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기 조소학과 '87 김근한
[그리움은 더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리움이 항시 마음의 한구석에 낙엽을 쌓이게 했더랬습니다. 그 그리움이란 한해 두해 스무해가 지나가도 계속 싸이기만 해서 언젠가부터는 썩어 거름이 되고 조용히 만개했다 지고피는 어떤 한그루가 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털어내고 싶고, 쓸어내고 싶고,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거추장 스럽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요..

"이제 털어 낼 때가 왔나보다" 불연듯 스치는 조그만 외침이 저를 조급하게 했었던 가을의 어느날, 전 그 그리움을 털어내려고 무척 용기를 내었더랬습니다.

전쟁에 출정하는 노병의 마음으로, 지나간 지도를 꺼내보기도 하고, 녹슳은 저만의 칼을 힘들게 빼어들어 닦아보기도 했습니다. 전 어느새 칼자루를 잡은 내손이 뭉툭하고 거칠고 투박하게 노화되어 있음을 느끼고 말았죠.. 하지만, 애써 모른척 했습니다. 어차피 그 시절의 저는 지금 이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속의 허상이니까... 지금 나는 그 허상의 기억을 털어내려 하는 것이니까... 그저 약간은 슬픈 허전함으로 그런 저의 노화된 손을 이해하기로 마음 먹었더랬습니다.

아마도 다들 그러겠지만, 삶이란 그렇게 녹녹치 않은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 저의 길을 걷다가 잠시 뒤를 바라볼때면 그래 이 정도면 잘 걸어 가고 있지? 라고 반문도 해 보지만, 그 만큼 외롭고, 힘들고, 노곤하다는 생각에 소주 한잔에 부풀어 오르는 군살을 느긋함으로 맞이하는 중년인지라..

그리움을 털어내는 작업이 그리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머나먼 연습실을 향해 가는 길, 운전대를 잡고 초조해 하며, 엑셀을 밟았던 저는 가끔 ... 그 시절의 내가 되어 즐거워 하는걸 느끼게 됐더랬습니다...제 자신이 왠지 조금은 귀여워 지드군요..ㅎㅎㅎ 그렇게 하루 하루 싸이는 낙엽을 치워 나갔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도 내 신에게 감사하며 묵상을 합니다. 왜냐하면..왜냐하면.. 전 작년 11월과 12월 그리고 지금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거진 10년간 사랑이라는 낱말을 느끼지 못했던 숨 가빴던 시간....전 지금 무언가를 아련히... 너무나... 사랑하고 있거든요..

공연 당일, 그리움을 털어버리려 했던 저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움을 털어 내려했었는데...... 다시 떨어지는 그리움이란 낙엽으로 내마음을 뒤덮는 그 순간을 "사랑" 하고 있었죠..... 저에게 다시 돌아온 "사랑"이었습니다...전 그 날을 후회 없이 "사랑"할것 같습니다. 어쩌면 난, "사랑에 관한 짧은 소묘"를 운명적으로 하고 있었나 봐요....

아마도 "그리움"이란 털어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일거예요... 김 석준 교수님의 그리움도 그렇게 쌓여가시겠죠...우리 극회의 어느 한곳에도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그리움은 쌓이는 것일까요? 그저...."사랑합니다"....라는 제 마음....이것 또한 항상 그리움일겁니다.

------이 영진의 듬직하고 굵은 연출력과 예술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같이해준 모든 스텝, 케스트, 그리고 지켜봐준 여러분.. 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그립습니다................그리고 "행복했습니다" .......너무나도...지난날 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