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1318sinabal.com 시나리오란 뭘까 l 시나리오 구경 l 시나리오를 읽자 l 시나리오 쓰자 l 시놉시스는 뭐지 l 작가가 되려면





시나리오 구경! [1] [2] [3]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 닥터봉의 시나리오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시나리오를 읽어왔지만 머리속에 영상으로 영화를 보는듯 화면이 지나가는 느낌을 가장 많이 받은 시나리오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매우 많이 웃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즐거웠다는 얘기도 되고... 대부분의 시나리오들은 우스운 장면을 묘사해도 영상으로 표현될때 그 효과가 나타나는것이 보통입니다. 바꿔 말하면 희극적인 장면들이 시나리오상에서는 별로 우스운 느낌을 받을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닥터봉은 시나리오 그 자체로도 매우 통쾌했습니다. 화면이 그대로 머리속에 나타났기 때문이죠. 그러면 지금부터 이광훈 감독의 <닥터봉>을 살펴보도록 하죠.

시나리오는 육정원씨가 썼습니다. 네장면을 살펴보겠는데 아주 평범한 장면들을 재치있게 잘 구성해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닥터봉의 장면들은 참고를 하셔서 생활속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만들어 내시기 바랍니다. 자! 볼까요? 준우와 여진이 만나는 주차장 씬입니다. 둘 사이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아주 확연하게 드러내주고 있죠.

13. 주차장(밤)
(초점이 제대로 안 맞는 여진의 시선으로 보이는 준우의 차.
준우의 하얀 뉴그랜저가 여진의 차 측면에 끼어있다.
한쪽 렌즈가 없는 안경을 쓴 채 준우와 말다툼하고 있는 여진)
여진:"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요?
내 차 몰딩을 엉망으로 해놓구선!"
준우:"내 차는 펜더가 찌그러졌어요"
여진:"글쎄. 그걸 내가 그랬냐구요?
댁의 운전 미숙으로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
준우:"차를 주차선 넘어 삐뚜루 세워놔서 사고 유발을 시킨게 누군데?"
여진:"그래서요? 책임회피를 하겠다 이거에요?"
준우:"내 말은 각자 잘못이 있으니까 각자 수리를 하자 이거요"
여진:"미쳤어요? 가해자는 당신인데 왜 내가 내돈을 들이고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수리센타엘 가야돼요?"
준우:"당신이 주차를 거지같이 했잖아!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구"
여진:"당신이 운전을 똑바루 했으면 됐잖아"
준우:"나원 참 얘기가 뱅뱅 맴도는 구만 이거"
여진:"남자면 남자답게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수리비를 지불하세요.
치사하게 굴지말구"
준우:"남자답게? 필요할 땐 여성상위고 이럴 땐 남자답게 굴라고 하는데 말이야. 모순 아니요?"
여진:"남자가 치사하게 나오니까 그렇죠.
그랜저까지 몰고 다니면서 째째하게"
준우:"그랜저 모는 사람은 봉인가?
잘못도 없이 돈 뜯겨야 되냐구?"
여진:"뜯겨요? 내가 공갈 차치기에요? 댁을 뜯게?
나 원 살다보니 별 그지발싸개 같은 경우를 다 당하네.
관둡시다. 관둬! (휙 돌아서가다가)
그 돈 갖고 잘먹고 잘살아라. 이 쫌상아!"
(준우 쫓아간다. 준우가 쫓아오니까 여진 도망간다. 그러나 준우에게 어깨를 잡히고 만다)
여진:"이거 놔요!"
준우:"(지갑에서 돈 꺼내주며) 자 여기 삼십만 원 있어.
이거면 똥차 고치구두 남을 테니까 나머지 돈으로 안경알이나 사서 끼구 담부턴 주차 제대루해. 알았어?"
(손에 쥐어준다. 여진 따귀 냅다 올려붙인다. 준우 벙찌고)
여진:"누굴 거지루 보나? 줘야 할 돈 정당하게 안주고 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야?
이 돈 불쾌해서 못 받겠어. 자 이건 따귀 때린 값이야. 넣어둬요"
(수표를 준우의 윗주머니에 찔러넣는다)
준우:"(여진 멱살 확 잡아 노려보며) 여잔 절대 손대는 게 아니란 내 조부님의 당부만 없었어두 넌 벌써 죽었어!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여진 겁먹어서 가만히 있다. 멱살 놔주곤 휙 돌아서서 걸어가는 준우)
여진:"(겁먹은 거 만회하려는 듯 손바닥 탁탁 털며)
누가 운 좋은지 모르겠네. 난 가스총 사용할려다 말았다. 알아?"

