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다. 어김없이 중앙극회는 다시 또 그랬다. 영진이의 전화를 받고 그냥 반가운 얼굴들 한 번 보러 나간 사람의 코를 여지없이 걸었다. 도망치려다 주둥이까지 걸린 형편이다. 기획과 캐스팅 모두 덮어써버렸으니 이제 도망갈 수 도 없다. 회사도 가뜩이나 일이 많아 연습실도 제대로 못 가보고 다른 팀들 대본 다 외워가는데 대본 들고 리딩 이나 하는 수준이라니 연출하는 영진이가 꽤 속 좀 끓였을 것 같다.

기획도 사실 이름만 걸었지 현주랑 진옥이가 고생이 많았다. 그래서 끝내 기획의 변은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근한이 재촉으로 구차한 몇 줄을 걸어 놓기로 했다.

후배들에겐 “잘 했고 보람 있었다기 보다, 힘이 못 돼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만사 제치고 죽자 사자 연극이 최고였던 때도 있었는데 이젠 나도 모르게 직장과 연극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분배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최대한 집중하려 애썼지만 내 코가 석자라 후배들을 챙길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 정년 퇴임하시는 김석준 교수님 그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찌 보면 교수님이 이제사 중앙극회의 코 걸림에서 해방되시는 것 같습니다. 교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