와 달리 일년에 2편, 저예산영화는 3편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속내는 다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결과적으로 TV와 영화간의 교류가 좋아지게 됐다는 거고, 어느 한쪽이 호황이라고 해서 그쪽으로만 몰리지 않았으면 한다.

2008년에 이미 ‘무비배틀’이라는 형식으로 케이블방송과 개봉버전용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땐 작품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 떠밀려 하는 건 아닐까라는 의혹도 많았는데, 지금은 어떤가.

<전투의 매너>나 <음란한 사회> 같은 경우, 95분용 영화를 두편 만드는 거라 지금과는 경우가 달랐다. TV용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생각보다는 저예산영화를 두편 만든다는 마음으로 했으니까. 그런데 이번 작품 하다 보니 드라마 아이템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라. 부검의의 일, 사랑, 암투를 그린 건데 사실 영화야 더한 것도 보여줬으니 이런 소재는 흥미가 없겠지만, 드라마로 만든다면 더 디테일하게 접근할 수 있고 재미를 줄 수 있다고 본다.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쓰고 있고, 연말쯤 드라마 연출을 하게 될 것 같다.

작가로 참여는 고려하지 않았나.

젊은 PD들이 대본을 써달라고 많이들 의뢰해왔는데 모두 거절했다. 사실 너무 힘들더라. TV는 영화와 달리 작가가 관여하는 범위가 무척 넓다. <풍년빌라>는 사전 제작이었지만, 쪽대본이 넘쳐나는 상황이라면 감독도 작가가 대본 주기 전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거다. 드라마에서 왜 이렇게 작가가 대접받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같은 아이템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다. 상업영화에 드라마와 달리 특별히 보안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예능 프로그램들을 굉장히 즐겨보는데 그걸 보면서 생각이 많다. 최근에 새로운 아이템과 시도는 예능 프로그램이 거의 다 해낸다. 반면 영화는 웰메이드 상업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불과 5%도 안될텐데 다들 무언가 해낸 것처럼 생각한다. 요즘엔 감독들끼리 ‘우리 그동안 너무 엄숙했어’란 말들을 나눈다. 어려운 환경을 탓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거품을 빼야 한다. 빨리 찍는 경제적 운용, 제작비 절감 등도 역시 영화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고.

<풍년빌라>의 시청자 반응을 체감하면서, 연출할 영화에 대한 고민지점도 달라진 게 있나.

연극(‘감독, 무대에 오르다’ 프로젝트 중 <사나이 와타나베, 완전히 삐지다> 준비 중) 연출하면서 영화 <죽지 않은 인간들의 밤>이라는 코믹 잔혹극을 준비 중이다. 항상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 분명한 건 영화는 방송과 달리 관객이 예상하는 지점을 좇아간다면 오히려 실패한다. 관객과 반대로 가는, 기획적인 반전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영화다. 대표적으로 <추격자> 의 성공은 ’불황일 때는 어두운 이야기는 성공할 수 없다’는 공식을 깨고 나와서 성공한 경우다. 거기에는 배우 파워와 연출력 등 모든 게 뒷받침되어 있다. 그런데 이후에 무작정 너도나도 어두운 스릴러면 된다고 생각했고, 많은 영화가 실패했다. 적어도 영화는 관객의 머릿속을 1년은 앞서가야 성공할 수 있는 게임이다.


씨네 21 -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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