이번 장면은 훈이와 지나가 나누는 대사입니다. 유모스럽게 적절한 대사를 살려내고 있습니다. 자! 보시죠.

19. 동물원
(기린, 호랑이 등등의 모습이 보이고, 견학나온 국민학생들이 저마다 앉아서 점심을 먹고있다.
도시락을 먹는 훈과 지나.
지나와 훈이의 김밥 말은 모양이 대조적이다.
김밥이 뜯어지는 바람에 먹느라고 애쓰는 훈을 보면서 지나가 혀를 끌끌찬다)
지나:"울 엄마가 니꺼까지 싸줬는데 왜 그걸 먹니?"
훈:"아빠가 만든거야. (하나 또 입에 넣고 우물우물 먹는다)
모양은 이상해도 맛은 캡이야"
(한가로운 동물원 풍경들 인서트.
훈 가방에서 콘돔을 꺼내 분다)
훈:"하나 줄까? 우리 집에 많아"
지나:"바보야. 그건 풍선이 아니라 아기 생기는 고무주머니야"
훈:"웃기지 마. 애기가 아무리 작아두 어떻게 이런 데 들어가니?"
지나:"진짜야. 내가 엄마 서랍에 있는 고무주머니에다가 바늘 구멍을 냈거든. 그래서 내 동생이 생긴거야"
훈:"그래? (골똘) 그렇다면 아빠 풍선을 꼭 확인해 봐야겠구나.
구멍 나 있으면 큰일이니까"
지나:"넌 동생이 생기는 게 싫어?"
훈:"갓난애기가 무슨 필요가 있어? 빽빽 울기만 할텐데"
지나:"그럼 기린은 왜 필요하겠니?"
훈:"? (나뭇잎을 뜯어먹고 있는 기린을 멍하니 본다)"

다음 장면은 준우와 여진, 두사람의 사랑에 대한 암시를 해주는 씬입니다. 아름답게 구성을 해놨군요. 이런 로맨스 장면은 꼭 한번 연구해서 써 볼 필요가 있죠! 주의깊게 읽어보세요.

97. 근처 강가(밤)
(감자가 모닥불 속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구워진다.
버너 위 주전자에선 커피가 끓고 있고, 여진 커피를 따라 혼자 마시려다 준우를 보고 한잔을 더 따라 말없이 준다.
준우, 여진을 흘낏 보곤 커피잔을 받는다.
훈은 감자가 익기만을 기다리며 꼬챙이를 연신 돌리고.
무릎 세우고 앉아 모닥불을 보며 커피를 마시는 여진.
모닥불이 어른거리는 그녀의 옆 얼굴을 바라보는 준우)
훈:"아빠! 오리온 자리가 어느거지?"
(어느새 여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훈)
준우:"(밤하늘을 가리키며) 저기 일등성이 두개 보이니?
그 가운데 삼태성을 경계로 대칭하고 있잖아"
여진:"일등성이 뭐에요?"
훈:"가장 밝은 별이야"
여진:"(고개를 끄덕이며 별을 보다가) 안경이 없으니깐 희미하네..."
(오리온 자리가 밝게 보인다)
훈:"아름다운 아르테미스가 오빠 아폴로의 속임수로 강에서 수영하는 연인 오리온을 활로 죽였대..."
여진:"슬픈 얘기구나..."
준우:"(벌렁 드러누우며) 별하나에 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여진, 준우 돌아본다)
준우:"별하나에 쓸쓸함과 별하나에 동경과..."
준우.여진:"(동시에) 별하나에 시와 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준우와 여진 서로 어색하게 웃는다. 훈이 슬쩍 자리를 비켜준다)
여진:"왜 아까부터 내 얼굴은 뚫어지게 봐요?
내 얼굴 첨 봤어요?"
준우:"안경을 안 쓰니까 딴 사람 같아서...
거긴 무당처럼 춤을 안 추면 노래가 안 써지나?"
여진:"무당? (픽 웃고는) 노래마다 틀려요.
템포가 빠른 춤곡일 땐 그러기도 하고..."
준우:"가사를 먼저 쓰고 곡을 붙이는 거 아닌가?"
여진:"곡이 먼저 나오고 가사를 붙여요.
그리고 그 가수의 창법대로 가사를 불러봐야지만 정확한 느낌이 생기고..."
준우:"거 참 괜찮은 직업이야.
한 두어 시간 끄적거리고 먹고 사는 거 보면?"
여진:"두 시간요? 보통 가이드 송을 한 이삼백 번씩 들으니까, 한곡 쓰는데 적어도 사오일 정도 걸려요"
준우:"똑같은 곡을 몇백 번 들으면 질리겠군?"
여진:"질리지만 해야죠"
준우:"그래 얼마나 했어요?"
여진:"한 오 년 됐어요... 원래는 작곡을 하고 싶었었는데, 그 쪽은 왜 치과의사가 됐죠?"
준우:"어렸을 땐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대학 지원할 때 치대를 갔죠.
(훈이를 보다가) 어, 얘 어디 갔지? 훈아!"
(두 사람 일어나서 훈이를 찾는다)

