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기 산업정보학과 '91 김재한
재채기 공연은 시작되었다

현실에서 보던 선배들과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무대에 서 있었다. 모두들 현실에서 보다 이쁘고 잘생기고 매력적이었다.

나는 8기 이장헌 헝아의 방화사건 관계로 엉겁결에 무대에 설 뻔했다.

성순 : 죄한아! (대본을 던지며) 생일선물에 아들 대사 외워라..
재한 : 네?
성순 : 니과아 해야 될 지도 몰라서 그래..
재한 : 장헌이 형은요?
성순 :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럴 일이 있어..

난 사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고 있었으나 진지한 표정에 성순형 앞에서 굳지 아는 척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도 나오지만 그 당시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음..

재채기 공연중에 난 등에다 매고 천정에까지 올라간 롱핀이란 조명기를 잡고 졸다가 켜서 승은이 누나를 비춘곤 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열심히 인규형을 도와서 조명 보조를 하던 내게 누가 찾아온 것이다...

성순 : 죄한아! 니네 형 왔다..
재한 : 네!!!

당시 우리 형은 공수부대를 제대해 왕성한 혈기와 체력,... 성갈을 가지고 있다.. 난 집에 연락도 없이 주말을 학교에서 보내고 수업도 없이 공연장에 있었던 것이다.. 공수부대 대원은 역시 대한하다.. 날 학교에서 찾아낸다. 나는 공연 두째날 아무소리 없이 형에게 잡혀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그후 계속되는 아버지의 협박을 피해 극회 생활을 한다.

첫번째 극회에서의 공연을 아쉬움으로 한 후, 내게 첫번째로 주어지게 된 일은 외대 건물뒤로 교수연구동까지 펼쳐저 있는 동아리 신입생 가두모집이다.

난 너무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입생이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니.... 하지만 선배들은 당연한 듯이 "여기 좀 앉아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하나 둘 수업을 들어 가고 나는 하늘과도 같은 선배들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책상에 앉아 있게 된다. (솔직히 선배인양 앉아서 지나가는 여학생들을 보는 것도 재미는 있었음. 왜냐하면 그당시 우리학교에는 정말 이쁜 여자가 많았음. 그래서 난 그 후에도 괜히 조소과 앞에서 내리로 내려가는 여자들을 구경하고 했음. 그래서 조소과 친구들이 많았음.)

그당시 9기 이현주,최은주,문식(성을 잘 모르겠음. 후에 다른 학교로 갔음),상준,김도형,류시영 등에 신입생 원서를 받게 된다.

얼마 후 오디션이 있는 날, 난 여전히 아무생각 없이 수업을 접고 가정대 1112 강의실에서 조명기를 들고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조명기에 대한 강의를 준호형에게 듣기 시작한다.

오디션은 시작이 되고 난 또 1번으로 나간다. 세개의 방은 똥마려운 사람을 표현한다. 선배들이 웃는다.(2기 윤영석,김호식,3기 김인동,5기 박기만,박정용,그리고 8기들) 노래는 점수 따려고 '선구자'를 불렀는데, 발음이 안좋다고 성순형과 또 비교됨.

선배들 : 재.. 성순이 고등학교 후배냐.. 발음이 왜그러냐?
선배들 : 맞아요. 성순이 고등학교 후배에요..

현주는 노래가사를 못외운다는 핑계로 최진실,최수종 주연의 드라마 '질투'를 부르다가 사람들이 도와주었고 선영이는 송창식의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이 노래를 얼마나 들었는지 후배들은 잘 모를 것이다. 노래방이 없던 시절 노래가사를 못외워서 맨날 같은 노래만 부르는 사람이 종종 있었음.) 오디션이 끝나고 써클룸,동방에 오니 지금의 동방 창문 밖에서 술자리가 마련된다...

* 그곳은 당시 윗층이 없었다. 지금있는 1층 창가쪽의 동아리들은 그당시 허공이었다. 그래서 그곳에다 조명이를 달고 동방 안에는 싸이키 조명과 돌아가는 상제리 등을 달아서 나이트 처럼 놀았다.

정말 개처럼 먹고 개처럼 논다는 생각을 한다. 인규형의 윤희와 윤미의 '바람불면 사라지는 그대 영상'을 그때부터 본 나는 외우지 안을 수는 없을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 또한 그와중에 두 손을 모으고 부르는 순형이 누나의 '오쏠레미오' 역시 늘상 불러지는 레파토리다. 극회의 앨범을 뒤지면 아마 얼굴에 뻘건 반점들이 박힌 순형이 누나와 나의 사진을 발견할 지 모른다. 그것이 그때의 사진이다.

또한 합창단 출신의 영석이 형은 내가 숭실합창단 출신(아마튜어 중에 조금 잘함)이라는 이유로 형이 부르는 노래에 화음을 주구장창 넣게 된다. 몰라서 못해도 믿지 않는 눈초리다. 그 와중에 호식형의 야화는 감동적이다.(별로 잘부르지는 않았지만 그 뭔가.. 모 선배의 레파토리라고는 하나 그분 노래는 들어보지 못했다) 너무나 재밋는 시간들이다. 이것이 나를 워크샵으로 이끄는 큰 동기가 된다.

그 술자리가 그리워진다.