결론을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주 화끈하게 끝맺음을 하는군요. 깔끔하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읽어보세요!

131. 근처 공원(밤)
(보안등 아래 세워져 있는 준우의 차에 하얗게 눈이 덮여있다.
준우 차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준우 몸을 바로하고 담배를 바닥에 버리려다 주머니에 넣는다.
어느새 준우가 준 안경을 쓴 여진이가 앞에 서 있다.
여진. 외투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서서 바라보기만 할 뿐, 표정이 없다)
준우:"...음 그러니까 내가 왜 다시 왔냐면..."
(주머니에서 여진의 시계를 꺼내 준다)
여진:"(말없이 받는다)...아 참...어디 뒀나 했었는데, 고마워요...그럼"
(돌아서서 가는 여진)
하얗게 내리는 눈과 가로등 사이로 멀어지는 여진)
준우:"잠깐!"
(여진 꼼짝않고 보기만)
준우:"우리 결혼하자"
여진:"(꿀먹은 벙어리처럼)..."
준우:"내 말 못들었어?"
여진:"들었어요"
준우:"근데?"
여진:"전 별로 유머센스가 없어서요.
어떻게 되받아쳐야 할지 생각중이에요"
준우:"농담하는 줄 알아? 진지하게 프로포즈하는거야.
난 건강하구 꽤 유능한 의사구 또 결혼하면 거기 이외엔 다른 여자한텐 한눈파는 일 없을거야.
믿어 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거기 고생시키지 않을만큼 돈도 벌어"
여진:"그런 말 들고 싶지 않아요"
준우:"뭐? (기분이 상해서) 그래? 그럼 무슨 말을 할까?"
여진:"생각해 봐요. 정말 나한테 할 말이 그렇게 없어요?"
준우:"됐어. 난 거기한테 이런 말할 자격도 없는데 말야.
이미 한번 결혼했던 사람이구 또 아이까지 있는 홀아비니 당신같은 괜찮은 여자가 결혼해 줄 리가 없지.
이쯤해서 덮어두자고 그 얘긴"
여진:"바보! 사랑한다는 말을 아직 한 번도 안했잖아"
(준우 돌아서 본다)
여진:"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안한 남자한테 어떻게 결혼 승낙을 해요?"
준우:"(비로소 표정 부드러워지며) 내가 사랑하고 있는거 몰랐어?
...사랑해"
(여진, 별안간 준우의 따귀를 세게 때린다.
준우 얼떨결에 맞아 여진을 보며 멍한다)
여진:"그 말하는데 뭐가 그렇게 오래 걸려요!"
(와락 달려들어 격렬한 키스를 한다.
준우, 몰아붙이는 여진 때문에 몸이 차로 젖혀진다.
여진, 준우를 찍어누르면서 키스)
여진:"(활짝 웃으면서) 결혼해 드리겠어요. 닥터 봉!"
준우:"(겨우 정신 수습) 미세스 봉!
이 키스 특허 내야겠는걸 아무도 못 훔쳐가게"
(이번엔 준우가 키스를 한다.
카메라 두 사람 껴안고 있는 사이로 이동해서 준우의 차에 다가간다.
창 밖으로 얼굴을 내민 훈이와 지나가 두 사람을 보면서 씩 웃고있다.
...훈이가 지나에게 뽀뽀를 하려하자, 지나는 여진처럼 훈의 뺨을 살짝 때린다.
하얗게 내리는 눈이 화면을 천천히 뒤덮는다)


지금까지 닥터봉의 여러 장면을 보셨는데요 일단은 안정된 대사들이 아주 돋보입니다. 재치도 있고 깨끗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그런 조건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정도의 능력을 갖게 되신다면 제 생각엔 좋은 시나리오를 쓸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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